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너의 몸이 평소보다 더 따뜻했어. 평소처럼 잘 놀지 않는 네 모습에 뭔가 느낌이 이상하기에 얼른 체온계를 가져와 귓구멍에 대고 열을 재 보았지. 38.5도. 체온계 화면도 열이 높다는 것을 경고하는 듯 노란색이네. 열이 난다는 건 네 몸에 뭔가 침입했고, 이미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는 증거였지. 엊그제 널 데리고 했던 쇼핑몰 외출이 무리였을까. 환절기 감기가 유행이라고들 했지만 온종일 집에만 있기 갑갑했던 내가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쐬고 커피도 한 잔 사 마셔야지’하며 아기띠를 둘러 너를 안고 감행한 외출이었어. 엄마는 외출해서 사 마신 커피가 아주 맛있었는데, 그 사이 네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침입했나 봐.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계 숫자가 시시각각 조금씩 올라가고, 너는 점점 처지고 활기를 잃어 갔지.
체온과 연령에 따라 색상으로 경고해 주는 체온계 (출처=브라운체온계몰)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약에 대해 오래 공부한 약사잖니. 만약 다른 아이에게 열이 났다면 약국에서 우선 해열제 시럽을 사다 먹여야 한다고 조언했을 거야. 그런데 막상 초보 엄마가 되어 내 아이에게 열이 나니 그 생각이 잘 나지 않더라. 역시 뭐든지 직접 경험하는 게 중요해. 마침 집에 예방주사를 맞고 열이 났을 때 먹이려고 준비해 둔 타이레놀 시럽이 있었지. 설명서에 적힌 대로 몸무게만큼 약을 먹이고 온도를 체크하니 조금씩 열이 내려가더라. 밤새 지켜보고, 다음 날 소아과 병원에 널 데리고 갔지. 의사 선생님은 감기 증상이라고 하시더라고. 처방받은 감기약에도 해열제 성분이 들어 있어서, 나는 지어 온 감기약을 너에게 먹이고 밤새 열을 쟀단다.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난다는 건 우리 몸의 정상적인 면역반응이야. 면역반응이 뭐냐고? 우리몸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반응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세균 같은 작은 생물이 들어와서 증식하면 우리 몸이 위험해지니까 이들을 없애기 위해 우리 몸에 있는 군대가 출동해서 전투가 일어나지. 그때 만들어지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뇌의 체온조절장치를 건드리면, 우리 몸의 온도 설정값이 높아져서 체온이 높아지게 돼. 마치 보일러 온도 설정값을 올리면 보일러가 돌아가면서 집안 온도가 올라가는 것과 같지. 열이 나는 건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우리 몸의 방어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그런데 체온이 너무 많이 오르면 몸이 위험해질 수 있어.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열이 나면서 몸이 처지고 잘 먹지 못하면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려줘야 해.
해열제의 약리작용 (출처 = 약학정보원)
해열제는 ‘프로스타글란딘’이 나오는 것을 막아서 체온조절장치가 우리 몸의 온도 설정 값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역할을 해.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은 대표적인 해열제 성분이야.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이라는 상표명이, 이부프로펜은 ‘부루펜’이라는 상표명으로 잘 알려져 있어.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모두 열을 내려주고 통증도 없애 주는 일을 해. 다른 점이 있다면, 아세트아미노펜과 달리 이부프로펜은 염증을 없애주는 작용도 한다는 거야. 두 성분 모두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둘 다 해열제로 쓸 수 있어.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 성분이고, 앞으로도 종종 만날 일이 있으니, 조금 더 설명해 볼까?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 진통 효과가 뛰어난 대신 염증을 없애 주는 효과는 약해. 대신 먹고 속이 쓰리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적지. 그래서 식사와 관계 없이 복용할 수 있어. 이부프로펜은 아세트아미노펜처럼 해열, 진통 작용이 있는데, 거기에 더해 염증을 없애 주는 일도 해. 한 가지 일을 더 하니 몸에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이부프로펜은 위장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이부프로펜을 복용하고서 속이 쓰리고 아플 수 있겠지? 그래서 식사 후에 복용하는 게 좋아. 그리고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둘 다 과하게 복용하면 각각 간과 신장을 다치게 할수 있으니 양과 간격을 꼭 지켜 복용해야 해.
