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지혜 Nov 20. 2023

여드름이 걱정일 때, 여드름약

호르몬이 폭발하는 사춘기에 해야 하는 일

“하아.”      

시험이 내일모레인데 자꾸 책상 옆 손거울에 눈이 갔어. 인중 한가운데 왕여드름이 돋은 게 영 신경 쓰였지. “하필 시험 기간이 생리 주기랑 겹칠 게 뭐람.” 투덜거리며 다시 공부하던 책으로 눈길을 돌렸단다. 엄마 중학생 시절 이야기야. 엄마는 중학생 때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얼굴에 여드름이 나곤 했어. 그것도 이마 한가운데나 입술 위처럼 눈에 잘 띄고, ‘부처님’이나 ‘오서방’처럼 별명 짓기 딱 좋은 위치에 말이야.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여서 숨고만 싶던 시절이 있었지.


어른이 되기 위해 누구나 한 번씩은 사춘기를 겪어. 엄마도 그랬어. 혼자만의 고민이 생기고, 가족들도 이유 없이 밉고 싫었지.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아무도 나를 몰라줘’, ‘이런 나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같은 우울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마음을 시원히 말하지 못했어. 엄마가 중학교 2학년 때는 막내동생이 태어나기도 해서, 육아로 바쁜 외할머니에게도 말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지. 엄마는 외모 중에 특히 곱슬머리와 둥근 코, 그리고 퉁퉁한 몸이 맘에 안 들었는데, 가끔 피부에 나는 여드름까지 합세하면 나 스스로가 이 세상 누구보다 못나 보였어.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아름답고도 복잡한 시기지만 그걸 겪는 당사자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엄마도 그랬고 말이야.      




수많은 사춘기 청춘을 괴롭히는 여드름의 가장 큰 원인은 ‘호르몬’이야. 어린아이일 때는 여드름이 나지 않다가, 호르몬이 폭발하는 사춘기가 되어서야 여드름이 나는 이유야. 사춘기가 되면 몸 속에 ‘안드로겐’이라는 호르몬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해. 안드로겐 분비가 많아지면 피부 안쪽의 피지를 만들어 내는 피지선이 활성화되면서 갑자기 피지가 많이 분비되지. 그러면 수시로 기름종이로 얼굴을 닦아내도 소용없을 정도로 '개기름'이 많이 나오게 돼. 그렇게 피지가 많이 나오다가, 마침 각질 세포가 두꺼운 벽을 만들어 모공을 막으면 그 안에 피지가 쌓이고 고이게 돼. 이렇게 모낭 속에 고여 딱딱해진 피지가 여드름의 시작이야. 여기에 피지를 먹고 사는 세균인 ‘Propionibacterium acnes’ 같은 여드름균이 모여들어 증식하면 염증이 생기게 되지. 염증이 생기면 빨갛게 부어오르고 심하면 고름이 되기도 해. 여드름이 심한 사람은 염증 때문에 얼굴 곳곳이 울긋불긋하고 울퉁불퉁해 보여. 가뜩이나 외모 고민이 심할 사춘기에 얼굴 피부에 여드름이 많이 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지. 심지어 얼굴에만 나는 게 아니라, 등에도 생기고 목, 가슴, 어깨에도 여드름이 생길 수 있어.     


여드름 발생 과정과 여드름 종류 (출처=old.kpanews.co.kr)

특히 여드름은 생리할 때가 되면 더욱 악화되곤 해. 생리가 시작되기 약 7일 전부터 몸에 ‘프로게스테론’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데, 이 호르몬 또한 피지가 많이 나오도록 해서 여드름이 나기 쉽게 하기 때문이야. 프로게스테론은 여성의 생리 주기마다 나오기 때문에, 폭풍 같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서도 많은 여성들이 여드름으로 고생하는 이유 중 하나야.     


여드름 치료를 위해 쓰는 약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먹는 약과 바르는 약으로 나눌 수 있지. 먼저 바르는 약은 항생제, 각질용해제, 그리고 항염증제로 나눌 수 있어. 항생제는 여드름균을 억제하기 위해 쓰는데, 아무 항생제나 쓸 수 있는 건 아냐. 보통은 ‘클린다마이신’이라는 성분을 함유한 외용액제를 쓰는데, 여드름이 붉어지고 염증이 생긴 상태에서 쓰면 효과가 좋아. 클린다마이신은 항생물질이니 약국에서 바로 살 수는 없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여드름 치료제 종류 (출처=old.kpanews.co.kr)


각질용해제로는 ‘살리실산 용액’과 ‘과산화벤조일 용액’이 대표적이야. 먼저 살리실산 용액은 각질을 연하게 만들어서 피지 분비를 원활하게 해주는 약이야. 각질이 녹으면 그 안에 고여 있던 피지가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겠지? 그리고 과산화벤조일은 각질을 녹이고 모낭 안에서 반응성 산소(free radical)를 생성해 여드름균을 죽이기도 해. 과산화벤조일은 효과가 좋지만 그만큼 피부에 자극을 많이 줄 수 있고, 빛을 받으면 피부가 붉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 두 가지 약은 모두 초기 여드름, 그러니까 세균이 번식해서 염증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때 쓰기 적합하고, 처방받지 않고도 약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어.      

