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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Feb 12. 2022

소리는 자연에서 나온다.

악기장_ 고흥곤 #2

한국의 장인들을 담아보겠다고 한지 어느덧 2년이 넘어갈 무렵, 나는 세 분의 장인을 만났다. 그러면서 내 예상과 가장 다른 부분은 '절댓값'에 대한 부분이었다. 

악기장이신 고흥곤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애매모호한 부분들은 이따금 답답함으로 느껴지곤 했다. 

Q. 오동나무를 밖에다 널어두는 경우, 정확히 몇 년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A. 5년에서 10년 사이. 나무의 단단함에 따라 다르다.

Q. 현을 합사 할 때 몇 가닥으로 꼬아야 되는가? 

A. 그때그때 다르다. 그 해 명주실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Q 가장 좋은 울림통은 어느 정도의 두께를 갖는가?

A. 나무마다 다르다. 

선생님의 애매모호한 답변들은 나에게 숙제로 남겨졌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록하는 취지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명쾌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혹은 내가 그런 대답을 원했을지도) 가야금이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조건들은 수치화된 근거가 아니라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상대적인 해석이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연에 대한 이해였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대화된 문명 속에서 나고자란 나는 모든 것들이 수치화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전자기기의 크기와 메모리 그리고 전송속도. '더 빨리 더 많이'를 앞세워 다투는 현대의 문명은 모든 것을 수치로 이야기했다. 반면 전통문화가 다루는 것들은 수치로 말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었다. 선생님은 가공된 나무만 보아도 어디서 나고자란 나무인지를 대강 맞추기도 했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단단한 나무는 해풍을 맞거나 빛이 덜 드는 곳에서 자란 나무. 나이테가 넓고 무른 나무는 해가 잘 들고 주변 환경이 척박하지 않은 곳에서 자란 나무라 예상하셨다. 나무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해는 울림통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오동나무의 살을 벗겨내고 울림통에 거의 다 달았을 무렵 선생님은 줄곧 손가락으로 몸통을 튕기며 작업했다. 튕김을 받아치는 나무의 울림을 통해 어느 부분을 더 깎아 내고 어느 부분을 도려낼지 파악했다. 울림통이 점점 완성될 무렵 나무와 선생님의 교감의 횟수는 더욱 잦아졌다. 조용한 공방 선생님의 대패질에 나무는 뽀얀 살결을 드러내고 울림은 더욱 커졌다. 

작고 큰 울림들은 작업대에 내려앉은 톱밥을 깨웠다.


나무를 깎으면 이 가야금의 주인이 누군지 대충 그려져요
 
몸통을 다듬는 선생님


나무를 다듬으면서 어떤 성격의 연주자가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신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악기가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마지막 부분까지도 염두하시는 모습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성격이 모두 다른 것처럼 나무의 각기 다른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방식이 아닌 이해하는 방식으로 울림을 만들어내고 결국엔 이것을 연주할 사람까지도 이어주는 역할. 이 모든 것이 악기장의 덕목이라 생각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서초동에 있는 사무실로 갈 때면 이따금 학생들과 연주자들이 방문을 했다. 누구는 아주 여린 몸과 손으로 제 몸보다 큰 가야금을 들고 왔고 누구는 아주 듬직한 풍채에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연주자들과 길게 늘어진 가야금 사이엔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현을 정리하시며 선생님은 또 이야기를 던지셨다. 

"자연에서 난 명주실로 만든 현은 아주 농익은 소리가 나요" 

"그 맛에 빠지면 아주 못 헤어 나오지" 


허... 선생님 '농익은 소리'란 또 무엇입니까?


악기장 두 번째 <비워야 울린다>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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