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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Feb 12. 2024

견딜 수 없는 고통에는, 마취제

출산 고통을 견디기 위한 당연한 선택에 대해

얼마 전 치과에 갔을 때, 서윤이 너는 치료받기가 아프고 무섭다고 울었지. 평소에 '마이쮸'사탕과 초콜릿을 즐겨 먹는 너 벌써 여러 번 충치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랬어. 하지만 몇 번을 받아치과 치료는 익숙해지지가 않지? 사실 어른들도 그래. 치료 받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통증이 무서운 건 어른도 마찬가지거든. 이가 아파 치과에 가서 진료 의자에 앉아 치료를 기다리는 그 때가 돼서야 비로소 지난 날의 행실(?)을 돌아보며 후회하곤 한단다. 엄마는 서윤이가 앞으로 치과 치료를 또 받는 게 싫어서라도 이제부터 단 걸 안 스스로 이를 깨끗하게 닦으려나 했는데, 음.. 아무래도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란 좀 어렵지?


치과 치료를 받을 때 통증이 심할 수 있어서, 통증을 덜 느끼게 하려고 마취제를 사용하기도 해. 잇몸에 마취 연고를 바르기도 하고 마취 주사를 놓기도 하지. 서윤이 너는 충치 치료보다도 마취 주사 맞는 게 더 아프다고 했어. 하지만 마취 주사는, 이어지는 치료를 아프지 않게 받기 위한 잠깐의 따끔함이지.




엄마가 왜 치과 치료와 마취제에 대해 이야기할까? 지난번에 엄마가 임신 중 '입덧'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기를 낳을 때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거든. 출산 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진통'에 대해서야. 임신할 때 입덧도 괴로운 일인데, 출산할 때도 진통을 겪는다니, 거참 너무하네. 하지만 일단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래. 아기는 엄마 뱃속의 자궁 안에서 크는데, 아기가 다 커서 엄마 몸 밖으로 나올 때가 되면 자궁이 수축하거든. 아기를 낳을 때 자궁이 수축하면서 느껴지는 고통이 바로 '진통'이야. 잠깐, 그런데 '자궁 수축'을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맞아. 생리통이 자궁 수축 때문에 생긴다고 했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자궁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아랫배와 허리가 아프다고 했었지. 그런데 아기 낳을 때도 프로스타글란딘에 의해 자궁이 수축하거든. 그래서 아기 낳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생리통과 비슷한 느낌으로 오는데, 그 강도는 생리통과는 비교가 안 되게 크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심한 것부터 순위를 매겼을 때 출산의 고통이 3위 안에 들 정도라고 해.


이렇게 출산의 고통이 심한데, 이걸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하는 조치로 '무통분만' 방법을 많이 쓴단다. '무통분만'은, 마취를 통해 진통 강도를 줄여서 근육을 이완시켜 출산을 쉽게 유도하는 방법을 말해. 그러니까 사실 말처럼 '무통(無痛)' 즉 통증이 없지는 않고 통증을 줄여 주는 방법이야. 게다가 진통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심해질 때 마취 주사를 맞게 되거든. 아기가 나오기 위해 자궁문이 적어도 4cm 가량 열렸을 때 할 수 있는 거니까, 진통을 어느 정도 견디고 난 후에 쓰는 방법이지. 그래서 사실 완전한 '무통분만'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심한 고통을 덜어주는 용도로 마취제가 사용된다고 보는 게 맞아.


무통분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경막외마취' 방법이야. '경막외마취'는 경막(척수를 싸고 있는 튼튼한 막) 바깥 쪽을 마취한다는 뜻이야. 산모가 허리를 구부린 자세를 하고 있으면, 경막 바깥쪽에 주사바늘을 이용해 관을 연결하고, 거기에 주사액을 주입하는 방법이지. 허리뼈를 통해 주사 바늘을 몸에 먼저 넣어야 해. 주사바늘을 넣기 전에는 이 부분을 먼저 국소마취한단다. 마취를 위한 마취인 셈이지. 국소마취 후에는 허리뼈에 주사 바늘을 넣고 튜브를 삽입해 원하는 투여 부위, 즉 경막외강까지 가는 길을 만들지. 이 주사바늘에 마취제를 투여하는 관을 넣어 투여하는 거지. 출산할 때 아픈 부위, 허리부터 허벅지까지만 마취가 되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취가 진행된단다.


경막외 마취 방법 (출처=네이버지식백과, 무통분만)



경막외마취 방법으로 마취제를 주입하면 고통을 느끼는 하반신만 마취되기 때문에 산모의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취 강도와 마취제 종류를 조절할 수 있지. 그리고 자궁문을 조금 빠르게 열어 출산 진행을 좀 더 촉진하는 효과도 있단다. 무엇보다 출산할 때의 고통의 강도를 줄여 주는 게 가장 큰 효과이지. 그래서 임신중독증(임신했을 때 나타나는 고혈압성 질환을 말해)이 있거나 산모의 심장이 약하거나 산통이 심한 경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경막외 마취를 하면 배에서 허벅지 부분까지만 마취된다는 장점이 있어. (출처=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하지만 단점도 있단다.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필요한 때에 산모가 힘을 주어야 하는데, 마취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힘주기가 효과적이지 않을 수가 있어. 그리고 경막외마취를 하고 싶어도 척추에 이상이 있거나 신경계에 이상이 있으면 사용이 가능하지 않단다. 그리고 마취 후에는 구토, 경련, 통증, 불쾌감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지.


