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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6. 2023

300이다! 자, 매쓰 주세요~

사진...unsplash

폴더 속 파일들을 보니까 2018년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끄적끄적이기 시작한 듯 합니다. 여기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건 2021년 9월 11일이군요. 그 첫날은 무려 다섯개의 글을 한꺼번에 올렸습니다. 하하 글정(?)이 대단했던 가 봅니다. 그 후로 오늘까지 22개월 동안 300개의 글을 씁니다. 


원래 그렇게 막쓰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오면서 만난 라라크루님들 덕에 더 그렇게 막쓰고 있습니다.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하게 막씁니다. 막 은 바로 바로, 급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구마구 쓴다는 거지요. 마구 쓴다는 건 장르, 소재 가리지 않고 쓴다는 겁니다. 앞뒤 안가리로 쓴다는 겁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데로, 자판이 움직이는 대로. 


올 3월 2일부터는 지금까지 매쓰 - 매일 쓰기 - 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쓰자, 는 계획은 전혀 없었지요. 그저 일어나는 시각을 일찍 당겨보자는 게 더 우선이었습니다. 새벽 시간을 즐겨 보자 였지요. 그렇게 4시나 4시반 무렵, 주말에는 5시나 5시반 무렵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앉으면 그저 행복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나는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급격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는 다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우리집에서 가장 아침형 인간이었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전에 무엇을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출근시간보다 삼사십분 일찍 일어나는 정도였지요. 밥벌이를 위한 소소한 예비 동작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람을 맞춰놓긴 하는데 어김없이 5분, 10분전에 눈이 먼저 떠집니다. 


# 9시 무렵에 잠드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폭 떨어져 숙면을 취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뒤척이는 시간이 보통 몇십분. 한두시간을 넘기는 적도 꽤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버릇하니 9시 무렵에 잠이 옵니다. 일출이 빠르면 일몰이 당연히 빠른 이치입니다. 


# 조그만 돌아봐도 화날만 한 일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화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장면을, 상황을, 생각을 키워드로 기록해 두게 됩니다. 휴대폰을 들고 내서랍속에 차곡하곡. 그렇게 쌓여가는, 지저분해지는 내서랍이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그럴수도 있지. 라고 자주 여기게 됩니다. 무슨 사정은 사정이야, 에서 무슨 사정이이겠지, 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 잘 삐치지 않게 됩니다. 삐치는 건 화가 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을 할까 고민하다 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원래 삐치는 건 큰게 아니라 작은 일이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그냥 기분이 나쁠 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화를 포장하려고 할 때, 무슨 말로 시작해야할 지 모를 때 주로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 잘 먹습니다. 더 잘 먹습니다. 먹고 사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인 것 같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거지, 가 아니라 이렇게 먹고 사는 게 의미가 있는거란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확인하는 연습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잘 찍습니다. 뭘 그런 걸 다 찍어, 가 저였습니다. 아내나 따님이 먹기 전에 잠깐, 하고 외치면. 기다리다가. 어쩔때는 퉁명스럽기까지 했을것 같습니다. 


# 실 없어졌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날카로운 바늘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곳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이 들어와도 방어할 태세가 단단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늘끝이 조금은 무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이 바늘에 꿸 실도 없어집니다. 실 없어집니다. 체신머리, 가 무슨 머리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내뱉고 곁눈질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이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할 따름입니다. 좋은 것만 기억해 주십시오, 하고.  


# 우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게 즐겁습니다. 너무 너무 웃겨서 그 웃긴 이야기를 내뱉지 못하고 큭큭거려서 정작 앞에 있는 이는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고 멍해 하는 그 장면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집니다. 몸나이 들면서 웃으면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지만, 참 좋습니다. 다 글 덕분입니다. 쉰생아를 허락해 준 아내와 따님 덕분입니다. 다 식구들 덕분입니다. 



세상에는 3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 이제 막 위기를 이겨 낸 사람, 조만간 위기가 닥칠 사람. 같은 사이즈의 위기라도 각자가 삶의 사이즈에 따라 체감 정도가 다 다르지요. 하지만 공통적인 건 그 위기가 지나야 기회가 온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무엇을 하건, 무엇에 빠져 있건 위기는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또 반드시 같은 위기에서 이겨내고 있는, 이겨낸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아무리 신새벽에 서둘러 도로위에 올라서도 앞서는 차, 뒤따르는 차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지나가면서 느낍니다. 꿈을 꾸기만 할 때가 가장 설레고 제일로 행복하다고. 


'그때는 꿈이라도 꿨지' 뭐, 이런 자조빛 강한 이야기를 툭 내뱉을 때가 가끔 생기는 게 인생이니까요. 꿈은 이루어지는 것보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과정이 주는 행복이 만만치 않게 커다랗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글을 그저 막쓰고, 매일 쓸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특별한 일이 있어도 노트북은 항상 챙겨다녀야겠다 다짐합니다. 



우연하게도 공개적인 글을 300번째 쓰는 오늘 어머님이 세번째 입원을 하시는 날입니다. 내일 폐암 수술을 위해서. 그동안 이런 저런 수술을 위한 검사에서 좋은 데이터들이 나왔습니다. 두손 모아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그 행복속에서 자연스레 깨달은 진리 하나. 막쓰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은 매쓰라는 것을. 자, 매쓰 주세요!!



피에쓰 : 그렇게 끄적일 무렵 써놨던 일기의 한부분에 다시 어머님이 등장합니다. 실제로는 다른 지역, 다른 병원에서 하셨습니다. 오늘, 내일 다시 가족돌봄휴가를 냈습니다. 


2019년 11월 16일. 토요일

< 어머님 수술 준비 

다음주 금요일. 어머님 인공관절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아내의 지인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이라 소개를 받고, 몇 개월을 다니면서 어깨가 좋아진 000 병원. 여기는 지금 북카페다. 큰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고 방금 와 앉았다. 안개가 자욱하고, 습기가 많은, 북카페 바깥은 평화로워 보인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청산에 살으리랏다’는 내 마음의 평화를 도와준다. 오늘, 내일은 북카페에서 내 일 – 반 아이들 생기부도 입력하고, 시험문제도 마무리 짓고, 내년 수업운영 틀도 완성하고 - 좀 마무리 해놓고 다음주 목,금,토,일은 병원에서 어머님곁에 있으려 한다. 목, 금 이틀은 휴가를 냈다. 교직 22년 8개월만에 처음 써본다. 돈 걱정, 시간 걱정 많은 어머님 수술이 잘 끝나 지금보다 더 열심히 걸어다니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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