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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콜라 Dec 23. 2021

해피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을지도

행복

'행복'
幸福,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아직 토요일 점심에 불과해서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내가 행복이라 느끼는 감정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 똑 닮아서였다. 저자의 소행 때문에 앞으로 추천할 일 없는 책이 되어버렸지만 이 문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뭘 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답하기 쉽지 않다. 행복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행복의 모양이 그렇다. 행복한 순간은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한 때이기도 하고,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충만한 때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 질 녘에 산책하는 것도, 배달 오길 한참 기다리다가 맛있는 치킨을 먹는 것도, 츤데레 같은 고양이가 가뭄에 콩 나듯 다가와 무릎이 데워주는 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읽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가 하면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일을 마감한 직후나, 몇 날 며칠 긴장하며 기다리던 시험이 끝난 후, 아니면 힘든 운동을 땀 뻘뻘 흘려가며 해낸 뒤에는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전에 없이 풍족해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점심시간, 퇴근, 주말만이 행복의 기준이었는데 퇴사해서 홀로서기를 하고 나니 기준이 또 달라졌다. 목적 없이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은 즐겁지만 계속되면 불안해진다. 백만장자라면 또 모를까, 안타깝게도 평범한 사람은 그렇다. 끝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으로 돈도 벌 수 있는 데다, 마침내 일을 끝냈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은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두 번째로는 행복의 크기가 그렇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한국은 하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해석을 본 적이 있다. 영어로 ‘happy’라고 표현하는 감정은 한국의 ‘행복’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좀 더 거창하고 특별한 감정이라면, ‘happy’는 그보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런 차이가 한국인들은 덜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소소한 것들을 행복으로 여기며 산다면 인생이 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는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재주가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소소한 일에도 말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행복은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 깨져버리니까.


물론 언젠가는 번역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검토서 마감의 ‘행복’을 좀 더 만끽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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