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고2였던 그때 커다란 음악실. 음악 실기곡으로 나는 그렇게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연습하고 있었다. 뜻은 당연히 모르고, 지역 사회에서 유명한 지휘자라고 들은 음악선생님의 유창한 발음이 내 귀에 와서 꽂히는 대로 한글로 적어 외웠다. 하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느낌은 최대한 살리면서.
지금 타는 두번째 차이자 첫 SUV. 이름이 소렌토다. 이제 여덟살이다. 우리집 반려견 타닥이와 나이가 같다. 아, 아니다. 타닥이가 두달 더 위다.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흘러 나온다. 가만히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삼십년이 넘은 시공간이 순식간에 이어진다.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그 님이 떠난 곳에서 막연하게 기다리는 애닮픔. 그 감정과 정서를 알 리 없는 남고 열여덟. 기계적으로 외우고 기술적으로 흉내내고 기교를 부리는 그 태도는 지금도 여전한 듯 하다. 꿈도 꾸지 않았다. 예고없이 방안 엘이디 등이 파박 켜지듯이 번쩍 일어났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렇게 움찔하다 옆 쿠션위에 올려 놓은 휴대폰을 쳤나 보다. 침대 밑으로 툭 떨어졌다. 짙은 어둠속에서 액정화면이 태양보다 훨씬 더 눈부시게 망막에 와 꽃힌다.
죄송합니다. 7월 9일 조금 전 최00 선생님이 임종하셨습니다
소렌토 이전의 나의 첫 차. SM520 중고차. 그 차에 아홉살 아드님을 태우고 부산에 사는 최00을 만나러 달려갔었다. 벌써 햇수로 13년전이다. 근사한 저녁을 사주면서 형님, 형님하던 아우. 교사 모임에서 잠시 만나 가끔 안부를 주고 받던, 라면을 지독히도 좋아했던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다.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먼저 갔나 보다. 이제는 푹 잠 좀 자기를.
7월 18일 저녁 8시 45분.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LA 톰 브래들리 공항에서 우여곡절끝에 환승에 성공, 밴쿠버 공항에 같은 날 밤 11시 50분에 착륙했다. 공항 밖으로 나와 픽업을 나온 아드님과 만난 시각이 19일 새벽 0시 30분. 아드님을 3년간 데리고 살아 주는 처형네에 도착한 게 2시가 넘었다. 그렇게 밴쿠버의 첫날은 아깝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