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는 여관 '관해장'
짐을 풀기 전 마지막 관문. 제멋대로 생긴 계단과 비탈길이 수직으로 쌓여있다. 계단도 삐뚤삐뚤 비탈길도 울퉁불퉁한 이 길을 캐리어가 재밌는 듯 장단을 맞추며 올라갔다. ‘그래 이 맛이지’ 예상치 못하는 길들은 언제나 호기심을 가져다준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몸에 자극을 주는 불편함. 계단 끝자락에서 고개들 돌려본다. 짝꿍은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었다.
주인은 2층에 있는 침대방으로 안내를 해주시고는 수건과 보리차를 가지고 따라오신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복도의 나무 바닥이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낸다. 주인아주머니의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방을 나섰다.
난간의 각진 모서리들은 둥글게 닳아있다. 반세기의 시간 동안 이곳을 방문한 객들의 손길과 발길이 만든 광(光)이다. “관해장은 한국인들보다 외국인이 너무 좋아해요” 외국인도 알아본다는 주인의 자랑에 불현듯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떠올랐다. 최근에 시작한 동네의 재개발. 태어나 줄곧 한 동네에서 자란 나에게 가파른 언덕길과 내리막길, 오밀조밀 모여있던 집들은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다. 어느 날 이 추억들을 순식간에 밀어버렸다. 밤에 홀로 뒷산에 올라 폐허가 된 부지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축구장 만한 부지가 화려한 브랜드의 이름 아래 재건축되고 있었다. 미련을 갖기도 전에 아파트는 쑥쑥 자랐다. 어찌 이리도 빠를까. 괜히 서글퍼졌다. 탐정 놀이를 한다고 올라탔던 담벼락들이 무너졌다. 개미 문방구의 간판이 철거됐다. 골대였던 전봇대는 땅으로 꺼졌다. 그때 친구들은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는데 그때의 골목마저 보지 못해 더 서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된 무언가를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다. 이곳에 오기로 결심한 이유도 우연히 알게 된 시(時) 때문이었다.
<목포 관해장 이야기>
평범한 낡은 여관.
섬으로 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여객터미널 야트막한 언덕 위에
관해장은 아직도 있었다.
25~6년 전 쥐똥만 한 배낭을 멘 아가와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여자가
도시를 피해 이곳에 왔었다.
“음메, 뭔 일이랴? 욜루 앉으셔!”
쥔장은 낯선 도시여자와 아이를
바다가 잘 보이는 방에 재우고
섬으로 가는 배표도 끊어다 주고
민박집까지 다 챙겨가며 하룻밤을 재워주었다.
그때
죽음 가장자리까지 갔던 그 여자는
온정 어린 밥과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다 아는 눈빛으로
혀를 차며 자꾸만 등을 쓸어주던 손길에
목이 메었었다.
아마도 그래서 계속 살았나 보다.
“아가 있응께 어떻게든 사쇼잉!”
마지막 당부의 약속을 지키려고…
여관은 낡았어도 아직 있건만
그 노부부 주인장은 이미 없었다.
그게 세월이다. - 서양화가 함순영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