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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Feb 19. 2024

아기에게 젖을 그만 줘야 할 때, 단유약

한 계단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한 일

서윤아,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산후조리원’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어.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은 출산 후에 산모와 아기가 2~3주간 머물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추스르는 곳이야. 출산 후에는 엄마 몸이 큰 충격을 받은 후라 제대로 기능하기 힘든데, 밤낮없이 신생아를 돌봐야 하거든. 드라마에서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었던 주인공이 마흔이 넘어 첫아기를 출산하면서 산후조리원에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와.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만 있을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엄마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어.

      

산후조리원에 모인 산모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졌지만 모두 아기를 갓 출산했다는 공통점이 있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유축을 하는 장면이 나와. 사람마다 모유 양이 다른데, 산후조리원에서는 얼마나 모유가 잘 나오는지가 능력 있는(?) 산모임을 보여주는 척도였지. 그전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던, 완전히 '딴 세상'인 산후조리원 풍경에 주인공은 무척 놀라지만, 또 금세 적응했지.     


드라마에서는 아기에게 줄 모유가 얼마나 되느냐로 엄마의 능력이 가늠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지. (사진출처=여성신문,동아일보)




엄마가 드라마를 보며 공감했던 건, 모유수유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었어. 엄마는 서윤이를 낳기 전에 다른 엄마들이 어떻게 아기를 낳고 키웠는지 수도 없이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지. 거기서 모유는 영양학적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아기에게 정서적으로 큰 안정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더라. 하지만 모유수유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나머지 울기도 했다는 후기들도 많았는데, 엄마는 좀 의아했어. 대체 아기에게 젖 주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거지?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본능’ 중에 젖 빠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배웠는데, 그냥 주면 알아서 벌리고 빨아먹는 게 아닌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뭐든 직접 겪어야만 아는 것들이 있지. 엄마가 생각하는, 진짜 ‘겪어봐야 아는’의 최고봉이 바로 ‘아기에게 젖 주기’야. 일단 아기가 배고프다고 운다고 해서 젖을 저절로 그냥 빠는 게 아니더라고. 일단 잘 빨아 삼킬 수 있는 각도를 찾는 것부터 무척 어려워. 그리고 그 각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아기 머리를 받쳐줘야 해. 그 자세가 처음엔 영 자연스럽지 않아서, 젖 줄 때마다 매번 손목과 허리, 어깨가 아팠지. 하루에도 굉장히 여러 번 해야 했는데,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힘이 들었어.


한 가지 더 어려웠던 건 때때로 찾아오는 '젖몸살'이었어. 젖이 비워졌다 채워졌다를 반복하는 주기가 금방 돌아오고, 그걸 자칫 놓치기라도 하면 젖이 금세 가득 차서 가슴이 딱딱해지고 아프고 열도 나거든. 가끔은 젖 나오는 통로가 막혀서 염증이 되기도 했어. 젖몸살을 겪는 걸 누군가 '불덩어리를 가슴 위에 올려둔 것 같다'고 비유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아. 어느 날은 잠시 바람 쐬겠다며 아기를 맡기고 쇼핑몰 외출을 했다가, 젖몸살이 찾아와 무척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지.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서윤이를 온전히 키울 수 있을 만큼 엄마 젖이 잘 나왔다는 거였어. 어느덧 젖 주기에 익숙해져서 조금이나마 둘 다 편한 자세를 찾을 수 있게 됐어. 그제서야 젖을 잘 먹고 크는 아기가 귀엽고 신기했지.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엄마 스스로 생산(?) 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어. '그래 맞다, 나 포유동물이었지.' 엄마는 그동안 한 번도 포유동물인 것처(?) 산 적이 없었거든.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이며 비로소 엄마의 원초적인 정체성을 깨달았지.


그런 모유 수유도, 서윤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던 여름 초입에 그만 두어야 했지. 대학원생이었던 엄마가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어. 엄마는 학교 실험실에서 화학 물질을 다루는 실험을 해야 했거든. 물론 화학 물질을 박박 씻어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험하면서 엄마도 모르게 유기용매 증기호흡기로 마실 있는데, 그게 모유로 갈 수도 있으니까. 아직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 서윤이에게 아주 적은 양이라도 화학 물질은 지 않도록 하고 싶었지.