그리고 항염증제로는 ‘이부프로펜피코놀’과 ‘이소프로필메틸페놀’이라는 두 가지 성분을 배합한 크림제가 있어. 이부프로펜피코놀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성분이라서 염증반응을 없애고 통증을 완화시키고, 이소프로필메틸페놀은 항균 작용, 염증 억제 작용을 하지. 이 약은 특히 붉어진 여드름 난 부위에 콕콕 바르면 여드름 때문에 생긴 염증을 억제해 줘. 앞서 말한 항생제나 각질용해제와는 다르게 자극이 적어서 수시로 바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야.     


먹는 여드름 치료제 이소트레티노인 제제. 지금은 로아큐탄 말고 같은 성분을 함유한 다른 의약품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 (출처=히트뉴스)


그런데 만약 여드름균이 많이 증식해서 염증이 심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먹는 약을 처방 받아 써 볼 수도 있어. 먹는 여드름 약으로 많이 알려진 건 비타민 A 유도체인 ‘이소트레티노인’을 함유한 약이야. 여드름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가 과도한 피지 분비인데, 이 피지 분비 자체를 막아 주는 약이지. 마치 여름에 모기를 없애기 위해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가 사는 서식지를 미리 없애는 것처럼, ‘이소트레티노인’은 여드름균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말려 없애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해. 여드름의 근본 원인인 피지를 말려 주니 약을 써 본 여드름 환자들은 여드름이 잘 낫는 경험을 하게 되지.     


하지만 이소트레티노인은 효과가 좋은 만큼 부작용도 많아. 피지 분비 억제 기능은 여드름 난 부위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몸의 다른 부위에서는 어느 정도 피지 분비가 꼭 필요하지. 그런데 이 여드름 약은 모든 피지를 말리기 때문에 입술이 건조해지고 머리털이 빠지거나 눈이 뻑뻑해 질 수 있어. 마치 집 안에 물이 샌다고 해서 집 전체로 들어오는 수도관을 잠가 버리는 것과 같지. 더 이상 물은 새지 않지만, 꼭 필요한 세수나 빨래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아.     


이소트레티노인 제제가 치명적인 기형을 유발할 수 있어서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결정적으로, 임신한 사람이 이 약을 먹으면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 이소트레티노인은 신경능세포의 활동을 억제하고 세포 간 상호작용을 방해해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태아의 뇌와 심장 등 중요한 기관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 이소트레티노인은 비타민 A 유도체인데, 비타민 A를 과다복용했을 때 기형아 출산위험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야. 그러니 임신했거나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 약은 반드시 피해야 해. 같은 이유로 임신부가 이소트레티노인이 녹아 있는 피를 수혈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먹는 중에는 헌혈도 해서는 안 돼. 사춘기 청소년은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여드름이 많아 복용을 고민하는 어른이라면 이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하지.   

  



여드름이 나는 것 말고도 사춘기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지. 그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마음에 쌓이면, 우울함과 답답함이 생겨나. 그리고 그런 마음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아. 마음이 불만족스러우면 공연히 화가 나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기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불만만 늘어놓게 된단다. 엄마도 사춘기 때 외할머니에게 그런 적이 많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지만 꺼내 놓기 귀찮아서, 얘기해도 몰라 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적이 많아. 답답한 마음은 그저 방문을 쾅 닫으며 짜증 난 마음을 드러내거나, 애꿎은 동생한테 대신 화를 내곤 했어. 그런데 이런 방법이 별로 좋지 않은 거, 너도 잘 알지?     


마음속에 쌓인 이야기가 쌓이고 굳어 염증이 되기 전에 엄마에게 알려 주렴.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선 ‘마음의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야. 모낭 속에 고여 버린 피지에서 신나게 파티를 벌이는 여드름균을 상상해보렴. 우리 마음에도 이런 여드름균 같은 것이 자라도록 두어서야 되겠니? 마음이 고이지 않도록 엄마에게도 꺼내 보여 주렴. 그러면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와중에도 한결 말끔한 기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마음을 내보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엄마도 겪어 봐서 알지만, 힘들게 보인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단다. 그러면 마치 폭발하는 여드름을 치료하듯, 마음에 생기는 여드름도 치료할 수 있어. 마음속에 쌓인 이야기가 쌓이고 굳어 염증이 되기 전에 알려 줘. 엄마가 깨끗이 닦아 주거나 필요한 약을 발라 줄 테니. 엄마는 딸을 위해 필요한 마음의 약도 가지고 있는 약사 ‘엄마’니까 말이야.




참고문헌: 임신부, 여드름 치료제‘이소트레티노인’ 복용시 기형 출산 위험 최대 3.76배 (일산백병원 한정열 교수 메타분석 결과, 2022-07-06, Medical World News)

이전 02화 열이 날 땐, 해열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