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아, 책이나 방송에서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지? 무리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고 피해만 주는 존재라는 뜻이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좀처럼 뿌리뽑히지 않는 범죄 조직이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에 비유되곤 해. 우리 사회를 한 사람의 ‘몸’으로 보고 구성원 하나하나를 몸속 세포로 본다면, 선량한 시민은 정상 세포로, 범죄자는 암세포로, 범죄 조직은 암세포가 모여 생긴 암 덩어리에 비유할 수 있어. 이런 암적인 존재가 없어야 사회가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지. 우리 몸에서 생겨나는 암도 마찬가지로 치료하고 제거해야 해. 암이 어떻길래 우리 몸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우리 사회를 내부에서부터 병들게 만드는 존재를 '암적인 존재'라고 하지.
건강하던 우리 몸에 암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야. 우리 몸 안에서 정상 세포가 변해서 생기는 암은, 원인이 매우 다양해서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암세포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외부에서 우리 몸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원래는 우리 몸을 이루던 정상 세포였어. 정상 세포가 어떤 이유로 인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더 이상 예전처럼 다른 세포들과 협력해 우리 몸을 살게 하도록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멋대로 증식하고 다른 세포와 조직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암’이 됐다고 하는 거야.
정상 세포를 암세포로 만드는 유전자 변이는 왜 일어날까? 흔히 ‘발암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 한 가지 이유야. 대표적인 발암물질 중 하나는 담배 연기이고, 과도한 음주로도 암에 걸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또 식이 습관이나 바이러스 감염, 그리고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도 암에 걸릴 수 있지. 이런 발암 원인에 의해서 세포가 정상적인 분열에 방해를 받으면 돌연변이 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우리 몸은 이런 돌연변이를 자연적으로 없앨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우리 몸 곳곳에서는 세포분열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는데, 천만 개에서 일억 개 중 하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 이 정도 돌연변이는 우리 몸에서 알아서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마치 거리에서 무단횡단을 하거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정도의 약한 범죄는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이 즉시 잡아서 벌금을 물리는 정도로 끝나는 것처럼 말이지.
암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단다. (그림출처=NCI)
하지만 이런 돌연변이가 계속 생겨서 우리 몸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그때는 암세포가 모여 ‘암’으로 자랄 수 있어. 제멋대로 자라나는 암세포가 모여 조직적으로 암 덩어리를 이루면 본격적으로 몸에 피해를 주게 되는데, 그러면 이제는 경찰 한두 명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경범죄자 수준이 아니게 되지.
암세포가 정상 세포와 구분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 특징이 있어. 먼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는 거야. 그래서 암세포를 ‘불멸의 세포’라고도 하지. 우리 몸의 정상 세포들은 필요할 때 분열을 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분열을 멈추지. 몸의 쓰임에 맞게 분열하고, 필요한 순간이 되면 순순히 죽어 없어지는 게 정상 세포의 특징이야. 하지만 암세포는 그렇지 않아. 우리 몸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끝없이 분열하고, 그러기 위해 영양분을 자기가 다 가져가. 마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요괴 ‘가오나시’가 닥치는 대로 음식을 집어삼키면서 거대해지는 것처럼 암도 몸집을 점점 키워가. 암은 심지어 영양분을 더 잘 빨아들이려고 길이 되는 혈관을 새로 만들기도 해. 이렇게 몸집을 점점 키워나가다가, 때가 되면 암세포는 다음 전략을 구사해.
정상세포와 다르게 암세포는 다른 조직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그림출처=국립암센터)
암세포의 두 번째 특징은,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는 거야. 암이 ‘전이’되는 거지. 암세포는 우리 몸의 혈관이나 림프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한 곳에 정착해 거기서 또 증식하는 거야. 원래 우리 몸의 세포는 살던 곳에서만 살아. 간세포는 간에서만 살고, 췌장세포는 췌장에만 사는 식이지. 원래 살던 곳을 떠나면 그 세포는 더 살지 못하는데, 암세포로 변한 세포는 어디에 붙어도 살아남을 수 있거든. 그래서 이렇게 암이 여기저기 전이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지. 암이 기승을 부릴수록 우리 몸의 장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자기가 속해 있는 몸이 더 살기가 힘들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욕심만 차리는 존재, 그게 암이야.
