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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Mar 04. 2024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출 때, 치매약

행복했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몇 년전에 TV에서 인기있었던 드라마가 있었어. <눈이 부시게>라는 제목의 드라마였지. 주인공 ‘혜자’는 시계를 돌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어느 날 시계를 잘못 돌려 스물다섯 살에서 칠십 대 노인이 되어버리지.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한순간에 수십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워 ‘다시 20대 청춘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마지막엔 결국 “긴 꿈을 꾸었나 봅니다. 나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라는 나이 든 혜자의 고백과 함께 반전을 맞지. 앞선 모든 장면들은 혜자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아주 오래된 기억 속 장면이었던 거야.      


(출처=JTBC)


드라마를 보고 엄마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은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 솔직히 엄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20년 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거든. 감사하게도 아직 엄마 주변 어른들 모두 건강하시기 때문인지, 엄마 스스로의 나이듦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 어쩌면 나이는 들어도 노인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구체적으로 알게 되겠지. 얼굴도 몸도 조금씩 변해가고, 그에 맞게 생각도 경험도 점점 쌓이고 변해갈 테니 말야.      


우리나라도 이제 20대 인구보다 70대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높아졌고,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지. 사회 구성원들이 나이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갖는 질병이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야. 그 중 하나가 바로 치매란다. 치매가 뭘까? ‘치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뇌손상을 입어서, 인지기능이 떨어지 일상생활에 지장을 는 상태를 말해. 기억력, 언어능력, 이해능력, 판단력 저하, 성격 변화가 주요 증상이지. 치매는 어떤 한 가지 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뇌에 생기는 다양한 질환 때문에 생기는 '증후군'의미해.     


치매를 일으키는 뇌질환 중 하나가 바로 알츠하이머병이야. 앞서 말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의 주인공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지. 알츠하이머병은 이상 단백질(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 나가는 퇴행성(나이들어 세포가 손상되어 증세가 점점 나타나는 것) 신경 질환이야. 전체 치매 환자의 50~60%가 알츠하이머병 환자일 정도로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주된 원인이지. 그 외에도 혈관성치매, 전두측두엽치매, 파킨슨병과 관련된 치매 등 80여가지 다양한 질환으로 인해 치매에 걸릴 수 있어.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익숙하게 처리하던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단다. 신경세포가 점점 손상되면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고 쉽게 혼돈에 빠지고 성격이 변하게 돼. 참을성이 없어지고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판단력이 흐려진단다. 병이 더 진행하면 대화할 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애를 먹거나 대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간단한 지시사항이나 복잡한 문제해결을 어려워하게 돼. 그러다 결국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식사, 배변, 몸 씻기 등 모든 일상생활을 보호자에게 의지하게 된단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치매 진행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약은 없어. 하지만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를 낮출 수 있는 약은 있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와 ‘NMDA 수용체 길항제’. (이름들이 좀 어렵지?) 두 가지 치료제가 몸속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한 번 해 볼게.


먼저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신경전달물질은 또 뭐냐고? 우리 뇌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경세포가 있단다. (‘뉴런’이라고도 해. 뇌 안에 약 860억 개 정도 있어. 엄청 많지!) 이렇게 많은 숫자의 신경세포들이 가지를 뻗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냐면, 가지와 가지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틈을 ‘시냅스’라고 해)을 두고 그 사이에서 화학물질을 보낸단다. 신호를 전달하려는 신경세포가 시냅스에 화학물질을 뿌리면, 그 뒤에서 신호를 받는 신경세포가 그 화학물질을 인식하고 신호를 받는 식이지. 그리고 필요한 신호전달이 끝나면 이 화학물질은 신속하게 제거된단다. 


이 연결부위(시냅스)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억이나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기지. 그리고 이 화학물질 중에 기억과 인지능력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세틸콜린’이야.(이것도 이름이 좀 어렵네!) 특히 치매 환자는 신경세포가 많이 사라진 상태라서 이 아세틸콜린이 많이 부족해. 아세틸콜린을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세틸콜린이 제거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쓸 수 있어. 그런데 아세틸콜린을 제거하는 효소가 ‘콜린에스테라제’거든. 그러니까 콜린에스테라제가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물질은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인 거지.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가 아세틸콜린이 뇌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인지기능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그래서 이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는 치매 증상을 치료할 때 가장 먼저 쓰는 약이야. 경등도에서 중등도의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에 사용되지. 대표적인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로는 세 가지가 있는데,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그리고 ‘갈란타민’ 제제가 있단다. 정제나 캡슐제 뿐 아니라, 입에서 녹여 사용하는 구강용해필름, 구강붕해정, 그리고 피부에 붙이는 패치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지.           


