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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Aug 20. 2024

시골버스_목포편 Ep3

세월이 배어 있는 곳에서는 각자의 인생이 책갈피처럼 꽂혀있다.

<목포 관해장 이야기>


평범한 낡은 여관.         

섬으로 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여객터미널 야트막한 언덕 위에

관해장은 아직도 있었다.


25~6년 전 쥐똥만 한 배낭을 멘 아가와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여자가

도시를 피해 이곳에 왔었다.


“음메, 뭔 일이랴? 욜루 앉으셔!”

쥔장은 낯선 도시여자와 아이를

바다가 잘 보이는 방에 재우고

섬으로 가는 배표도 끊어다 주고

민박집까지 다 챙겨가며 하룻밤을 재워주었다.


그때  

죽음 가장자리까지 갔던 그 여자는

온정 어린 밥과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다 아는 눈빛으로

혀를 차며 자꾸만 등을 쓸어주던 손길에

목이 메었었다.


아마도 그래서 계속 살았나 보다.

“아가 있응께 어떻게든 사쇼잉!”

마지막 당부의 약속을 지키려고…


여관은 낡았어도 아직 있건만

그 노부부 주인장은 이미 없었다.


그게 세월이다.   

#관해장에서 바라본 바다

서양화가 함순영 씨의 시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다 아는 눈빛으로’라는 구절을 읽을 때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마음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말보다 마음으로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3층에서 시의 주인공이 바라봤을 그 바다를 나도 바라보았다. 고독하고 외로운 바다. 휴양지의 바다와 다른 목포의 바다는 삶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쉼의 바다가 아닌 삶의 바다를 온 적이 있었던가..? 굳이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는 바다의 풍경에선 나도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어도 될 것 같다.


#관해장 웰컴드링크
#관해장 어매니티

“오빠?” 날 부르는 소리에 청승맞은 생각을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에~취!” 시골에서처럼 코가 간지러워졌다. 옆에 있던 짝꿍도 같이 재채기를 시작했다. 서로 훌쩍이면서 웃었다. “괜찮겠어?” “네 약하나 사 먹으면.. 에~취! 괜찮을 거 같아요” 서로 재채기를 주고받으며 오래된 여관에서의 신고식을 시작했다. 방의 벽지부터 화장실의 타일까지 하나같이 촌스럽기 그지없다. 이불은 더할 나위 없다. 시골집에서 본 익숙한 물건들이 보였다. 내심 데려간 짝꿍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편하고 좋은 숙소에 있고 싶지만, 이런 곳에서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 안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곳과 닮은 삶을 살길 바랐다. 괜찮냐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짐을 정리하고 밥을 먹으러 나섰다. 


#항동시장 풍경 


바로 앞으로 난 길이 항동 시장으로 이어진 길이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백반을 먹었다. 반찬이 열두 가지가 나왔다. 대부분 전라도 특유의 젓갈 반찬이 많았다. 지극히 초딩 입맛인 까닭에 손도 대지 않은 반찬이 서너 개가 됐다. 뜨거운 흰밥에 젓갈 하나 올려서 입에 한 움큼 넣고 싶지만, 내 안에 초딩은 입을 닫고 고개를 젓는다. 다행히 조기찌개가 입에 잘 맞았다. 작은 조기 몇 마리를 발라 먹고 얼큰한 국물에 추위를 녹였다. 집 밥 같은 한 끼다. 어쩔 수 없는 타지의 외로움이 이 밥 한 끼에 조금 위안이 된다. 먹어도 먹어도 부대끼지 않는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 식당 아주머니가 손도 대지 않은 반찬들을 보면서 희한하다는 듯 쳐다보신다. “이게 얼마나 맛난 건 디 이걸 안 드쇼잉?” 부끄러워 멋쩍게 웃고 항구로 향했다.

 수십 대의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항구의 반대편에 적막한 식당들이 늘어져있다. 현지인들 몇몇만 단골 식당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성수기가 아닌 식당들을 지나가는 건 조금 곤욕스러운 일이다. 식당 앞에 주인들의 뜨거운 눈빛을 오롯이 감내하며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 듣고 싶지만 손님이 아닌 걸 알면 차가운 반응이 나올까 두렵다. 오늘은 조금 멀찌감치 거리를 두기로 했다. 항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항구풍경
#항구풍경
#골목에 놓인 그물 

정박되어 있는 배들과 어부의 손을 기다리는 그물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오늘의 항구는 조용했다. '시골버스'의 그물에는 별 수확 없이 날이 저물었다. 이대로 들어가긴 아쉬워 밤에 항구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로 했다. 일렁이는 파도소리에 배가 끼익 끼익 앓는 소리를 낸다. 쉬고 싶은 걸까 나가고 싶은 걸까. 잔업을 하는 어선의 불빛이 바다에 일렁인다. “어때요 오빠? 뭐 좀 나오겠어요?” 들어와 짝꿍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어본다. “하.. 잘 모르겠어 뭐가 너무 없는데..” 이 적막하고 고요한 곳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같이 온 짝꿍의 안위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갔던 시골버스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곳이다. 조용하지만 소리를 내는 것 같고, 여유롭지만 지쳐 보인다. 한 차례 전쟁이 휩쓸고 간 슬픈 평화로움이 서려있다. 이 목포가 주는 감정을 좋게 포장하기가 어려웠다. 삶의 처연한 모습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내 성격이 이럴 때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다. 나는 아직 어두운 곳에서 밝은 것을 보는 어른이 되지는 못한 듯하다. 일전에 짝꿍에게 나는 미소가 근사한 사람으로 늙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듣고 있던 짝꿍은 "오빠 그런 미소가 그냥 나오겠어요? 세상의 단만 쓴맛 신맛 떫은맛 다 맛보고 나오지 않을까?"라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삶의 단면을 편식하며 살았구나.. 싶어졌다. 


알레르기 약을 먹어서 그런지 재채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전기장판에 등은 뜨겁고 외풍으로 코가 시렸다. 내일은 짝꿍이 이야기한 고하도로 가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밤의 관해장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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