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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Jan 29. 2024

여성호르몬을 조절할 때, 경구피임약

우리 몸에도 때로는 하얀 거짓말이 필요해

수 개월 전, 한동안 너는 잠들기 직전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곤 했어.

"엄마, 사람은 다 죽어? 그럼 엄마 아빠도 언젠가 다 죽어?"

그 질문 끝엔 항상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엄마가 얼버무리자 아빠가 옆에서 냉큼 했지.

"그렇긴 한데, 그건 아주아주 나중 일이라 지금 걱정 안해도 돼. 그리고 있잖아, 나중에 서윤이가 크면 '죽지 않는 약'도 개발될 걸? 그러니까 서윤이가 지금 걱정 안해도 되는 일이야!"


너는 그때부터 '죽지 않는 약'의 시판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 음,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볼 때 '죽지 않는 약'은 앞으로도 개발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데 어쩌지. (차라리 '무병장수하는 약'이라면 모를까!) 살벌하고 슬픈 진실을 말하자면, 언제가 됐든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는단다. 엄마가 얼마 전 읽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살아있는 생물들은 모두 몸속 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전달 도구일 뿐이라고 말하지. 유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후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전달 도구'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진화했단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해서 서윤이를 낳은 것도 엄마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거라고 설명할 수 있지. 서윤이 몸속에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반반씩 들어 있으니, 서윤이에게 전달된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 유전자 입장에서는 엄마나 아빠가 오래 사는 것보다도 서윤이를 잘 키워서 서윤이에게 전달된 유전자를 보존하는 게 더 중요해. 하지만 이런 비정한 진실(?)을 잠들기 직전 눈물이 그렁그렁한 네게 말해줄 순 없잖니.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말한 '죽지 않는 약'의 개발 가능성을 속으로 점치며 너를 달랬지.


비록 지금은 죽음을 어렴풋이 상상하며 불안해서 울지만, 서윤이도 커서 과학적인 진실을 마주할 날이 오겠지. 아, 때가 되면 엄마랑 침대맡에서 하는 대화도 줄어드려나? 그래도 서윤이가 커서 엄마 곁에서 잠드는 것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다고 하면, 얼마든지 방으로 보내줘야지. 그런 날이 금방 것도 같네. 엄마가 앞서 '생리' 이야기하면서 말했듯이, 서윤이 몸에서도 '여성호르몬'이 본격 활약할 날이 테니까 말이야.



     

엄마가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호르몬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번에는 여성호르몬에 대해 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왜냐하면 이번에는 '여성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에 대해 이야기할 거거든. 생물학적인 '여성'을 만드는 여성호르몬은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 여성 생식기인 ‘난소’에서 분비된단다. 이름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야. (둘 다 이름이 좀 길지?) 생리 편에서 설명했던 그래프를 다시 한 번 볼까?


        

그래프의 파란색과 검은색을 보면 에스트라디올(에스트로겐의 일종이야)과 프로게스테론이 보이지? 그리고 ‘배란’이라는 회색 세로줄로 시기가 구분되지. 전체 주기는 28일인데, 배란, 그러니까 난자가 몸에서 배출되는 건 그 중간 시점인 14일에 일어나. 배란을 전후로 '여포기'와 '황체기'로 나뉘것이 보이지? '여포'(또는 '난포'라고도 해)는 난자를 감싼 주머니인데, 여포가 성숙하면서 에스트로겐을 분비한단다. 점점 에스트로겐 분비가 많아지면서, '황체 형성 호르몬' 농도가 높아지고 난자가 배출되지. ('황체'는 난포에서 난자가 빠져나가고 남은 빈 상태를 말해.)


황체황체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한단다. 로게스테론은 자궁 내막을 두껍게 만들어 줘서, 임신을 유지시켜 주지. (그래프 맨 아래쪽에서 자궁 내막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이지?) 그런데 기다렸는데도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해 결국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황체가 점점 퇴화해서 프로게스테론도 줄어들고 두꺼웠던 자궁 내막도 허물어지게 된단다. (이게 바로 '생리'야!)

            

만약 때마침 정자가 들어와 난자와 만나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착상되었다면? 그게 바로 임신이지! 임신한 상태에서는 태반에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등 많은 호르몬이 나와서 임신이 유지되게 한단다. 몸속의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농도가 높아지지.


