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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2. 2023

너도 어제 늦게 들어왔구나?

[라이브 다이어리] 2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느라 모두가 다 고생입니다. 학원에서 주 4일 6시간씩 영어만 공부하는 열여덟 따님도 자주 그럽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왔다 갔다 하는 거라고. 그렇게 몸으로 일찍 깨닫는 게 다행입니다. 살아가면서 뭐가 가장 우선인지 역시 몸으로 느낄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가, 저녁 시간을 넘기면서 집에 와도 혼자 산책을 하러 나가려고 합니다, 가끔은.


장맛비가 장대처럼 하루 종일 솟아진 다음 날,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봅니다. 가랑비가 내리긴 하지만 우산을 펼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하늘은 어둑한 데 왠지 깨끗하게 환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지 못할 장면이 눈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주차가 문제입니다. 가끔 얼마 동안을 함께 쓰는 주차장 입구를 막고 선 이들의 사연이 뉴스거리가 될 지경입니다. 며칠 전 뉴스도 주차 때문에 시작된 잘못된 행동이더군요. 사람만큼, 참 차들도 많은 세상입니다. 어찌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듯이 차들 역시 도란도란 질서를 지키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침 출근을 하는데 이중 주차되어 있던 차들 세대가 나란히 서로 붙어 있더군요. 우리 단지에서는, 십여 년 간 처음 보는 장면입니다. 깨끗하게 씻겨진 아침에 도드라진 장면입니다. 정황을 보니까 안쪽 가장 바깥에 있던 차가 나가면서 밀어냈겠지요. 그런데 그 라인 네다섯 번째 차도 나가려고 주차된 방향으로 밀어냈는데 그 3대가 서로 만났나 봅니다.  


(에구, 너도 어제 늦게 들어왔구나? 고생했어. 차주 다 준비하고 다시 내려올 때까지 좀 더 쉬어, 쉬어.)



이 장면을 보니 오래전 파리 출장 갔을 때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주택가 골목골목에 차들이 넘쳐나는 건 우리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확연하게 다른 장면 하나가 바로 이 아침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오버랩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차들이 범퍼의 원래 역할을 해내고 있더군요. 앞뒤로 다닥다닥 붙은 차들에 의아해할 때쯤, 파란색 소형차가 앞뒤 범퍼를 이용해 웅웅~ 엔진음을 거칠게 내면서 앞뒤 차를 힘껏 밀어 왔다 갔다 몇 번 하다 휭~하고 자연스럽게 출발하더군요.


지나가던 행인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국인 일행들만 빼놓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차가 막혀 느릿느릿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발생한 접촉 상황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냥 자석처럼 갔다 붙었는데 옥신각신 하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차도 아주 중요한 재산이지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숨보다는 하찮은 거죠. 그 많은 차들이 오고 가는 곳에서 어정쩡하게 차들을 세워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건 아주 위험하니까요. 간혹 경광등만 켜면 안전이 담보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거든요. 


이건 그간 고생하며 살아내는 자신을 빛나는 것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많아 멋지고 화려한 차, 아니 차가 아니라 우주선을 산 들, 내돈내산이니 문제 될 게 전혀 없지요. 천박하던 그렇지 않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그룹핑이 되는 거야 인생사 진리 같은 거겠지요. 그런 나라 그런 체제에 사는 이상. 


그런데 초점은 항상 결핍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입니다. 누구나 결핍은 있지요. 하지만 그 결핍을 만회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또 하루하루의 삶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요. 하지만 결핍을 통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 버리고 싶은 것, 버릴 수 있는 것이 도드라져 보이고, 구분해 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져요.


많은 경우, 본질은 차에 생긴 스크레치가 아니지요. 마음에 생긴 스크레치가 아무런 필터 없이 자존감 붕괴로 바로 연결되는 심리적 위약함이 켜켜이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결핍에만 초점을 맞춘, 상대적 우위, 열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질 낮은 일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요. 매 순간 공격에 대한 방어, 선제공격만을 생각해 내야 하는 예민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말이지요. 요즘 특히. 날씨 탓으로, 사는 게 녹녹하지 않은 탓으로, 그렇게 나이 먹어 온 탓으로. 나의 코털 하나라도 건들면 목숨까지 걸고 달려들어야 하는 속도감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장면에 자주 노출되는 10대들의 처세술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걱정은 기우였으면 합니다. 장마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물난리에 대한 것뿐 아니라 서로 다 잘먹고 잘 사는, 살려는 이제는 마음 난리에 대한 대비도요. 오란비 사이 사이에 폭염도 한 몫 톡톡히 하기 시작합니다. 며칠전 고장 난 에어컨을 고쳐서 정말 다행입니다. 여덟해 동안 우리 식구들을 따듯하게 시원하게 옮겨 주느라 고생이 참 많긴 많았나 봅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도 불쾌해집니다. 하지만 우린 알지요. 장마 끝에 폭염이 그 끝에 가을이, 또 겨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하루하루 내가 가진 것,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을 내 것인양 오감으로 흠뻑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비에 폭염에 이 글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과 가족, 지인들이 언제나 '오늘도 안녕' 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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