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지혜 Dec 04. 2023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백신

미리 싸워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엄마, 나 내일 학교 안 가면 안 돼?”

“왜? 무슨 일 있었어?”

“OO이가 나 콧수염 있다고, 남자 같다고 말해서 속상해!”     

네 입술 위의 까뭇한 털이 친구 눈에 띄었나 봐.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친구는 별생각 없이 네 외모에 대해 툭 말을 던진 모양이었어. 하지만 넌 그 말에 상처를 받고 속이 상해 눈물까지 그렁그렁했지. 친구가 그런 말을 했으니 너는 당장 이 털을 없애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먼저 꼭 해야 할 게 있다고 말해주었지. 친구의 의도가 어땠든, 외모에 대한 말로 네가 기분이 나빴으니 친구에게 그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 친구가 한 말에 네가 기분이 몹시 나빴고, 다시는 그 말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말이야.  

    

다양한 친구가 모여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는 언제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어떨 때는 마음이 많이 상하는 일도 생길 거야. 하지만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매번 너의 외모나 행동을 바꿀 수는 없어.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친구가 먼저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들은 네 기분이 어떤지 친구에게 정확히 알려 줘야 하지. 엄마나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 전에, 네가 먼저 꼭 해야 할 일이야.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기는 해.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꼭 해야 할 연습 중의 하나야.  



   

우리가 쓰는 약 중에도 ‘연습’을 위해 필요한 약이 있단다. 바로 ‘백신’이야. 백신은 아픈 걸 낫게 하려고 쓰는 약이 아니라, 병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약이야. 백신 주사를 맞는 걸 ‘예방접종’이라고 하지. 백신은 어떻게 우리 몸이 병에 걸리는 걸 예방할까? 간단히 말하면, 백신은 우리 몸의 면역 세포들이 미리 침입자와 싸워보도록 연습시키는 거란다.     


백신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볼게.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은 흔히 우리가 백혈구라고 부르는 세포들이 담당해. 이 백혈구들은 종류가 아주 많은데,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선천 면역 담당과 후천 면역 담당으로 나눌 수 있어. 어떤 백혈구들은 선천적으로 외부 세포를 구별할 줄 알아. 이들은 ‘선천 면역 세포’라고 불러. 대식세포나 자연살해세포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선천 면역(innate immunity)과 후천 면역(adaptive immunity)을 담당하는 세포들 (출처=Charles River Laboratories)


그리고 후천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는 B세포와 T세포가 있어. 이들은 외부 침입자와 만나 한 번 싸워보고 나서 침입자의 모습을 기억한단다. 한 번 만나본 침입자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법으로 싸웠는지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번에 맞닥뜨렸을 때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면역 체계지. B세포는 병원균을 죽이는 무기인 ‘항체’를 만들어 내고,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직접 죽이거나 다른 면역 세포를 돕는 방식으로 일한단다.

     

우리가 감염병을 막기 위해 이용하는 백신은 이 ‘후천 면역’을 이용하는 거야. 면역 세포들이 먼저 침입자에 대해 학습할 수 있도록 미리 몸에 주입해서 보여 주는 거지. 침입자를 만나 본 면역 세포들은 이 모습을 기억할 테니 두 번째 만났을 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겠지? 백신은 이렇게 면역 세포를 미리 연습시키기 위해 쓰는 약이야. 백신을 접종하는 건 우리 몸에 침입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미리 싸우는 연습을 위한 것이니까, 간혹 백신을 맞고 열이 오르거나 몸살이 나는 건 우리 몸에서 침입자와 먼저 싸워보는 ‘전투 연습’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백신의 원리를 간략히 나타낸 모식도 (출처=BBC news 코리아)

   

백신은 앞서 말한 ‘침입자’, 즉,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어떤 형태로 함유하느냐에 따라 ‘생백신’과 ‘사백신’으로 나뉜단다. ‘생백신’은 살아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함유한 백신인데, 너무 팔팔하게 살아 있으면 몸에서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보통 독성을 약하게 만드는 ‘약독화’ 과정을 거쳐 만든단다. 이렇게 약독화한 생백신은 효과가 길게 가고 한 번의 접종만으로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니 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비교적 확실하지. 하지만 살아 있는 균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접종하는 경우 몸속에서 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지. 대표적인 생백신으로는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접종했던 BCG 백신이 있어. 네 왼쪽 어깨에 18개의 작게 패인 흔적을 남긴 그 백신이지. 그 외 생백신으로는 로타바이러스 백신, 수두 백신 등이 있단다.     