임신 중의 호르몬 변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 보이지? (출처=해피문데이)


엄마가 설명하려는 건, 이 임신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약이야. 임신을 막아주기 때문에 보통 '피임약'이라고 부르지. 피임약이 임신을 피하게 해주는 원리는 간단해. 임신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위에서 말한 황체호르몬)과 비슷한 물질이 계속 몸속에 일정 수준 이상 머무르도록 하는 거야. 우리 몸이 임신을 면, 착상된 수정란을 보호하고 임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난자가 나오는 것을 막거든. 그러니 우리 몸이 임신 상태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호르몬을 투여하는 거지. 호르몬에 많은 임무를 맡기고 있는 우리 몸에게 일종의 ‘하얀 거짓말’을 하는 셈이지.

   

피임약은 임신을 피하는 효과 뿐만 아니라, 여드름 치료, 다낭성난소증후군, 생리불순, 생리과다, 생리전증후군(PMS) 완화, 그리고 생리통 증상 완화에도 쓰인단다.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질병을 치료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거지. 이쯤 되면 사실은 '피임약'이라기보다, '여성호르몬 조절제'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정도지.


피임약은 보통 알약으로 되어 있고 먹어서 복용하기 때문에 ‘경구피임약’이라고도 해. 경구피임약은 대부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프로게스테론’과 비슷하게 일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것을 말한단다.) 두 성분의 복합제이지. 1세대는 아주 초기에 나온 약이고 에스트로겐만 많은 양을 함유한 제제야. 1세대 피임약의 경우 혈전위험과 부정출혈 등 심혈관계 부작용이 심각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2세대부터 4세대 피임약은 각각 에스트로겐 함량과 프로게스틴 종류로 구분하지. 모두 ‘에티닐에스트라디올’ 성분을 포함하는 것은 같은데, 어떤 프로게스틴을 함유하냐에 따라 세대가 구분되는 거란다.    


            

경구피임약은 성분 종류에 따라 세대가 구분된다. 각 세대별로 용도와 부작용이 다르지. (출처=헬스경향)


먼저 2세대 피임약부터 말해볼까? 2세대 피임약에는 에티닐에스트라디올과 ‘레보노르게스트렐’이라는 성분이 함께 들어 있지. 레보노르게스트렐이라는 성분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과 화학적인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여드름, 다모증, 체중 증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단점이 있어. 2세대 피임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3세대 피임약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레보노르게스트렐 대신 '데소게스트렐' 또는 '게스토덴' 성분이 들어 있지. 3세대 피임약은 2세대 피임약 복용 시에 나타나는 다모증과 여드름 유발 부작용을 개선해서 나온 것들이야.


대신 혈전(쉽게 말해 혈관 안에서 피가 뭉쳐 굳는 현상이야.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으면 장기에 문제가 되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그리고 4세대 피임약의 경우는 에티닐에스트라디올과 함께 ‘드로스피레논’이라는 성분을 함께 함유하고 있지. 4세대 피임약도 3세대 피임약처럼 남성호르몬과 관련된 부작용(여드름, 다모증 등)은 줄어들었지만, 혈전발생 위험은 오히려 더 높아져서, 2세대보다 최대 3배 높지. 20대 35세 이상의 흡연 여성은 혈전발생 위험이 훨씬 높기 때문에 복용을 하지 않아야 해. 그런 이유로 2세대와 3세대 피임약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반면, 4세대 피임약은 병원에서 처방받아야만 복용할 수 있단다. 참고로 약국에서 일반적으로 살 수 있는 피임약으로는 3세대 피임약을 보통 사용해. 생리주기 조절할 때 사용하기에 적합하거든.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혈전 위험도가 높아서 심혈관계 질환이 있다면 피해야 하지.     


이렇게 부작용만 따져 봐도, 뭐가 더 좋은 피임약인지 알기가 어렵지 않니? 맞아. 세대가 뒤로 간다고 해서 꼭 더 ‘개선된 제품’이라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용도’를 구분한다고 보면 맞고, 내게 필요한 용도로 구입하기 위해서는 약사 또는 의사와 상담해야 하지.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거나, 기저질환이나 가족력이 있다면 복용하기 전에 꼭 상담해야 해. 그리고 다른 약들과 같이 복용하는 경우에도 피임약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상담할 때 꼭 말해야 한단다.     