경막외마취를 위한 마취제 성분으로는 프로카인, 리도카인, 메피바카인 등이 있단다. (출처=약학정보원)


엄마도 서윤이를 낳을 때 이런 '무통주사'를 맞았어. 엄마도 당연히 아기를 낳는 고통이 컸고, 최대한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 인터넷에서 수없이 찾아 본 출산 후기에서는, '무통천국'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고. 아기 낳는 과정에 '천국'이라는 말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었지만, 그만큼 마취 주사 맞기 전까지의 고통이 심했다는 뜻인 것 같았어. 후기를 열심히 읽고 엄마도 같은 선택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주사를 맞고서도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은 하지 못했어. 아마도 약이 잘 듣지 않았거나, 사실은 그 정도의 고통 경감 효과만 있었을 뿐이었던 거겠지. 나중에 찾아 보니 마취 후에도 통증을 느끼는 비율이 약 10% 정도 되고, 3%는 아예 마취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엄마도 그 중 하나였던 모양이야.


이미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에서 고통을 덜 느끼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방법을 반대하기도 하지. 고통을 덜 느끼는 방법이 있는데도 왜 이걸 반대하냐고? 반대하는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 수 있는데, 역사적인 이유도 한 몫 한단다. 성경의 '창세기' 부분에 인간의 원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거든.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이유로 아담은 평생 노동을 통해 살 길을 마련해야 했고 이브는 아기를 낳는 출산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지. 무통분만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성경 내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는 건 '신의 섭리'인데 여기에 반하는 행위가 바로 무통분만이라는 거지.


하지만 성경이 쓰인 시대에서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의 많은 의학 연구와 시도 끝에 우리는 고통을 덜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알게 됐지. 마치 소화가 안 될 때 소화제를 복용하고, 상처가 났을 때 항생제를 쓰고, 암을 극복하기 위해 항암제를 쓰는 것 처럼, 출산이라고 하는 위험하고도 중요한 순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의학적인 방법이 있으면 이걸 쓰지 않을 이유가 없어. 어쨌든 출산이라는 과정은 신체에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얼마나 고통이 크면 '죄'에 비유할 정도가  거지. 그만큼 출산의 고통이 크다는 뜻으로 이해해야겠지? 성경이 처음 쓰인 시대에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출산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위험한 과정이란다.


그래서 고통과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아직도 많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지. 다행히 마취제는 엄마와 서윤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엄마나 서윤이가 필요할 때 마취제를 사용할 수 있었지. 엄마는 가끔 엄마가 지금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아주 먼 옛날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곤 해. 하지만 그런 생각 끝에 '지금 만나는 약들이 과거에는 없었다'생각에 닿으면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한단다. 엄마의 공상을 끝나게 한, '옛날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잘 쓰이는 약' 하나가 바로 마취제지. 수많은 외과 수술을 비롯해 아기 낳는 고통도 덜어 있는 마취제를 지금은 용도에 따라 쓸 수 있으니 참 다행이야. (물론 지금도 새로운 약은 속속 개발되고 있으니,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약이 존재하는 그들의 현재에 감사할지 모르.)



엄마는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다 있다고 믿는 편이야. 몸으로 겪는 고통이든, 마음으로 겪는 고통이든 말이야.


우리는 가끔 살면서 겪는 심한 고통에 압도되곤 하지. 수술이나 출산 같은 의학적인 이유로 고통을 겪을 수 있지만, 때론 견딜 수 없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고통도 겪을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아끼는 무언가를 잃을 때 느끼는 것 같은 고통 말이야. 아픈 신체 부위의 고통은 마취제로 덜 수 있어도, 안타깝게도 마음에는 그런 마취제가 없지. 엄마도 지금까지 크고 작은 마음의 아픔을 겪어 봤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일지 몰라. 어쩌면 마취제 없이 아픔을 견디는 것 같은 용기가 필요하겠지. 그런 이유로 어떤 어른들은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거나,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몰두할 거리를 찾거나 한단다. 고통을 느끼는 신경을 잠시 차단해 주는 마취제처럼, 아픈 마음을 잠시 마취시키는 거지. 우리는 이렇게 잠시 '고통을 차단하기'를 통해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찾는단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런 경험이 서윤이를 전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너만의 이야기가 될 거야. (엄마 또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중이지.)


엄마는 서윤이 앞에 높인 인생길에 그런 고통이 많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서윤이가 오롯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지. 그래도 엄마는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다 있다고 믿는 편이야. 몸으로 겪는 고통이든, 마음으로 겪는 고통이든 말이야. 그리고 그 방법 중의 하나는, 서윤이가 어른이 되어 겪을 수도 있는 출산의 고통을 '마취제' 사용을 통해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것이 되겠지. 



살면서 다가올 고통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덜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


참고문헌

1) 머니투데이 기사, '출산·절단...인간이 느끼는 고통 1위는?', '12.4.16.

2) 사이언스타임즈 기획·칼럼, 통증을 완화해 주는 무통 분만의 역사,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3) 약학정보원 약물백과, 국소마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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