그래서 엄마는 젖을 끊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썼어. 맛사지를 받기도 하고 약을 처방받기도 했단다. 그때 처방받은 약이 바로 ‘단유약’이었지. '단유약'은 모유가 생성되는 호르몬의 원리를 이용한 약이란다. 젖을 끊는 데 쓰는 약이라니, 어떤 원리로 우리 몸 속에서 일하는 걸까?    

  

먼저 모유가 몸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한 번 간단히 설명해 볼게. 모유 분비에는 여러 가지 호르몬이 관여한단다.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은 젖이 만들어지도록 촉진하는 호르몬이지. 그리고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젖이 나오도록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이야.     


모유가 생성되고 나오는 데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관여한단다. (출처=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아기에게 젖을 주게 되면, 아기가 젖을 빠는 그 자극이 다시 뇌하수체로 가고, 다시 옥시토신과 프로락틴이 분비되고, 그러면 또 젖이 생기고 나오는 걸 반복해. 젖이 만들어져서 나오고, 아기가 젖을 빨고, 다시 그 젖이 만들어지고 나오도록 하는 과정이 계속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도파민'이 증가하게 되면, 이 프로락틴이 나오지 못하게 돼서 젖이 나올 수 없게 된단다.

      

그럼 이 호르몬의 원리를 이용해 젖이 나오는 걸 못하게 할 수 있어. 몸속 프로락틴 농도를 낮출 수 있도록 도파민이나 도파민처럼 일하는 성분을 몸에 넣어주는 거야. 단유약이 이런 원리를 이용한 약이야. 단유약으로는 ‘카베르골린’이나 ‘브로모크립틴메실산염’이라는 성분 중 하나를 쓴단다. 뇌에서 도파민처럼 작용하는 성분인데, 도파민의 활동이 늘어나면 모유가 생성되도록 하는 호르몬인 ‘프로락틴’의 분비가 억제되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태반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요 두 가지 호르몬 이제 익숙하지?)이 나와서 몸 속에서 높은 농도로 존재하지. 이렇게 몸 속에서 높은 농도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은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도록 엄마 몸을 준비시키는 열할도 한단다. 엄마 몸 속의 ‘모유 공장’을 더 크고 튼튼하게 증설하고, 만들어진 모유가 잘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는달까? 하지만 임신 중에는 젖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두 호르몬은 프로락틴이 나오는 것도 억제하는 역할을 해.     


마침내 때가 되어 아기가 나오고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감소하면, 억제되어 있던 프로락틴이 비로소 분비되어 젖도 나오지. 출산 후에 도파민 분비가 줄어드는 것도 프로락틴이 더 나오게 하는 효과를 낸단다. 그래서 출산 후에는 이렇게 미리 준비되어 있던 엄마 몸 속 ‘모유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젖이 나오지. 이 모유 공장은 오로지 고객님(=젖을 먹는 아기)에게 잘 전달되어 고객님이 잘 크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생산과 출하가 조금 일방적(?)이라서, 젖이 제때 충분히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모유가 금세 차면서 통증, 몸살이 오고 열이 나는 젖몸살이 온단다.


출산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지? 젖몸살이 오면 안 그래도 지친 몸이 더 너덜너덜해진단다. 젖몸살 말고도 여러 다른 이유로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들도 있어. 모유 말고 분유로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엄마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서윤이에게 주는 젖을 끊어야 했어. 그런데 이 '모유 공장'의 가동을 멈추는 것, 즉 ‘단유’ 또한 쉽지 않단다. 자연스럽게 젖을 말리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단유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위에서 말했듯 도파민수용체의 효능제(즉 도파민은 아닌데 도파민처럼 일하는 성분)라서, 도파민처럼 프로락틴 분비를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하지. 그래서 젖이 만들어지고 나가는 걸 막도록 하는 거야.  