위에서도 말했듯 임신을 피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호르몬을 조절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 용도에 맞게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만약 피임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는 매일 하루 1정을 21일간 일정 시간에 복용하고 나서, 7일간 복용을 중지해야 해. 그리고 그 후 다시 복용을 시작해야 하지. 약효는 복용을 시작한 지 최소 7일이 지난 후에 나타나니 꼭 참고해야 하겠지? 그리고 생리주기 조절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리예정일 7~10일이 되기 전부터 미루고 싶은 날짜 하루 전까지 매일 1정을 복용해야 하지.



피임 목적이라면, 생리 첫날부터 21일간 매일 하루 한 알 복용한 후 7일간 쉬는 방법으로 복용한단다. (출처=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함께하는 피임·생리 이야기)


만약 복용을 깜빡했다면 생각나는 즉시 한 알을 복용하면 효과를 지속할 수 있단다. 그런데 12시간이 넘어버린 후라면 다음 번 복용할 때 2알을 복용하면 돼. (기준은 12시간!) 만약 이틀을 연속으로 잊었다면? 그 다음날까지도 2알 복용하고 이후부터 1알을 복용하면 된단다.


피임약을 잊었을 때 대처법이야. (출처=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함께하는 피임·생리 이야기)



그리고 경구피임약 역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단다.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는 복용 초기에 나타나는 부정출혈(쉽게 말해 생리할 때가 아닌데도 생식기에서 피가 나오는 현상이야), 복부팽만, 구역감, 두통, 유방 통증, 그리고 부종 등이 있단다. 그런데 몸이 적응하다 보면 3개월 이내에 사라지는 부작용인 경우가 많지. 그런데 만약 두통이 너무 심하거나 눈앞이 이상하게 보인다거나 가슴이나 다리 또는 배에 통증이 있다면 이건 위에서 말한 혈전으로 인해 혈관이 막혀 생기는 증상이니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단다.

  

이렇게 우리 몸의 미세한 조정을 하는 호르몬 중에서도, 여성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으로 사용되는 것이 피임약이지. 서윤이가 앞으로 어떤 목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또는 한 번도 복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네 몸속의 여성호르몬을 조절함으로써 너의 생활을 네가 원하는대로 더 '최적화'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렴. (다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늘 기억해야겠지.)





아직은 '직사각형'에 가까운 너의 어린이다운 몸. 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커가며 달라지는 게 보이지. 엄마는  달라져가는 네 모습을 보며 섣부르게도 생물학적인 '여성'이 된 네 미래 모습을 그려 보곤 한단다. 몸에서 본격적으로 여성호르몬이 나와서, 신체적으로 여성의 특징을 갖추기 시작하고 정신적으로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가끔은 흑역사도 만들어가면서), 너만의 세계를 점점 키워가는 모습을 말이야. 그때가 돼서 네 몸이 더는 ‘어린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변하면, 지금처럼 엄마와 마음껏 몸을 부비지 못할 수도 있겠지. 엄마로선 좀 아쉬운 일이기도 해.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네가 심각한 얼굴로 언젠가 엄마에게 했던 '죽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네 스스로 찾을 수 있겠지. 혹시 엄마와 아빠가 네게 했던 '죽지 않는 약'이 '하얀 거짓말'에 해당했다는 것도 기억하려나? 혹시라도 그렇다면,  대답이 마치 '경구피임약' 같았다고 생각해 주렴. 우리 몸에서 여성호르몬 같은 역할을 하면서, 잠시 우리 몸의 주기를 멈출 수 있도록 해주는 피임약처럼, 엄마와 아빠도 너의 걱정을 잠시 잠재워 주기 위한 '하얀 거짓말'을 다는 것을 말이야.




네가 얼른 컸으면 좋겠다가도, 부쩍 큰 모습을 볼 때면 왠지 아쉽곤 해.



<참고문헌>

1) 해피문데이 블로그, 피임약, 알고 먹어요(이론편)

2) 약, 알고 먹는 거니?

3)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4)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함께하는 피임·생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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