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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Jun 26. 2023

너의 외로움이 내게서 비롯될까

끝나지 않는 둘째 고민에 대하여

나의 약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일 수 있는  가족이 유일하다. 정확하게는 나의 '원가족'. 내가 새로 만든 가족보다 나의 '원래 모습'을 잘 아는 원가족이  더 편하다. 특히 나잇대가 비슷한 자매가 그렇다. 어렸을 때는 연년생 동생이 사사건건 얄미웠지만 서른 살이 넘어 각자 결혼하고부터는 나이 차가 거의 안 느껴진다. 엇비슷하게 쌓인 나이를 밟고 섰기에 삶을 보는 눈높이도 비슷해서일까. 커리어와 육아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잘 통한다. 과자 같은 군것질을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하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늘 마음은 편하고 입은 바쁘다.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는 나와 자매가 확연히 다르다.


나는 생각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아 늘 조급하다. 학업,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 앞에서 나는 늘 마음을 졸였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벌주며 자책했다. 예를 들면 나는 고3때 일부러 불편한 옷을 입고 잤고 그나마 이불도 반만 깔고 잤다. 고3이 몸이 편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데 그때 나는 정말 진지했다) 그리고 수능시험 전날은 불안함과 초조함에 뒤척이다 결국 한숨도 못 자고 수능장으로 향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다르지 않다. 겉으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이 늘 마음 바닥에 깔려 있다. 커리어도, 삶도 뭔가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좋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에, 편안함과 느긋함보다는 바쁘고 힘든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하지만 자매는 그렇지 않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나보다 훨씬 느긋하달까. 고3때 동생은 잠은 정말 잘 잤다. 수능 날에도 평소처럼 한숨 푹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수능장으로 향했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껏 내가 봤을 땐 그는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큰 사건(?)에 별로 압도되지 않는 것 같다. 커리어에 있어서도 그렇다. 아이를 낳을 무렵 출퇴근이 어려워 사표를 낸 이후, 6년간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다. 그리고 최근, 오랜 '경력 단절'을 탈출하고자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봤고, 한 번에 철썩 붙어 공무원이 됐다. (그것도 국가직, 지방직 2관왕이다) 그리고 지금은 육아휴직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휴직 2년차의 매우 느긋한 일상을 보낸다.


내가 종종 그럴 필요 없는 일들에서조차 안달복달하고 있으면 나의 느긋한 자매는 너무 그러지 말라며, 편안한 자세로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며 느긋하게 말한다. 마치 커다란 몸을 둥글게 말고 뜨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22시간씩 자는 엄마 집 고양이 ‘밥풀이’ 같은 모습이다. 그의 인생 모토는 '가장 최소한의 노력으로 이 한 몸 편하고 즐겁게 살자'란다.


22시간씩 자는 엄마집 고양이 밥풀이


그런가 하면, 어떤 면에서는 꼼꼼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계산 직후 받은 영수증의 잘못된 차액(약 200원)을 귀신같이 잡아낸다거나, 아파트 운영위원회 후보의 공약을 유심히 보았다가 공약이 실천되지 않음을 잡아낸다. 그 뿐인가. 신도림에서 20분 전에 출발한 1호선 전철이 아직도 인천에 도착하지 않았느냐며 상대방의 귀가 시간을 체크하여 채근하는데도 빈틈이 없다. 이런 꼼꼼함은 나와 무척 다르다.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차이와 셈에 둔감한 나는 능력 밖의 일이다. (사실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다) 나는 자매의 그런 꼼꼼한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눈에 다 보이느냐며 탄복한다.