그에 비해 ‘사백신’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아예 불활성화 시킨 백신이야. 침입자를 아예 죽였거나 일부 조각만 함유하고 있는 백신이지. 그러니 사백신은 생백신처럼 몸속에서 증식할 가능성은 없으니, 생백신과 비교해 덜 위험하겠지? 하지만 불완전한 상대로 연습을 하는 셈이니, 면역 세포의 연습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어서, 한 번의 접종만으로는 면역 형성이 완전하지 않아서 추가 접종을 더 해야 해. 면역 효과도 생백신에 비해 더 짧게 나타난단다. 대표적인 사백신으로는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를 예방하기 위한 DTaP 백신, 폐렴구균을 예방하기 위한 PCV 백신 등이 있지.    

 

생백신과 사백신의 종류와 특징 (출처=백신제제의 특징, 용법 및 주의사항(고려대학교의료원 구로병원 약제팀 이소현))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필수 예방접종’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많은 예방주사를 맞아 왔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릴 수 있는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꼭 맞아야 하는 백신을 접종한 거지. 네가 가장 먼저 맞은 건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맞은 B형 간염 백신이었지. 그리고 태어난 지 한 달 됐을 때 결핵 예방 백신인 BCG 백신을 맞았어. BCG 백신은 피내용이냐 경피용이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엄마는 흉터가 좀 덜 생긴다는 말에 팔뚝에 도장처럼 꾹 눌러 찍는 ‘경피용’을 선택했어. 그래서 아직도 네 왼쪽 팔뚝 위엔 18개의 살짝 파인 접종 자국이 남아 있지. 그 후로도 너는 일정에 맞춰 꼬박꼬박 백신 접종을 해 왔지.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를 예방하기 위한 DTaP 백신, 소아마비를 예방하기 위한 IPV 백신, 로타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RV 백신, 폐렴구균을 예방하기 위한 PCV 백신 등 이름도 종류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백신 접종을 했어.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표준예방접종일정표에 따라 예방접종을 해야 하지. (출처=질병관리청 홈페이지)


백신 이름만 들어서는 이 백신이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막아 주는지 짐작이 안 될뿐더러, 도대체 언제 몇 번이나 챙겨 맞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지. 다행인 건, 이 모든 걸 엄마가 전부 기억하고 챙길 필요가 없었다는 거야.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아기 수첩’을 주는데, 거기에 예방접종 일정이 표시되어 있어서 펼쳐 보면 언제가 다음 예방접종일인지 알 수 있었어. 또 예방접종 한 병원에서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 접종 기록을 등록해 주었기 때문에, 다음 예방접종일을 알려 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단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네가 어떤 백신을 언제 접종했는지 그 이력을 정확히 알 수 있지. 전염성 질환을 예방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예방접종을 해서 전염을 완전히 차단하는 게 효과적이니,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특히 어렸을 때부터 면역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사는 어린이들이 비용 없이 나라에서 정한 백신을 접종받도록 하고 있어.   

  


학교에서는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거야.



앞서 말했듯 백신은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맞는 주사는 아니야. 아프기 전에 미리 맞는 주사지. 엄마가 생각하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겪는 많은 일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미리 맞는 백신과도 같아. 네가 어른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려 사는 건 매우 중요해. 학교에서는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거야. 만약 지식을 쌓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라면 학교에 다니는 대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몰라. 하지만 우리가 굳이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생기는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면서 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미리 알기 위해서지. 그래서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될 거야. 마치 우리 몸이 백신을 통해 미리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처럼 말이야.      


너는 네 외모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 친구가 불편하다고 했지. 네게 불편함을 주는 그런 친구에게는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해주렴. “네 말 때문에 내가 불편했잖아. 다시는 그러지 말아줘.”라고 말이야.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네 모습은 여느 때보다 힘들어 보였지. 하지만 너를 위한 일이기에 엄마는 속으로 ‘우리 딸 화이팅!’을 외쳤단다. 네가 따끔한 백신 주사를 꾹 참고 맞을 수 있도록 응원했던 것처럼 말이야. 백신 주사가 따끔했던 건 너 혼자 이겨내야 했었지만 사회생활 백신은 엄마가 도와줄 테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네가 병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백신 주사를 맞아 왔듯이, 사회생활 백신도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참고문헌>

1) 백신제제의 특징, 용법 및 주의사항 고려대학교의료원 구로병원 약제팀 이소현, 병원약사회지(2012), 제 29 권 제 4 호J. Kor. Soc. Health-Syst. Pharm., Vol. 29, No. 4, 453 ~ 464 (2012)     

2) Autism and Vaccines, Centers for Diseases Conrol and Prevention, https://www.cdc.gov/vaccinesafety/concerns/autism.html     

3) 질병관리청, 표준예방접종일정표(2023)     

4)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백혈구 어벤저스 - 체계적 방어로 물샐틈없이 우리 몸 지키는 면역세포 이야기, 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이전 04화 몸에 암이 생겼을 때, 항암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