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ector JI Mar 29. 2022

나는 전통문화에 무엇을 느꼈는가?

본능적으로 이끌린 이유를 찾아서 

일본 장인의 영상을 보고 '이거다' 싶은 생각으로 한국의 장인들을 기록한 지 4년째. 

어느덧 사람들에게 보여줄 영상들이 세상에 나왔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했지만 작게나마 영상에 대한 피드백들을 받고 있다. 그럼과 동시에 '왜'라는 물음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고, 처음의 강렬했던 기억 속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해졌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명분을 말해줄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장인 영상을 찾아보았다. 몇 가지 특징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속도이다.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눈으로 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홀려 시간을 흘려버리는 경험을 줄곧 하기도 했는데, 장인들이 작품을 만드는 속도가 첫 번째 흥미로운 부분이다. 

장인의 대부분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작품을 만든다. 나무, 돌, 흙, 조개 등등이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문화의 역사를 보면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만 만들 수밖에 없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낯설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과정을 친숙하게 바라보게 한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는 반가운 만남이자 자연스러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장인들은 가공의 단계를 거친다. 나무를 수십 년 말리기도 하고 돌을 수백 번 깎아 모양을 다듬기도 한다. 바다에서 난 조개껍데기를 돌에 갈아 얇디얇은 자개 조각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은 자연의 힘에 기대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분업은 아주 적절하게 움직인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속도인 것이다. 요즘의 최첨단 테크닉은 눈 깜짝할 새 찍어내고 만들어내지만, 장인들의 속도는 완성에 아주 조금씩만 가까워진다. '저렇게 해서 언제 만드나..' 싶다가도 결국 꾸준함의 힘은 완성에 이르도록 한다. 이 꾸준하고 느긋한 속도는 기계의 속도가 아닌 인간의 속도인 것이다. 그래서 장인들의 과정을 담고 있노라면 어느새 편안해진다. 결국 사람의 속도이자 자연의 속도인 것이다.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다가도 "컷!" 싸인을 잊어버린 채 모니터 속 장인의 손놀림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인간의 속도는 우리가 영상에 담으려고 하는 톤 앤 무드가 되고 있다. 빠르고 눈을 홀리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아서 조금은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이 속도를 느끼려면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내하면 눈이 아닌 마음을 빼앗긴다. 


두 번째는 손맛이다. 

  장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내공이 발하는 순간들이 있다. 노지에 삭힌 오동나무를 장인은 손가락으로 툭툭 튕겨본다. 오동나무가 되받는 울림을 듣고 가야금이 되는 '때'를 맞추는 것이다. 내 눈에는 모두 텅텅 거리는 소리로만 들릴 뿐 어느 것이 적당하게 삭은 것인지 분별하기 힘들었다. 나전칠기 장인은 아주 얇은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매화를 만들기도 하고 봉황을 만들기도 한다. 수려하게 자리 잡은 자개문양은 기계로 자른 것처럼 예리하고 선명하다. 어떤 문양은 쌀의 눈만큼 작지만 장인은 그 작은 조각 하나도 제 자리에 맞춰 놓는다. 우리가 아는 재료를 가지고 시작했다지만 점점 우리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로 가는 것이다. 장인의 손놀림에 들려오는 소리는 덤이다. 대패질을 듣고 있으면 경쾌한 기분이 든다. 아주 잘 마른나무가 들려주는 단단한 사운드! 서걱거리기도 하고 사각 거리기도 한다. 놋쇠를 메질하는 소리는 고요한 놋방을 가득 채운다. 깨질듯한 소리는 신명 나고 놋방에 울리는 여운은 외롭기도 하다. 이런 현장에서 나오는 소리는 모두 요즘 도시에서 듣기 힘든 소리들이다. 기계 소리로 뒤덮인, 다양한 소음들의 도시는 편안하지 않다. 이런 갈증은 명상 음악과 자연의 ASMR 콘텐츠가 각광받는 데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소리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런 콘텐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장면만큼 잘 채집하려고 한다. 편집 과정에서 웬만하면 음악을 넣지 않는다. 소리까지도 장인의 손맛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깊이다. 

 전통공예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재미난 구석이 종종 드러난다. 범종 촬영을 진행하면서 맥놀이가 한국 종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특징으로 세계적인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맥놀이가 있어야 아름다운 종소리일까?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 얻은 것은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미세하게 다른 주파수가 서로 중첩되면서 생기는 맥놀이는 "우우웅~" 울리다가도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우우웅~" 하면서 살아난다. 하지만 나에게 이 과학적인 사실은 와닿지 않았다. 조금 더 고민하다가 개인적인 해석을 하게 되었다. 범종은 불가에서 쓰는 종이기 때문에 일종의 역할이 존재했다. 범종은 법고, 운판, 목어와 함께 불가의 사물(四物)로 불리는데 각각 하늘과 땅 지하세계의 중생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일깨운다는 불가의 가르침이 종소리로 대변되는 것이다. 범종의 첫소리는 깨질듯한 아주 큰 소리가 난다. 일종의 환기인 것이다. 일상의 흐름을 끊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맥놀이는 아주 잔잔하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잘 만든 종의 맥놀이 주기가 사람 맥박 주기와 같다고 한다. 아! 그럼 결국 사람이 숨 쉬는 것과 같이 울리는구나. 결국 첫소리로 사람을 일깨우고 이윽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소리인 것이다. 

 이런 해석을 하게 되면서 건조한 과학적 사실은 깊이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래서 주철장 1편에 인트로를 산사의 스님이 타종을 하는 씬으로 편집했다. 범종의 소리를 오롯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가야금은 또 어떤가. 잘 자란 오동나무를 제재하여 노지에 7년 가까이 널어둔다. 그 기간 동안 자연의 냉혹한 서바이벌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눈과 비를 맞으며 오동나무는 제 섬유질을 하나씩 끊어낸다. 악기로 적합한 공명통을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에 아홉은 썩어 버려지니 장인은 살아남는 것만 악기로 만든다. 나무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고 자연의 힘을 빌린다. 

 방짜유기는 식탁 위의 그릇으로 쓰인다. 방짜유기의 특성은 농약성분이 닿으면 색이 변하고 담긴 음식들을 더욱 오래가도록 한다. 방짜 물항아리에 물을 넣어 보관하면 미네랄이 나온다. 건강한 음식에 혈안이 되어있는 요즘 우리가 잊고 있던 한 가지를 깨우치게 한다. 건강한 음식처럼 건강한 식기가 있다! 


 이렇게 전통문화를 알아가고 담아가면서 조금이나마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들의 작업이 이렇게나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오래도록 사람에 이롭게 하기 위한 시간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알지 못하면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발굴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상에 담아내려 한다. 


마지막은 작품이다. 

 나전칠기 장인을 처음 만난 날. 보자기에 싸인 작품을 보여주셨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나전칠기 와는 달랐다. 아름답게 수 놓인 자개의 디테일과 발색하는 옻칠을 보고는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을 품은 조개껍질은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고 화려했으며 품위 있었다. 

 잘 만든 가야금 소리는 어떻고 산사에서 듣는 범종의 소리는 어떠한가. 장인이 만든 작품은 결국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귀로 듣기도 한다. 자연에서 시작해 장인의 손맛을 거친 작품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이었다. 우리의 영상의 마지막 편도 역시나 작품을 보여주는 데에서 끝이 난다. 결국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나는 전통문화에 무엇을 느꼈는가? 

내가 느낀 강렬한 감정을 거꾸로 되짚어보니 네 가지 정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속도로 끊임없이!



KULTURE 채널 바로가기 

 





         

작가의 이전글 소리는 자연에서 나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