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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독이 Jun 01. 2023

끝내 건네지 못한, 이젠 건널 수 없는

에세이 한 스푼


나는 외가 쪽 친척이 특히 많은 편이다. 엄마는 3남 2녀 중 장녀였고,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3명의 외삼촌과 1명의 이모가 있었다. 외가인 부산에 갈 때마다 외가의 첫 여자아이였던 나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치했고, 그중 특히 막내 삼촌은 나를 예뻐하셨다. 막내 삼촌은 나에게 ‘온전한 애정’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해 준 첫 어른이었다. 나를 너무 좋아해 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그 어린 나이에도 느껴졌던 건지, 난 특히 삼촌을 많이 따랐다.

 

막내 삼촌은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함과 동시에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분이었다. 취미로 하던 운동에 진심이 되어 보디빌더 대회에도 나갔고, 첫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를 나에게 안겨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린 내가 봤을 때 우리 막내 삼촌은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단단하고 착한 사람.

 

그런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했던 기억은 쉽게 잊힐 수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삼촌이 답지 않게 수저를 바닥에 두 번 정도 떨어뜨렸다. 처음엔 모두가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실수가 점차 잦아졌고, 팔에 쥐가 날 때가 많아서 일에 지장이 갈 정도일 때도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들었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루게릭병.

세상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이렇게 착하고 단단한 사람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걸까. 그렇게 그 병은 우리 가족의 삶에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스며들더니 결국 막내 삼촌을 집어삼켰다.

 

강골이던 막내 삼촌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갔고, 손에서부터 시작된 마비는 머지않아 사지로 전이되어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갔다. 결국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는 목에 구멍을 내어 숨을 쉬게끔 호수를 연결했고, 막내 삼촌은 어느새 자신의 눈동자 빼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할머니께서 자음과 모음이 모두 쓰여 있는 판을 들고 볼펜으로 낱말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다가 막내 삼촌이 눈을 깜박하는 순간에 멈춘다. 그렇게 일련의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오랜 시간에 걸쳐 짧은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런 식으로 우린 막내 삼촌과 어렵게 소통했다. 

 

막내 삼촌의 마지막 순간이 오기 며칠 전, 온 가족이 모여 막내 삼촌의 침대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던 때가 기억에 선명하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분명 막내 삼촌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걸 느꼈지만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살면서 누군가의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을 단계별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특히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그 모습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난, 막내 삼촌과의 마지막 인사를 외면했었더랬다. 나를 그렇게나 사랑해 주던 삼촌의 눈을 그렇게 피해버렸더랬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을 보았을 때, 마지막 순간에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삼촌의 눈이 바로 떠올랐다. 직접 본 적은 없기에 오롯이 나의 상상에만 의존한 모습이겠지만, 그 눈은 참 슬펐다. 많이 아련하고, 많이 아팠다. 그때가 가장 후회된다. 딱 한 번 만이라도 막내 삼촌과 눈인사를 할걸. 삼촌의 마지막 모습을 온전히 내 눈에 담아 둘걸. 사실 나도 삼촌을 참 많이 애정 한다고 한마디라도 해 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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