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
幸福,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아직 토요일 점심에 불과해서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내가 행복이라 느끼는 감정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 똑 닮아서였다. 저자의 소행 때문에 앞으로 추천할 일 없는 책이 되어버렸지만 이 문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뭘 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답하기 쉽지 않다. 행복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행복의 모양이 그렇다. 행복한 순간은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한 때이기도 하고,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충만한 때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 질 녘에 산책하는 것도, 배달 오길 한참 기다리다가 맛있는 치킨을 먹는 것도, 츤데레 같은 고양이가 가뭄에 콩 나듯 다가와 무릎이 데워주는 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읽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가 하면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일을 마감한 직후나, 몇 날 며칠 긴장하며 기다리던 시험이 끝난 후, 아니면 힘든 운동을 땀 뻘뻘 흘려가며 해낸 뒤에는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전에 없이 풍족해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점심시간, 퇴근, 주말만이 행복의 기준이었는데 퇴사해서 홀로서기를 하고 나니 기준이 또 달라졌다. 목적 없이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은 즐겁지만 계속되면 불안해진다. 백만장자라면 또 모를까, 안타깝게도 평범한 사람은 그렇다. 끝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으로 돈도 벌 수 있는 데다, 마침내 일을 끝냈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은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두 번째로는 행복의 크기가 그렇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한국은 하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해석을 본 적이 있다. 영어로 ‘happy’라고 표현하는 감정은 한국의 ‘행복’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좀 더 거창하고 특별한 감정이라면, ‘happy’는 그보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런 차이가 한국인들은 덜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소소한 것들을 행복으로 여기며 산다면 인생이 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는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재주가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소소한 일에도 말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행복은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 깨져버리니까.
물론 언젠가는 번역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검토서 마감의 ‘행복’을 좀 더 만끽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