약이 잘 듣거나 부작용이 있는 건 사람마다 다르고 증상마다 다르기 때문에 써 봐야 비로소 알 수 있어. 그래서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두 가지를 사다 두고, 한 가지를 써 봐서 열이 내리지 않는 경우에는 한두시간 간격을 두고 지켜보다가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복용하는 방법을 써. 아세트아미노펜으로는 잘 듣지 않는 열이, 이부프로펜을 복용했을 때 비로소 내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같은 종류 해열제끼리는 4시간 간격을 지켜서 복용해야 하고, 정해진 양만 복용하는 걸 잊으면 안 돼.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날 때 해열제를 쓰는 것은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아니야. 열이 나는 이유는 다양한데, 어린 아이가 열이 나는 이유는 대부분 감기 바이러스 같은 감염성 질환에 의해서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열은 우리 몸이 바이러스나 균의 침입에 대항하는 전투가 벌어질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하지만 열이 너무 오르다 보면 탈수가 일어나거나 조직이 손상되는 것처럼 몸에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해열제를 쓰는 거지. 열이 오르지 않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감염성 질환에 걸리지 않는 거지만, 우리는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감기바이러스에 노출되곤 해. 특히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처럼 아이들이 많이 모여 생활하면 자주 그런 일을 겪지.
네가 사달라고 울며 떼썼던 "콩순이 병원놀이"(출처=영실업)
엄마가 말해주고 싶은 건, 살면서 많은 문제들이 '해열제처럼' 해결되기도 한다는 거야. 엄마랑 같이 마트 갔을 때 기억나? 엄마랑 너랑 단둘이 외출했는데, 네가 장난감 코너에서 <콩순이 병원놀이> 사달라고 떼썼잖아. 간단한 반찬거리 사려고 간 건데, 계획에도 없는 비싼 장난감을 갑자기 사 줄 순 없지. 이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면, 너에게 왜 지금 <콩순이 병원놀이>를 사줄 수 없는지, 사 준다면 언제 사 줄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너를 완전히 납득시키는 거였지. 만약 그래도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쇼핑을 당장 중단하고 카트에서 널 번쩍 들어 데리고 나오거나. 하지만 그게 어디 쉽니? 떼쓰는 너에게 논리적인 설명이 먹힐 리 없잖니. 그렇다고 쇼핑을 중단할 수도 없고 말이야. 얼른 식재료를 사갖고 집에 가야 저녁을 만들어 먹을 게 아니겠니.
결국 엄마는 주머니에서 추파춥스 사탕을 하나 꺼냈지. 네가 달콤한 딸기 사탕 맛에 취해 있는 동안, 엄마는 필요한 물건을 얼른 집어 계산을 마치고 나왔단다. 갑작스런 장난감 구매가 왜 어려운지, 구매를 꼭 해야 한다면 언제 할지에 대한 너와 나의 대타협은 그 자리에서 성사되진 못했지만상황 자체는 빠르게 정리됐지. 그 후로도 추파춥스 사탕은 어려운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였단다. 마치 감기 바이러스를 완전히 잡지는 못하지만 감기 때문에 열이 날 때 열을 내려서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해열제 시럽처럼 말이야. (나중에 어금니가 조금 썩어서 치과 치료 받은 데 추파춥스 탓도 일부 있었다는 건, 약의 ‘부작용’에 빗댈 수 있겠지!)
인생은 내게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부딪쳐 가면서 너만의 방법을 찾는 여정이란다.
앞으로 네가 많은 시간을 보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의 단체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란다. 불편함을 주는 친구와의 관계도, 어떤 불편함이냐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해결할 것이냐를 결정하게 될 거야. 큰 불편함을 계속 주는 친구와의 관계는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얘기해서 꼭 해결해야 하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생기는 약간의 다툼이나 불편함은 그 상황을 스스로 대처하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 친구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을 때마다 반을 바꿔버리거나 아예 그만 다닐 수는 없잖아. 이렇게 불편한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매뉴얼’이 생기는 걸 알게 될 거야. 마치 어떤 해열제가 열을 내리는 데 효과적인지 직접 복용해 보고 나서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인생은 내게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부딪쳐 가면서 너만의 방법을 찾는 여정이란다. 어려울 것 같다고? 여기 엄마가 있잖니. 해열제가 열을 내려서 기운을 되찾도록 도왔던 것처럼,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엄마는 너에게 필요한 약도 줄 수 있고, 동시에 인생을 건강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경험도 얼마든지 나눠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