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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7. 2023

봉선화 삼남매

[풀하우스]12

우리 집 봉선화, <윤봉선>이 태어난 지 오늘로 40일이 지나갑니다. 6월 5일이었네요. 그동안 <봉선>이는 매일 새벽과 아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아침으로 나갈 때 꼭 들여다 보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매일매일 컸습니다. 전날과 똑같은 오늘은 한 번도 없었네요. 하지만 열흘, 스무날 지나면서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열흘 정도 지나면서부터 세 그루의 자그마한 <윤봉선>이 또렷하게 나뉘어 자라기 시작했네요. 그러다 스무날 지나면서부터는 그 세 개가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딱 한 달 뒤부터는 크고 작은 잎들이 수북해진 후 거실을 향해 뻗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휴대폰으로 같은 거리에서 찍으면 잎들이 화면밖으로 밀려나가, 멀찍이서 찍어야 할 정도로. 


그런데 내일부터 3주 넘게 집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필 펠렛이 세 개가 한꺼번에 모여 있던 - 요건 초초초보의 실수였습니다. 얼마나 갑갑했을지 미안해집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자라주는 게 참 신기했나 봅니다 - 그로로 팟에 세 그루를 그대로 두고 출발하면 안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어제 오후에 드디어 분갈이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분갈이용 화분을 물색했습니다. 세 개가 필요한데, 이왕이면 세 남매처럼 같은 화분으로. 그러다 딱 발견했습니다. 식구들 도시락을 싸던 다용도 통. 아내가 이제는 잘 쓰지 않는다기에 이걸로 찜. 투명해서, 같은 크기여서 <봉선>이 형제들에게 딱 어울리지 뭡니까. 먼저 전동 드릴을 가장 힘이 세게 충전을 했네요. 그리고 투명 통 바닥에 가로 4개, 세로 5개씩 총 20개의 물구멍을 뚫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로로 팟을 뒤집어 세 개의 지피 펠렛을 분리했습니다. 가느다란 뿌리들이 말초혈관처럼 서로를 연결하고 있더군요. 그 사이사이 상토를 살살 털어내어 조심조심. 그러고 완성된 투명 통 절반 정도에 상토를 깔았습니다. 아, 그런데 세 개의 화분을 만들다 보니까, 흙이 부족해지더군요. 그래서 그로로 팟에 동봉된 상토에 집에 원래 있던 흙을 섞어서 양을 더 많이 만들었습니다.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었다 싶습니다. 물론 상토 사이사이에 노랗게 푸르스름한 영양제들도 듬뿍 섞어주었지요. 



새 집에 <윤봉선> 세 형제들이 나란히 입주했습니다. 세 형제들의 이름은 저와 열여덟 따님이 지어 주었습니다. <윤봉선> 동생 <윤선화>는 따님이, <윤선화> 동생 <윤화롱>은 제가. 선화는 봉선화에서 따온 듯합니다. 막내 호롱이는 꽃바구니란 뜻입니다. 집을 비우는 3주 동안 나를 대신해서 아내가 물만 잘 주면 되지 싶습니다. 임파첸스 삼형제를 통해 우리 둘도 이어져 있지 싶습니다. 


봉선, 선화, 화롱이를 옮기고 다시 심고 충분히 물을 주는 동안, 우리 집 타닥이가 이리저리 따라다닙니다. 청소기 작동 소리 같은 거에 예민한 타닥이가 손바닥이 뜨거워질 정도로 한참 돌아가다 서다를 반복한 전동 드릴에도 무심한 듯 가만히 지켜만 봅니다. 이미 한 달 훨씬 전부터 <윤봉선>에게 창가 자리를 내어 준 것처럼 삼 형제의 탄생을 응원하듯 말입니다. 


<윤봉선> 삼형제 덕에 깨닫는 게 하나 있습니다. 매일매일 아침이요. 반드시, 어김없이 오는 아침이라고 생각했던 그 무덤덤함이 정말 매일 조금씩 조금씩 다른 변화와 기대의 아침이 되고 있다는 거예요. 뭐, 그리 거창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 시간과 공간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그리 되어 간다는 말이지요. 가만 내버려 둬도 그냥 바쁜, 아니 바쁜 것 같은 일상에 속도를, 템포를, 텐션을 자율 조정하게 만들어 주는 아주 작지만 엄청 위대한 존재가 되어 버린 거네요.


한참 전 그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반려동물, 반려식물과 함께 사는 선택을 한 반려인들은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한 이들이지 싶습니다. 함께 뛰는 자그마한 심장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매일 성장하면서 피었다 졌다 다시 피었다를 반복하는 수많은 초록 심장들. 그 심장들의 박동 소리들을 항상 듣고 출근하고 퇴근해서 듣는 거지요. 그러면서 반려인이 오히려 반려동물과 식물들에게 위로받는 거지요. 


어느 대사가 기억납니다. 개랑 잠을 자면 아침에 벼룩이랑 같이 일어난다. 내가 잠을 잔 듯 한데 어느날 보니까 온 몸에 벼룩이 가득하더라. 네. 반련인이 되겠다는 건 저녁에, 아침에 뜨거운 심장과 수많은 초록 심장들의 에너지와 순수한 열정, 차분힌 기운, 뿌린만큼 거둔다는 인생사 아주 단순한 진리를 매일 매일 깨닫겠다고 선택한 겁니다.


이제, 아주 마음 편안하게 일 보러 다녀와도 되겠습니다. 깨끗하고 널찍한 자기만의 집에서 화알짝 꽃이 피어날 일만 남았네요. 내가 없는 동안에 <봉선>, <선화>, <화롱>이는 타닥이랑 엄마랑 잘 지내라. 햇빛 많이 받고 물 자주 먹고. 너무 뜨거워도, 너무 갑갑해도, 너무 목말라도 엄마한테 잘 알려줘. 그렇게 타닥이랑 심장 대 심장으로 잘 지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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