신경세포들은 가지를 뻗어 서로 연결돼 있는데, 연결된 그 틈에서 신호를 주고받아. 그 틈을 '시냅스'라고 부른단다. (출처= 각 한겨레 미래&과학, 위키백과)


그리고 또다른 치매약으로는 ‘NMDA 수용체 길항제’가 있어. (‘길항제’는 어떤 작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약이라는 뜻이야) ‘NMDA 수용체’는 우리 뇌에서 기억력을 유지하고 학습에 관여하는데, ‘글루타메이트’라고 하는 흥분성 아미노산에 의해 과도하게 자극되면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거든. 그런데 NMDA 수용체 길항제는 글루타메이트가 과도하게 활성되는 걸 억제해서 뇌 신경세포의 파괴를 줄이지. 그래서 기억력이 좀 좋아지고 치매가 진행되는 걸 막는 역할을 해.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를 사용해도 뚜렷한 개선이 없을 때 투여하거나, 중등도 이상의 알츠하이머병에 단독 또는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와 병용으로 투여한단다. NMDA 수용체 길항체는 ‘메만틴’이라는 성분 한 가지만 있는데, 정제와 액제 두 가지 형태가 나와 있지.


지금까지 나온 치매약들은,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이지. (출처=약업신문)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초기 단계의 인지기능 장애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약이 개발되어 미국에서 시판되기도 했지. 하지만 초기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이미 진행된 환자에게는 효과가 크지 않아서, 치매를 완전히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쓰기에는 부족한 형편이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단백질의 축적으로 인해 뇌 손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야. 수많은 신경세포가 이미 죽어 없어졌는데, 그제서야 원인 물질에 손을 쓰려고 하면 때는 늦은 거지. 치매 원인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데다가, 개발한 약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임상시험 대상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치매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지. 그래도 치매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 내고, 효과를 내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전세계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단다.




서윤이와 엄마도 언젠가는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수도 있겠지.


치매라는 병은 서서히 우리 삶의 기억들을 빼앗아 간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참 잔인한 병이야. 한 언론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을 점점 잃어 가고, 병이 점점 진행돼가면서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격도 점점 변해 다른 사람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게 치매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지.


그래서 치매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현실이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서서히 ‘나빠질 일’만 남아 가족들의 부담이 점점 커질 테니 말이야. 우리나라에서도 만 60세 이상 인구 중 약 7.3%가 치매 환자이고, 점점 환자수가 늘어나 올해 중 치매 환자수가 곧 100만명에 이를 걸로 예상되고 있어. 치매 환자는 치료해야 하거나 간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지지. 치매에 걸리면 진행을 늦추는 약을 먹거나 인지훈련을 받는 정도고, 병이 계속 진행되면 주간보호시설이나 시설에서 생활하다 돌아가시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니까.


그런데 말야, 엄마가 얼마 전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일본의 한 특별한 식당에 대한 기사였지. 그 식당은 가끔 주문한 것과 전혀 다른 음식이 나오는 ‘주문 틀리는 식당’으로 유명해. 그 이유는 바로 식당의 종업원이 83세 백발의 치매 환자이기 때문이야. 치매 노인도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식당 주인의 좋은 의도와 더불어, '특별한 식당'으로 알려져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기라고 해. 그런데 이 식당 말고도 일본에서는 경증의 치매 노인들이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건 보기 드문 장면이 아니래. 일본에서도 고령자 5명 중 1명, 환자수로는 약 650만명에 달하니 치매에 대한 고민이 많거든. 그래서 일본은 ‘치매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혼자 일상행활을 하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이지.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치매를 다르게 받아들이자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누구나 나이들면 치매가 찾아올 수 있으니 치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기본적인 상식을 미리 갖자는 거지. 일단 치매에 대해 알게 되면,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을 알 수 있고 치매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수 있는 좋은 방법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가이드북인 <엄마의 공책>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치매는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어. 몸은 늙어가는데, 정신만 말똥말똥할 수는 없으니까. 몸과 정신이 함께 늙어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스러져가는 '과정'인 거지. 물론 그 과정에서 문제 행동은 조금씩 고쳐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이야.


수십 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서윤이와 엄마도 언젠가는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수도 있겠지. 우리 주변 가족들에게 어쩌면 치매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행복했던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과학적인 지식 뿐 아니라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거야. 물론 지금보다 훨씬 효과 좋은 치매 치료제 개발도 기대하면서 말이야.




참고문헌

1) 약학정보원 약물백과, 치매치료제

2) 치매의 약물용법, 윤현철, 정현강, J Korean Med Assoc 2018 December; 61(12):758-764

3) 대한치매학회, 99가지 치매이야기

4) 중앙일보 기사, “카페에서 일하실분, 치매 있어도 괜찮아요” 日 치매와 공존 실험, 2024.01.31.

5) 신약의 탄생, 윤태진, 바다출판사

6)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암보다 두려운 치매, 치료 가능한가요?’

7)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 하세가와 가즈오, 이노쿠마 리쓰코 지음, 라이팅하우스

8) 엄마의 공책, 이성희, 유경 지음, 궁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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