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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May 24. 2024

#5 뿌리

20240524

나는 가지가 풍성한 사람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자랐다. 

이제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려고 한다. 


나에 대해 객관적인 진단을 내린 적이 있는데 대학시절에 교수님이 mbti 같이 사람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석하는 것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한마디는 마음에 남아있었다.

"뿌리가 얕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외향적인 나의 모습의 이면에 있는 깊은 자아성찰에 대한 부족함을 일깨워줬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는 뿌리가 깊지 못하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생긴 대로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친한 형과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하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교수님의 말처럼 툭하고 한 마디를 남겼다. "너는 깊지 않지만, 깊은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아" 


대학 때 들었던 교수님의 이야기가 여전히 형의 입을 통해서 나를 관통했다. 나는 왜 깊은 사유를 못한 채 여전히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살아왔는가 자책한 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깊은 사람이 아니지만 넓은 사람으로서 또 그 나름의 장점으로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고. 또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목마름은 존재했다. 과거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점하나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궂은 비바람에 휘청거렸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미소가 근사한 중년의 남자로 늙고 싶어"라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내가 "오빠 그런 미소가 그냥 나오겠어?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흔들려야 그런 미소가 나오는 거 아닐까?"라고 말했었다. 언제나 나보다 현명하고 뿌리가 깊은 나의 아내는 항상 결과에 먼저 닿으려는 나의 욕심을 다시 출발선으로 돌려놓는다. 


전시회에서 어떤 노인 분이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나에게 물었다. 

"작가님은 이 작업에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4년 동안 장인들의 손을 쫓아갔습니다. 말 없는 손이 하는 꾸준한 행동이 말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은 "결국 혼을 찍어야 합니다."라고 내가 넘어야 할 산을 굳이 한번 더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게 가장 어렵죠"라고 감사와 응원을 덧붙였다. 


뿌리가 깊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시선은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고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서 현재로 가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뿌리가 깊어진다. 내공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을 들인 수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뿌리에 영양분을 주지 못한 채 살아갔던 나는 앞으로 오랜 시간 장인을 곁에 두면서 단단한 뿌리로 자리 잡은 나무가 되려고 한다. 내가 보는 전통은 작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그저 뿌리 깊은 나무이고 어느 노인이 말한 '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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