   

먼저 ‘브로모크립틴’ 성분을 가진 약(상품명은 ‘팔로델정’이야)이 있어. 원래는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병인 ‘파킨슨병’의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이지. 몸속에서 도파민처럼 일하는 ‘도파민 효능제’라서 프로락틴 분비를 억제한단다. 부작용 발생률이 높은 약 중 하나인데, 위장관계, 심혈관계, 그리고 신경계 부작용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 엄마도 이 ‘팔로델정’을 복용했었는데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먹을 때마다 각오를 해야 했지. 그리고 이 브로모크립틴 제제는 미국에서는 심혈관계 부작용이 심해서 더이상 모유수유를 억제하는 약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       


그리고 ‘카베르골린’ 성분의 약(상품명은 ‘카버락틴정’)이 있는데, 이것 역시 브로모크립틴과 마찬가지로 프로락틴 분비와 모유수유를 억제하는 도파민 효능제이지. 카베르골린은 적은 양으로도 작용이 강하고 길어서, 1mg을 1일 1회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프로락틴이 빠르게 저하되고 이후 21까지 계속 효과가 나타날 정도이지. 그리고 카베르골린 제제도 오심, 구토, 그리고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지만 브로모크립틴처럼 심하지는 않은 정도야.

                           

여름이 한창 시작되던 그 때, 엄마가 단유를 결심하고 단유약을 복용하니 서윤이에게 더 이상 젖을 줄 수 없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만의 편의였을 뿐이고, 아기 서윤이 생각은 좀 달랐겠지. 그동안 엄마 젖을 주로 먹었던 아기 서윤이는 젖병의 고무 젖꼭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매번 젖병을 거부했어. 아기는 배고프다고 보채고 엄마는 젖을 줄 수 없으니 안타깝고 해서 마음이 약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지. 엄마는 젖달라고 우는 아기가 너무 안타까웠는데(아기 우는 소리에 더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어), 그 와중에 엄마의 엄마(그러니까 외할머니)는 단호하게도 앙앙 우는 아기 입에 젖병만을 물려 주었단다. "배고프면 먹겠지!" 하시면서 말이야.

       

결국 서윤이는 어느 순간 젖병을 탁 물고 빨더라. 그렇게 조금씩 젖병에 잘 적응했고 엄마는 그 후로 엄마 젖 대신 가루분유를 사고 젖병을 소독하면서 서윤이 맘마를 준비했지. 서윤이는 6개월 간 모유수유 이후 분유를 먹으면서 잘 커주었단다.




'단유'는 마치 서윤이와 엄마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고리를 하나하나 조금씩 끊어 가는 과정과도 같았어.


그때는 너무 어려워서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나' 싶었어. 하지만 단유약과 가슴맛사지, 그리고 단호한(?)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지.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가 어느 새 엄마 몸 밖으로 나왔고 엄마가 주는 젖만을 먹고 컸는데 이제는 다른 음식을 먹게 됐지.  


엄마가 느끼기에 '단유'는 마치 서윤이와 엄마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고리를 하나하나 조금씩 끊어 가는 과정과도 같았어. 아기가 출생하며 탯줄을 끊는 것부터 시작해, 단유하기, 이유식 먹기, 배변 가리기 등. 아기가 커 가는 과정은 이렇게 엄마나 아빠의 돌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과정이었지. 그 중 한 단계인 '젖 끊기'를 엄마와 서윤이그렇게 마칠 수 있었어. 그렇게 한 단계씩을 올라서면서 엄마는 서윤이가 엄마와 다른, 어엿한 한 사람으로 커가는 걸 지켜보고 있지. 그러고 보니 단유약도 프로락틴 분비를 차단해서 프로락틴 분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 단유약은 젖이 나오게 하는 호르몬 과정의 어느 하나를 차단하고, 엄마는 서윤이에게 주던 젖을 끊음으로써 서윤이와 엄마의 관계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지. 엄마가 했던 건 엄마와 서윤이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한 시도였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시도들은 계속될거야. 그러면서 우리 사이에는 이야기가 계속 쌓이겠지. 아기 서윤이를 키울 때는 모든 일들이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이제는 엄마도 엄마로서 조금 큰 것 같아. 앞으로가 기대되는 걸 보니 말이야. 


우리는 조금씩 같이 크는 중이야.



 

참고문헌

1) 네이버 지식백과, 유즙분비억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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