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 민속 마을
넘쳐나는 먹거리에 점점 빠른 속도. 모든 걸 예상할 수 있는 지하철과 버스들. 환경이라는 것은 사람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시나브로 나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한다. 이렇게 편리하고 빨라진 요즘 '넉넉함'이라는 단어에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까닭은 세상은 점점 넓어지지만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나를 가두고 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시골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 교수님의 제안으로 충청도로 향했다. 초가집이 마을 곳곳에 있는 마을. 심지어 그곳에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 <외암 민속 마을>이다.
점심에 도착하고 날것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매표소와 식당 카페를 보고 조금 실망을 했다. 하지만 이곳도 주목을 받아야 명맥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라는 생각을 했다. 잔치국수와 묵을 시켜주셨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 잔.
마을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집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등의 택호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명함이 붙은 집보다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은, 고택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소박한 초가집들이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지푸라기 지붕에 놀라고 물이 새진 않을까 생각하며 동네를 돌았다.
고택 사이로 소나무가 보였다. 도시의 빌딩이 아닌 단층집이 즐비한 이곳에 집보다 높게 솟은 것은 나무뿐이었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였다. 숨이 트인다는 것은 숨보다 먼저 눈이 트여야 하는 탓에 이곳에서는 막힌 숨이 절로 트인다.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보호수는 절반만 살고 나머지 절반은 죽어가고 있었다. 600년의 세월 동안 마을의 대. 소사를 지켜본 것은 아마 이 나무밖에 없을 것이다. 고목은 죽어가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마 몇 해는 잎을 틔우고 또 그늘을 내어줄 것 같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근처 식당에서 맛난 저녁을 먹고 준비해 주신 안주에 술을 더 마시기로 했다. 자연산 섭에 멍게까지 내륙지방에서 얻어먹기 힘든 귀한 식재료가 놓인 식탁을 보니 대접을 받는 마음이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초딩입맛인 나는 프링글스를 가장 많이 먹었다.)
중간중간 담배를 태우러 나가러 마당에 나갔는데 다시 눈이 내렸다. 오후 내내 느꼈던 자연의 소리가 나를 고요하게 만들었는데 가로등에 반짝이며 떨어지는 눈들이 또 이렇게 설레게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빼곤 거의 핸드폰을 들지 않았는데 시끄러움을 덮으려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했던 모습이 이곳에서는 더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해가 지고 눈이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의 이야기를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교를 하는 딸의 손을 잡고 논두렁을 걸으며 보았던 노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을 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전원주택에 살던 대표님은 정작 전원주택의 안에는 최신식의 삶이어서 이곳에서의 삶과는 또 사뭇 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환경이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지만 아직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남은 술과 더 얻은 술을 먹으면서 자정을 넘겼다. 바닥에 교수님이 주무시고 나는 침대방에 가서 잤는데 외풍이 불어 잠결에 조금 뒤척였다. 나도 바닥에 등을 지지면서 잤어야 했는데...
일찍 일어나 마을을 둘러보니 골목에 눈이 빗자루로 쓸려 있었다. 동네에서 막내축에 속하는 대표님은 이 소리에 단잠을 포기하고 같이 나가서 마을을 쓴다고 했다. 마을이라는 공동체는 비단 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의 의무도 포함이다.
이곳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기로 했다. 그 안에는 순환하는 사계절이 있고 순환하는 삶과 죽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마을이라는 집에 사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당장 정월대보름에 다시 가기로 했다.
p.s 잘 먹고 싶지만 아직 힘든 멍게 그리고 가장 많이 먹은 호두 안주와 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