지금 나는 충청도에 살기 때문에 인천에 '올라가야만' 자매를 만날 수 있다. 자매는 엄마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친정 부모님을 찾아뵐 때마다 '세트로' 만난다. 인천은 내 고향이기도 하고, 부모님을 뵙고 '엄마 밥'도 먹을 수 있는 친정에 갈 때마다 그저 마음이 놓이고 푸근하다. 같은 원가족 멤버여도 부모님과 자매는 느낌이 다르다.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느낀다.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들어가심에 따라 무작정 기대기 어렵다. 내 약한 모습을 보면 걱정하실 것 같다. 하지만 자매들은 조금 다르다. 내가 언제든 정서적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느낌,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을 언제든 보여줘도 안전할 거란 느낌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지지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살면서 잘 알게 됐기 때문에 자매의 존재가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이렇게 나와 다른, 그러나 같은 유전자 풀을 가졌고 부모님과 함께 산 30년 가까운 세월을 공유한 자매의 존재가 내게 큰 힘이 된다. 인생에서 받은 선물 같다. 아주 어렸을 때 받았지만 포장을 다 푸는 데 40년 가까이 걸린 아주아주 큰 선물. 그러니 어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 아이에게 자매가 있었으면 하는 고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도 엄혹해서,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육아인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복기하자니 그저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사진 속의 어린아이는 동그랗고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는 매일같이 마른수건을 짜내야만 얻어진다. 육아인의 일상은 끝도 없이 허리를 숙여야만 해결되는 집안일로 꽉 차 있다. 끊임없이 쌓이는 물티슈와 기저귀 쓰레기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끝도 없이 나가는 지출들로 정신이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24시간 내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은 존재에 대한 책임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런 존재를 8년 만에 내 인생에 다시 소환하기에 나는, 너무 멀리 왔다.     


결정적으로, 첫 육아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나에게 ‘자기효능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나는 어떤 일을 맡았을 때 내가 상황을 직접 컨트롤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최대한 예측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무척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나는 애착을 갖고 진심을 다한다. 만약 결과가 좋으면 그게 다시 나를 움직일 에너지가 된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그 감각을 좇아 열심히 공부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14년째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육아는 영 다르다. 내가 목표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결과를 눈에 그릴 수 없다. 들인 노력과 에너지에 비례하지 않는, 변수로 가득한 삶이 육아인의 삶이다. 하루 종일 열심히 해도 피드백이라곤 없다. '나'라는 기계를 움직인 동력이 공급되지 않으니 에너지를 쓰고 다시 채우는 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런 낭패감은 육아하는 내내 마음 바닥에 고스란히 쌓였다. 못난 감정이 모여 '화'가 됐다. 특히 2년 반 육아휴직을 하면서 얼마나 내면에 이 ‘화’를 축적하고 살았던가를 생각하면, 나는 역시 훌륭한 육아인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8년 가까이 육아인으로 살면서 이제야 어느 정도 자기효능감의 역치가 낮아졌다. 그리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겨우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다시 그 과정을 기꺼이 반복할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아니오,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나로서 더 '행복'해지는 길이 아님을 안다.




주양육자(어쨌든 엄마)가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 기간 쏟아부어야 아이가 안정되게 잘 큰다. 일부 직장에서 인정하는 '3년'의 육아휴직도 아이 하나 키우기에 부족할 수 있다. 워킹맘으로 살자면 포기할 게 많다. 전력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내느냐, 적당히 타협하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적당히 느냐의 갈림길에 수시로 선다. 나는 전자가 내게 더 맞는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워킹맘의 삶은 후자여야 한다. 여러가지를 한번에 동시에 (그리고 불완전하게) 해야만 일상이 어찌어찌 굴러간다. 정답이란 게 없다. 하루가 24시간이고 내 몸뚱이는 하나다. 어떻게 업무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냄과 동시에 집도 깨끗하며 아이 정서를 일일이 헤아리고 양질의 음식과 컨텐츠만으로 키울 수 있겠는가. 두 개의 완벽하게 다른 일이 시간과 에너지를 끝없이 요구하는 상황. 나를 두 개, 세 개로 쪼개야 가능하다. 결국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엉망이 된 집을 보며 한숨 한 번 쉬고, 적당히 타협하며 하루하루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쨌든 현재를 굴러가게 만드는 삶. 하루하루 무탈하게 '보내는' 삶은 이제껏 해온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현재는 너덜너덜할지언정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겨우 생긴 지금(실제로 아이가 커 가며 '육아의 굴레'를 조금씩 벗는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육아인의 삶을 내가 잘 살 자신이 있을까. 지금 당장은 없다. 그럼 앞으로는? 더 자신 없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면서 겁만 많아진다. 출산은 노화를 10배는 가속시키는 효과가 있다는데, 나는 출산과 육아로 더 늙어버린 내 모습을 거울로 마주할 자신도 없다.      


