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마치 답지가 찢어진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죽은 사람의 MBTI를 궁금해 하는 일 말이다.
엄마와 나는 정말 달랐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 단 한순간이라도 서로를 제대로 이해한 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음, 쓰면서 생각해보니 달라서 이해를 못했는지, 이해하지 않아 다르다 생각한 건지 조금 헷갈린다. 나는 단 한번도 우리에게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단 1의 접점도 없다는 게 과연 말이 될까? 살아보니 정 반대의 MBTI 유형끼리도 닮은 구석이 있는데, 핏줄로 연결된 엄마와 딸이 서로 닮은 점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니까, 팩트는 안 닮았다고 믿은 것 뿐이다. 아마 그렇게 믿고 싶었나보다. 사실 나는 엄마가 '다르다'기 보단 '틀렸다'고 생각했으니까. 틀린 사람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왜 자꾸 나가서 놀려고 하는 걸까?'
'술이 뭐가 좋다고 마시는 걸까?'
'왜 저런 짓궂은 말을 할까?'
'왜 원칙을 따르지 않는 걸까?'
웃기지만 정말 왜 그럴까를 궁금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생각들은 형태만 의문문일 뿐, 실상은 비난이었다. 의문 아닌 의문을 품고선, 문항 하나하나마다 빨간 작대기를 그었다. 나는 엄마를 채점했던 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인,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테스트. 단 한 번이라도 동그라미를 준 적이 있었나? 당연히 없다. 애초에 엄마는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었으니깐 말이다. 애초에 틀렸다고 생각한 것들만 '문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의 mbti는 무엇이었을까? 올 한 해 mbti(성격유형검사)가 대유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장 많이 후회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mbti다. 일단, 엄마의 mbti는 앞으로 절대 알 수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깊은 후회를 남겼다. 아니 후회랄까, 솔직히는 조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이게 그냥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천재도 알아낼 수 없는, 영원한 미제로 남는다는 건데, 우주의 신비조차 알아내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알아낼 수 없는 거라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압도되었다.
제일 무서웠던 건 이런 어마어마한 것을 내가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우주의 신비보다 알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저 엄마에게 mbti라는 게 있는데, 한 번 해보라고 말 한마디 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mbti를 몰랐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을 텐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mbti가 대유행한 건 엄마가 돌아가신 뒤였지만, 사실 나는 그 전에도 MBTI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아마 대학교 신입생 시절 진로개발센터에서 의무적으로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엄마에게도 이 검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아서, 영영 해결되지 못할 문제를 세상에 남겼다.
12분짜리 간단한 테스트 하나, 심지어 전문가들 말로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는 이 검사 따위지만, 엄마의 mbti는 이상하게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절대 '에이, 한 번 해보면 좋았을걸. 아쉽다.' 정도로 끝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후회란 평범한 활자 뒤에 죄책감이란 음영이 져 있었다. 그 말인즉슨, 사실은 내가 인지하고 있었단 얘기다. 엄마에게 mbti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그 이유를.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란 사람을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시에 엄마에게 mbti를 알려주지 않은 건 단순히 까먹어서, 물어볼 시간이 없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안 궁금하니까 안 물어본 거다. 이게 팩트다. '엄마는 왜 그럴까?'와 '엄만 대체 왜 저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문장 중 줄곧 후자만 택했던 나니까, 당연히 엄마의 성격유형은 내 관심대상 밖이었을 것이다.
'엄만 나한테 관심도 없잖아!' 이건 청소년기의 내가 주로 쓰던 단골 멘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눈을 치켜뜨면서, 또는 끅끅 울어대면서 이 말을 참 자주 뱉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나는 엄마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나.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 때문이었는지, 실제로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랬는지, 어쨌든 머릿속이 한지처럼 하얗고 투명해진 느낌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엄마를 '엄마'라는 프레임에 가둬두고, 평가질 하기 시작한 건지, 정확한 시점이나 당시 나의 나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추측컨대 사춘기가 왔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나를 키우면서 엄마도 '넌 나한테 관심이나 있긴 하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적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니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엄마를 제대로 리뷰(review; 다시 보기)해보려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내게 엄마를 제대로 리뷰할 자격이 생긴 듯하다. 지난 4년은 내가 얼마나 잘못된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봐 왔는지를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리뷰가 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나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며, 당사자에게 팩트체크를 할 수 도 없다. 게다가 엄마는 나를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한 시간만큼의 삶을 살았으니,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건 절반탱도 안된다. 특히, 자칫 잘못하다간 엄마 팔아 나만 좋은 년, 착한 년인 척하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도 되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글솜씨라, 나의 의도는 전혀 그런 데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무 훌륭하고 멋진 엄마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에 쓰게 된 글이다. 부족한 글 솜씨로 엄말 욕보일까 두렵지만 좀 더 써볼 생각이다. 아직 엄마의 멋진 면면들이 많이 남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