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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May 21. 2024

#4 몰입

20240521

'Steady'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어제 하루를 고민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루를 빠뜨리고 오늘을 맞이했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또 이런저런 핑계를 가지고 와 결국 한두 번의 쉼으로 이 과정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그래서 하루에 두 개의 글을 적기로 했다. 

(하나짜리를 둘로 나눈 건 아니고...) 


오래 하는 것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다가 여기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방망이 깎는 노인의 이야기 같은 일은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직접 손으로 나무를 깎아 방망이를 만드는 것이 당연했지만, 현대 기술은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가 원하는 모양대로 방망이를 깎을 수 있다. 이런 현실에 손으로 일일이 깎는 정성과 혼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까? 실제로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가 갖고 있는 전통장인의 관념보다 훨씬 깨어있는 면모를 느낄 때가 있다. 예전부터 내려온 방식이 현대의 기술에서 뒤처진다면 굳이 그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다. 고착되어 있는 이미지의 전통이 오히려 선생님을 만나면서 하나의 장르로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전통이 언제부터 전통이었나?"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시대의 요구에 맞춰 계속 변형되고 바뀌어야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예상치 못했지만 오히려 그럴싸한데?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방식은 바뀌되 각자의 분야에서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 장인의 덕목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전칠기 선생님이 가장 강조하는 디자인 감각. 그것은 타고나는 것일 수도 배워서 바로 적용이 안 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수많은 횟수의 옻칠과 고된 주름질, 끊음질보다 보았을 때 아름다운 감각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셨다. 종을 만드는 주철장 선생님도 결국 종은 소리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종의 형태보다 그 종을 쳤을 때 어떤 소리가 나야 좋은 소리인지에 대해 지금도 연구를 하신다. 한평생 그 일에 매진해도 이직 풀지 못한 숙제가 각자 남아있는 셈이다. 


그럼 두 번째로 따라오는 질문이 그 작업의 본질적인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하다. 기록으로만 남길 정도의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은 알려서 나누면 더 좋은 가치들이 있다. 나는 후자의 가치를 장인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주변인은 모르는 혼자만의 숙제와 고민들을 갖고 죽기 전까지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는 사람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몰입이다. 예전 학창 시절에 몰입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장인들을 만나면서 십 년이 훌쩍 넘은 그때의 책의 내용이 순간 떠올랐다. 인간의 행복은 몰입에 있다. 책에서는 과학적인 데이터로 설득을 했다면 내가 장인들을 만나면서는 표정으로 설득됐다. 전시의 제목이 '장인이 된 소년'이었던 까닭이었다. 소년 같은 눈망울로 종을 쳐보며 귀를 기울이는 80세 노인 나무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울림통이 되었는지 판단하는 장인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몰입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실험인 셈이다. 


그럼 어떻게 이 장인들은 몰입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처음부터 운명처럼 다가왔을까?

생각보다 허무한 대답들을 들었었다. 먹고사는 문제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다 보니.. 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운명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원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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