결정적으로, 나는 남편을 미워하게 될 것 같다. 아이 하나를 이제껏 키우면서 마음 한 켠에 쌓아둔 화가 사그라들고 있지만 아직도 불씨가 좀 남았다. (나는 그릇이 작다) 그 '화'를 만드는 데 팔 할은 남편이 기여했다. 남편이 나쁜 아빠라서가 아니다. 남편은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잘 노는지 안다. 장난감과 사탕을 사주면서 환심도 잘 산다. 하지만 그게 다다. 남편은 어디까지나 '바쁜 직장인의 자아'가 디폴트다. 휴일을 이용해 '놀아 주는' 부양육자다. 교육과 정서 등 디테일을 챙기며 아이의 미래와 성장을 도모하는 주양육자가 아니다. 앞으로 아이가 몇 명이 더 있더라도 그는 그런 역할을 맡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아이와 잘 놀아 준다


일가정 양립 시대에, 맞벌이 부부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아 업계 평균보다 조금 많은 연봉을 받는 삶을 택했다. 그런 이유로 '일가정 양립'은 그에게 불가능한 과제다. 그냥 좋은 아빠 되기도 때론 벅차 보인다. 그런데 그가 벌어오는 경제적인 혜택을 함께 받고 있는지라 나도 그에게 더 할 말이 없다.     


둘째 출생으로 내 에너지가 육아에 훨씬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남편을 필요로 할 테다. 그런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서운함이 쌓일 것이다. 그가 육아에 '나눠 쓰는' 에너지보다 실제로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많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내 쪽에서의 지출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나를 ‘위로’하는 그에게 나는 어쩔수 없이 화가 날 것이다. 내 그릇으로는 원망과 미움을 쌓지 않을 재간이 없다. 간장 종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니까.


그런 이유로 연년생 자매의 존재라는 행운이 내 아이에게는 없게 됐다. 아직 여덟 살 터울이라는 희망은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으로 점점 시간이 간다. 이러다가는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지 않은길에 대한 아쉬움은 늘 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기대해 본다. 요즘 추세는 다들 하나만 낳는 것이니, 30년쯤 후에는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겠냐고 말이다. 사회 분위기계속 바뀔 테고, 아이는 나와 많이 다른 삶을 살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결정 미루기’가 아이의 삶에서 ‘잃어버린 결정적 한 방’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동안 전전긍긍했던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서였던 것 같다. 내 깜냥과 상관없이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 그것이 내 작은 그릇을 차고 넘치게 만들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욕심은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내려놓음’이 훗날 후회로 이어지지 않기를 빈다. (그 후회조차 욕심에서 비롯한 것일 테지만)     


나처럼 고민하다 결국은 두 남매의 엄마가 된 후배는 말했다.

“저도 고민하다 둘째 낳았는데, 어쨌든 더이상 고민은 없어요. 언니도 한 번 낳아 보시면 알 거예요. 어쨌든 고민은 사라져요. 그 후에 힘든 건 별개니까요.”

맞는 말이다. 어쨌든 들어선 길에서 후배의 선택은 열심히 전진하는 것밖에 없을 테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전두엽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자매 없이 혼자 크는 내 아이. 자기는 외동이 좋단다.


사진 속 아이의 예쁜 미소를 보면서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네가 원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30년 뒤 네 삶의 좋은 동반자가 될(수 있을지 모르는) 존재를 이 세상에 불러와야 할까? 아니면 너를 좀 더 단단한 아이로 키우고,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더 집중해야 할까?     


우리 엄마는 늦둥이 막내를 마흔 한 살에 낳으셨다. 나는 아직 마흔 살(만으로 서른 여덟 살)이니 고민할 시간이 조금은 있다. 그런 이유로 혼자 잘 노는 아이를 보며 나의 둘째 고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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