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콜라 Dec 23. 2021

13년 기른 머리를 싹둑 잘랐다

모험

'모험'
冒險,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넌 너무 생각이 많아.”

내 안의 세포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신중하다는 건 좋은 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해서 무얼 하든 걱정부터 튀어나오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장 버리고 싶은 성격 중 하나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시작, 과정, 마무리까지 몽땅 떠올리는 사람은 대부분의 시도가 모험에 가깝다. 치킨집에 전화하는 것도, SNS 계정을 만드는 것도, 운동을 배우는 것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 저녁을 먹고 갑자기 산책하러 나가는 것도 작은 모험이다. 집순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과거에 한 일 중 가장 큰 모험이라면 역시 퇴사일 것이다. 오래 몸담은 조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다니 얼마나 큰 변화인가. 번아웃과 오랜 회사생활에 대한 허무가 등을 떠민 것에 가깝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도전이자 모험에 몸을 던진 것과 다름없었다.


누가 그랬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전쟁터라면 내 마음에 드는 지옥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요즘은 내 인생 최대의 모험 중이다. 일류 번역가가 되어보겠다는 모험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모험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좀 더 많은 일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13년이나 기른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한 번 잘라보지 뭐!' 하고 단골 미용실로 직행했다. 원장님은 후회하지 않겠냐며 몇 번이고 물었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머리가 깡총 짧아진 채 미용실을 나왔다. 후련했다. 오랜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그 밖에도 요즘 많은 모험에 나섰다. 몇 달 전에는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자격증 시험도 봤다. 얼마 전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는 이제 곧 초급 책 한 권이 끝나는 단계가 되었고, 좋은 동료들과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내일도 한 가지 모험을 해볼 예정이다. 가족 모두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조깅을 나가리라! 혼자만 건강을 챙기자니 영 양심에 찔려서다. 회사를 벗어나니 내 삶은 좀 더 오롯이 나만의 삶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나하나 모험에 나서다 보면 전보다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