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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8. 2023

짐을 싼다는 건

며칠 전 텅빈 새 집에 들어갔다. 사십년지기 친구네가 이사오는 집이다. 우리집에서 차로 10분이 걸리지 않는 옆옆옆 단지이다. 이사 오기 4-5일 전. 입주 청소를 다한 후 이방 저방, 여기 저기에 필요한 것들이 하나둘씩 들어났다. 아내와 재수씨는 동시에 그런다. 이렇게 텅빈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그러나 쇼파, 침대, 식탁, 의자, 책상, 심지어는 화분에게도 비었던 넑직한 공간을 양보하게 된다.  


양보해야만 하는 물건들은 집에 거주하는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일상을 편리하게 해준다. 거기에 더해 삶의 가치를 높이고, 품격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물건하고 사는 건지 물건이 살아주는 건지 분간이 안될때가 자주 있다. 이런 물건이 우리집에 있었나 싶은 것들이 종종 발견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마음이 담겨 있어, 사연이 묻어 있어 버리는 못하는 물건들도 많다.  


3년만에 3주 정도 아드님과 머물기 위해 짐을 챙긴다. 아드님과 처형의 부탁과 필요에 의해 짐 목록이 늘어난다. 하지만 직접 사고 배달을 시키는 과정에서 비용을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 이 물건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일상이 편리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게다가 고국의 향수를 느끼고, 집밥의 향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맡을 수 있는 물건들은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담아, 담아 캐리어 4개에 80kg이 넘는다. LA에서 경유하는 3시간 동안 다시 이 4개를 찾아 다시 수화물로 붙이고, 다시 수속을 밟아야 하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그렇게 잘 패스되어 아드님, 처형, 동네 지인들에게 잘 전달되 수 있기를. 그러다 보니 인생에서 개개인에게 필요한 물건들이란 게 다 필요한 이유가 있다. 다만 살다 보면서 그 이유가 약해지고, 잊혀지고, 바랬을 뿐. 그 당시의 이유는 언제나 절절했다. 지금 아드님이 그렇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부족하고. 


그렇게  몇날 며칠 구입을 하고 이틀 내내 짐을 넣었다 뺐다, 쌌다 풀었를 반복한다. 그런데 짐을 쌀때는 내가 아닌 짐을 맡을 이의 마음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아지면 선택이 되어 동행하는 짐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남는다. 그렇게 동행하는 짐을 싼다는 건 일상을 옮겨주고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같은 거다. 짐을 구한다. 구한 짐을 분류한다. 캐리어에 넣는다. 옮긴다. 수하물로 붙인다. 기내에 들고 탄다. 수하물을 찾는다. 옮긴다. 동행한 짐을 푼다. 전달한다. 보람을 느낀다. 선물 같은 마음이 전달된다. 그 마음을 받아 안고 좋아하는 이들을 본다. 행복해진다. 잘 했다 싶어진다. 미리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렇게 짐을 싸면서 마음도 같이 담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텅 빈 공간 - 그게 집이어도, 캐리어여도, 내 마음이어도 - 에 채워지는 물건들은 하나 하나가 다 관심이고, 정성이다. 그 나이에 그 상황에 꼭 어울리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이 소중하게 콘베어 벨트에 실려 나에게로 그에게로 다시 돌아 돌아 전달되는 사랑이다. 그 물건을 공유하는 이들 간에 말로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렇게 짐을 싼다는 건 마음을 차곡 차곡 계속 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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