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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Aug 12. 2024

시골버스_삼척편 마지막

2018년에 떠났던 오래된 글

 아침에 일어나 방 정리를 하고 마당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묘하게 쿨하셨던 할머니의 자부심은 30년 넘는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곳에서 만들어진 듯하다. 경상도에서 올라오셔서 아직까지 이 여관을 하고 계신 이유와 팔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첫 날 보았던 천 년 넘은 나무가 있었다. 할머니의 뿌리 깊은 마음 덕분에 오늘의 나까지 편히 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도계의 맛집에 대해, 그 맛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시간가량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채웠다. “할머니 가기 전에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이쁘게 하고 찍어야 하는데” 이미 예쁜 할머니는 예쁜 소녀의 모습으로 당신의 여관 마당에 앉으셨다. 할머니는 교회로 가신다 하시고 나는 터미널로 간다고 했다. 

#태백장여관 할머니

 도계 터미널에 도착해서 삼척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정류장 반대편에는 탄광촌의 구조물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오늘도 찌는듯한 폭염. 그새 옷의 경계선을 따라서 피부색이 검게 그을렸고 샌들의 모양은 나의 발등에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인적 드문 터미널에서 내 발등을 보고는 혼자 픽 웃어버렸다. 


삼척에 내려 카페의 아주머니에게 덕산이라는 곳을 추천받았다. 남해와는 다르게 덕산으로 가는 시내버스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마을부터 둘러보니 아쉽게도 이 마을은 내가 찾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의 첫인상처럼 마을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시 다른 곳을 찾기에는 시간도 늦고 고단하여 여기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태백장 여관’의 할머니와 밀당 같은 것 없이 깔끔한 숙소를 골라서 들어갔다. 곳곳에 펜션, 민박집이 성수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을 안에는 편의점도 있었다. ‘시골버스’는 이곳처럼 편리하고 쉽고 붐비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늦은 밤늦은 끼니에 소주 한 잔을 걸쳤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골버스’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더 명확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 시골버스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름다운 곳.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고된 삶을 살아서 결국엔 아름다움만 남은 곳이어야만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삶의 언덕바지를 넘은 사람 중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람. 무지에서 나오는 아이의 순수함이 아니라, 인생 고락 다 넘고 넘어 결국에는 순수만을 외치는 사람들. 그런 표정이 있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덕산’에서 거리로 6킬로 남짓 되는 ‘맹방’으로 향했다.  40도에 육박하는 한낮. 그늘도 없는 길에서 쉼과 걸음을 반복하니 어느덧 아는 길이 나왔다. 밥을 먹고 해변가에 앉아서 장비를 수리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 맹방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 일 년 전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족히 수십 년 이 돼 보이는 나무 뗏목을 끌고 바다로 향하셨다. 너 다섯 개의 통나무를 붙인 뗏목을 긴 나무로만 휘휘 저어서 바다가 파도치는 반대로 조금씩. 어느새 할아버지는 수평선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그림 같던지 할아버지와 뗏목이 아주 작아 보일 때까지 멍하니 쳐다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저 뗏목을 다시 보는데 내 오래된 필름 카메라와 닮아 보였다. 할아버지가 묵묵히 노를 저어서 파도를 탔던 것처럼 나도 이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전국 팔도 두메산골을 휘휘 돌아다니는 생각을 했다. 언젠간 도계 광부 아저씨, 태백장 여관 할머니가 녹음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자신들만의 목소리. 


남해에서 삼척까지 다음엔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파도를 한참 바라보았다. 

뗏목과 함께



-Epilogue- 

오래된 여행 글을 꺼내보고 시간의 빠름에 또 무색함을 느낀다. 

시골버스의 여행을 마치기 전에 나는 결혼을 했고, 아들이 하나 생겼다. 

훌쩍 떠나기 어려운 지금. 나의 시골버스는 언제 시동을 걸 수 있으려나. 

아니면 동행자와 함께 하는 여행이 되려나?  


오래된 사진 속에 사람들이 무척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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