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저녁 포차 앞 골목. B는 커다란 눈망울에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며 서 있다. 두 손을 모아 잡고 있다가 두 팔을 벌려 나에게 다가왔다. 얼른 안아 주었다. 주르륵 떨어지는 눈물을 B는 애써 외면하며 인사를 건넸다. 뒤에서 눈물을 훔치던 A도 얼른 달려와 내게 안긴다. 그렇게 오 년 만에 다시 만난 스물 두해 전 제자들은 총총히 어둠 속으로 돌아서 걸어 들어갔다.
학교에 있다 보면 졸업생이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언제 오냐에 따라 찾아오는 이들의 상황이 다르다. 졸업 후 바로 찾아오면 아직 심리적으로 학교에서, 나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뒤섞여 있어서. 대학생활이 마냥 재미있지도, 돈 버는 일이 녹녹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중일 때다. 간혹 스스로가 졸업한 게 기특해서 그걸 뽐내려고 오는 경우도 있다. 벼리가 그중 한 명이다. 오래된 고1 때 담임이었던.
2-3년 지나서 불쑥 학교에 와서 나를 찾으면 사람이 그리워진 상태다. 이제 스스로가 한 고비 넘기면서 안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고 있을 때다. 남학생들은 보통 입대하기 전후에, 여학생들은 취준생 신분일 때 온다. 지금은 서른 중반이 된 여리가 그렇게 나를 찾아와 준 게 제대하는 날이었다. 그 후로 취업 때,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 승진했을 때 늘 같은 표정으로, 말투로 불쑥 찾아온다.
대철이 처럼 얼굴 보는 일보다 전화로 어찌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에는 일찍 잠든 나를 전화기로 깨워 사십 분을 넘게 통화를 했다. 다행히 십 년 넘게 만에 다다음주에 한번 찾아온다고 한다. 몇 달 전 결혼한 아내도 내가 가르친 제자라는 데 아직 알 길은 없다.
나는 그렇게 기다려지는 단골들이 많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지만. 하기야 내가 뭐 팔고 살 물건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마음속 단골들이다. 그중에서 단골 중 단골이 A, B이다. 한 아이 - 아, 이제는 아이가 아니다. 서른아홉이니. 내가 보고 싶은데, A, B한테 이야기만 늘 전해 듣는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애들 키우느라 그렇다는 말에 안심이긴 하다 - 가 더 있지만.
A와 B가 얼마 전에 늦은 세배를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찾아왔다. 22년 전 열일곱 때 만난 담임을. 돌림병이 시작되기 전에 얼굴을 보고 5년 만이다. 그날 A와 B도 서로 먹고 사느라 50인 이하 결혼식 때 서로 보고 3년 만이란다. A는 유명한 백화점에서 명품 의류 샾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돈을 꽤 벌어서 살만 하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다. B는 초등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초3 막내를 챙기려고 주 2회 알바만 하고 있단다. 대신, 몸무게 60킬로가 되지 않는 마흔 중반의 남편이 돌림병 시기에 배달업계의 지역 대표 아이콘이 되었단다. 작은 체구에 덩치 큰 라이더들을 잘 챙기는 리더십이 있단다. 역시 참 다행이다 싶다.
내 마음속 단골들은 이렇게 나를 키운다. 그 단골들이 찾아왔다 간 뒤에는 형언하기 쉽지 않은 감동과 애잔함이 뒤섞여 진해 진다. 그게 나의 단골들의 매력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생은 참 쉽지 않은, 아니 어쩌면 위험한 직업인 것 같기도 해진다. 단골들의 삶에 응원과 박수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체력과 재력과 몸의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뒤 따른다. 그리고 A와 같은 단골의 이야기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러 찾아오면 그렇게 안아주고, 같이 눈물 흘려주고, 스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내고 돌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들어야 하기 때문에.
25년간 내 마음속 단골들의 이야기만 그대로 옮겨 적어도 몇권의 책이 되지 싶다. 각자 인생이란 책 한권씩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는 아이들. 내가 이 장사(?)를 그만두더라도, 그 단골들은 언제나 지금의 나로 존재하게 만들고 더 단단하게 챙겨주는 멋진 손님들이 될거라고, 우리 같이 방송에 출연했던 출연진이라고 이제 서른 중반이 넘어가는 양수가 전화기 너머에서 너스레를 떨어 준다. 그 너스레 덕분에 오늘도 십대들 앞에서 든든하게 잘 살아내는 게 분명하다. 나보다 더 잘 살아내는 걸로 보여주는 다 내 단골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