이렇게 우리 몸에서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암은 반드시 없애고 치료해야 하지. 암을 치료하는 여러 가지 의학적인 방법이 있지만, 엄마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쓰는 약에 대해 말해 볼게. 암을 치료하는 약을 ‘항암제’라고 하는데, 항암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 세포독성항암제, 표적치료제, 그리고 면역항암제야.
세대별 항암제 작용 원리(출처= JW newsroom)
세 가지 항암제가 어떻게 다른지는,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어. 먼저 세포독성항암제는 ‘핵폭탄’에 비유할 수 있지. 적을 무찌르기 위해 그 지역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면, 적도 완전히 죽이지만 그 지역에 살던 우리 편 사람들도 피해를 입게 돼. 핵폭탄처럼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 세포도 죽이는 것, 이게 세포독성항암제야. 세포독성항암제는 암세포가 분열하지 않도록 DNA 복제를 막거나, 대사를 방해해. 암세포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는 거지. 그런데 이 방법은 암세포 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빠르게 분화하는 정상 세포도 공격하게 돼. 세포독성항암제는 암에 직접적인 효과를 내는 대신 많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지.
세포독성항암제는 마치 핵폭탄처럼 암을 치료한단다. (사진출처=헬스조선)
반면 표적항암제는 ‘스텔스 전투기’에 비유할 수 있지. 적군의 탐지 수단에 들키지 않고 적이 있는 바로 그 위치만 공격도록 만든 무기지. 이 방식은 이건 암세포가 가진 특징을 식별해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가 일하는 방식과도 같아. ‘표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암세포만 표적으로 해서 공격하지. 정상 세포는 갖지 않지만 암세포만 갖고 있는 고유한 표적에 결합해서, 신호 전달에 관련된 효소를 방해하거나 혈관 생성에 필요한 요건을 차단하는 거지. 이러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부작용이 많이 줄겠지? 실제로 많은 암환자들이 표적항암제를 써서 큰 부작용을 겪지 않고 암이 완치되는 기적을 겪기도 했어. 그런데 표적항암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그러니까 확실한 표적을 갖고 있는 암에만 쓸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암세포가 약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
표적항암제는 스텔스 미사일처럼 일하지. (사진출처= 조선일보)
마지막으로 면역항암제는 ‘특공대 조직’에 빗댈 수 있어.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 세포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시켜 암세포만 죽일 수 있도록 육성하거나, 면역 체계에서 쓰는 특수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는 방법이지. 이렇게 우리 몸의 군대인 면역 세포가 암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만든 약이 면역항암제야.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이용하는 치료제라서, 기존 항암제가 가졌던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더 좋은 경우가 많아. 하지만 면역항암제로 인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정상 세포도 공격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단다. 마치 특공대원 중 일부가 적군이 아니라 민간인을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지. 아직까지 면역항암제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앞으로 발전을 더 기대해 볼 수 있는 암 치료 방법이야.
면역항암제는 마치 특공대처럼 암세포를 공격해. (사진출처=뉴시스)
우리 몸에 생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암이 가진 특성 때문에 다른 병을 치료하는 방법보다 조금 까다로워.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뿌리뽑는 게 무척 어려운 것처럼 말이야. 몇 달 전,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마약 범죄 사건이 있었지. 서울의 큰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속여 먹게 하고 그 부모들에게 아이가 마약을 복용했다며 협박한 사건이었어. 이런 조직적인 범행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 잘 이해하고 있기에 어떻게 하면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마약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았던 거야. 그래서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런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 이런 종류의 범죄 조직을 소탕하려면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더 집요한 방법으로 오랜 싸움을 해야 해. 이런 종류의 싸움은, 우리나라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치는 것과 다른 종류의 싸움이지.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뿌리 뽑는 것과 몸에 생긴 암을 치료하는 접근 방법은 비슷하단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원래 내 모습’을 지키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 다른 사람과 겪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지. 다른 사람과 겪는 갈등이라면 내 입장을 확실히 한 후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면 되지만, 혼자 고민해서 풀어야 하는 종류의 문제라면 원래의 ‘내 모습’과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지. 앞에서 말한 약들이 일하는 방식에 빗대보면, 문제를 내게서 뚝 잘라내 없애거나, 특징되는 부분을 골라내 없애거나, 아니면 원래 있던 방법을 변형해 써 볼 것이냐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야. 다만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원래 내 모습’을 지키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안 그러면 원래 내가 지키고 가꿔 온 내 정체성이나 일상이 흔들릴 테니까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오래 고민해야 해. 원래 내 몸의 일부였던 암세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아는 것이 효과적인 암 치료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