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대 다리를 쭉 펴면 TV 장식장에 발끝이 닿는 좁은 거실에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다. 맥주와 오징어를 세팅해 놓고 자못 신성한 마음으로 ‘무한도전’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기나긴 광고가 끝나면 그 신호에 맞춰 ‘딱!’ 맥주 캔을 따고 웃을 준비 완료!
박명수가 멍한 표정으로 나무에 ‘딱딱딱딱’ 머리를 박을 때, 정형돈이 이 세상 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늪’을 부를 때, 하하가 말도 안 되게 순수한 뇌를 뽐낼 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타이밍에 깔깔깔 웃을 것이다. 그러다가 방금 마신 맥주를 삼킬 새를 놓쳐 뿜어버리기도 하겠지. 그런 순간을 상상하며 혼자 흐뭇했다.
‘암~ 이게 바로 행복한 결혼생활이지’
결혼을 하고 나서 첫 토요일에야 알았다. 남편은 예능프로를 전혀 보지 않았고, 개중 무한도전은 증오하기까지 했다. 저 프로가 정말 재밌냐며, 왜 사람들이 저런 저질 개그에 열광하냐며, 당신도 그렇냐며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놀랍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무한도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그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젠장. 결혼하기 전에 무한도전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걸!’
어떻게 이 자막과 영상을 보고 안 웃을 수가 있냐고!
결혼생활의 유일한 환상을 깰 수는 없기에, 남편을 기어이 끌어 앉혔다. 보다 보면 좋아할 거라고 믿었다. 남편은 신혼답게 최선을 다해 옆자리를 지켰지만 몸을 배배 꼬았고, 그들이 얼굴에 빨래집게를 집는 자학개그를 할 때면 잔뜩 인상을 찌푸렸고, 그러다가 무한도전을 보며 미친 듯이 웃는 나를 동영상으로 찍으며 그 시간을 견뎠다. 더 이상 그를 강제로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행복한 결혼의 환상은 단 한 번도 현실이 되지 못한 채, 무한도전은 끝나 버렸고, 대신 결혼 13년 동안 무수하게 많은 무한도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여보. 어떤 사람이 책을 썼는데, 글쎄 이 사람은 대기업을 그냥 무작정 그만두고, 새벽 기상을 시작했는데, 그게 인생을 바꿨대. 여보도 읽어봐’
‘여보. 요즘 내가 보는 이 드라마에 진짜 멋진 여자가 나오거든. 한 번 볼래?'
‘여보.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여보, 오늘 유튜브로 세바시를 봤는데...’
‘여보. 내가...’
‘여보...’
남편과 공명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분노하는 것들을, 내가 아파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공명하고 싶었다. 그 모든 것에서 함께 대앵~~~~~ 울고 싶었다. 무수한 무한도전을 통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수없이 깨달으면서도 또 남편에게 들이밀고 또 실망하길 반복한다. 부부는 그래야 하는 거라는 잘못된 환상이 남편을 내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공명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다고 믿었으니까.
남편에게 공명 받지 못해 내내 얼어있던 마음에 이제야 자꾸 파문이 인다. 돌멩이를 던진 이들은 온라인으로 만난, 여자 동생들이었다. ‘글쓰기’를 매개로 만난 그녀들이, 자꾸 입을 닫아버리는 내 마음에 돌을 던져 깨운다.
‘언니. 말해. 어서 말해봐~ 우리가 다 들어줄게. 우리가 공감하고, 공명해줄게’
그녀들의 다독이는 말에 용기를 얻어, 말을 꺼낸다.
‘얘들아. 이런 책이 있는데, 정말 정말 강추야’
라고 말하면 인터넷 서점 결제내역 사진이 바로 올라온다.
‘얘들아, 혹시 이 세바시 강연 봤어?’
하고 링크를 보내면, 딱 그 영상 재생 시간만큼이 지나, 너무 감동적이라는 댓글이 이어진다.
나는 갑자기, 웃어주기만 해도 예쁨 받는 돌쟁이 아기가 된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오구오구, 오냐오냐’ 해주니 그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더니 나는 이 동생들에게 공명 받고 그 힘으로 남편을 사랑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아내의 풍성한 사랑에 얼떨떨한 남편도 신나긴 마찬가지다.
‘그 동생이 누구야? 아, 저번에 말한 그 동생이 이 사람이고, 그럼 그때 말한 사람은 누구지?’
일면식도 없는 동생들의 이름을, 사는 곳을, 내가 전해줬던 에피소드를 연결하느라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이 고마운 동생들을 캠핑장에 모두 초대해서, 자기가 풀서비스로 모시겠다며 어서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식탁에 마주 앉아있는 그의 몸이 자꾸 내 쪽으로 기운다. 온몸을 다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텐트를 몇 개나 쳐야 될지 계산하느라 살짝 위로 치켜뜬 눈동자가 반짝인다. 어째 점점 나보다 더 신이 난 남편을 보며, 그와 나의 연결고리가 조금 더 굳건해짐을 느낀다. 공명하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제야 알겠다. 남편은 공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이제 엉뚱한 곳에서 공명을 구걸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질 얘기들이, 동생들이랑은 단어 하나면 퉁 쳐진다. ‘니나잘’ 한마디에 우리는 ㅋㅋㅋ 웃고, '읭?' 같은 외계어에 '오케이!' 대답한다. ‘가출=피자’라는 우리만의 등식이 성립하고, ‘화요일’에는 다 함께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남자’ 세 글자에 같이 몰래 설렌다.
쌓여가는 대화만큼 우리만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탁!’하면 ‘오!’ 하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동생들과 공명의 깊이가 더해지는 만큼 더불어 남편을 향한 사랑도 점점 깊어진다. 결혼 13년 동안 공명 받지 못해 외로웠던 한 사람을 구원하고, 한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니 여자들에게 동지가 필요한 이유가 이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