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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8. 2023

달리기처럼 쓰기

[다시쓰는 월요일] 1






저에게 달리기는 생각만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재를 떠올렸다고 단어를 연결해 문장으로 바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간혹 달리기처럼 몸이 빨리 뜨거워지듯 훅하고 뭔가가 써지는 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매번 달리다 마는 것과 같아지더군요. 지금도 어떤 음절로 시작해야 할지 벌써 1시간 가까이 커서만 앞뒤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다 문득 기분 좋게 되돌아볼 수 있는 ‘지금’을 만들자, 는 평범한 제안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아, 그러네요. 직업적으로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을 10대들에게 자주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대답해 줬더군요. 지금이야, 지금. 지금 해야 할 것부터 해결하면 돼.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게 지금이야, 지금.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뭐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안의 내가 대답합니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멈추는 것이라고. 맞아요. 살아내다 행복해서, 힘들어서 요동치는 터질 듯 한 심장을 단박에 멈추는 건 위험합니다. 자기만의 결승선이었더라도. 달려온 힘으로 가슴이 밀어내 끊어진 테이프를 지나쳐서 한참을 걷듯이 뛰어야 합니다. 벌컥거리는 심장이 안정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겁니다. 


기다리게 해 놓고 눈도 맞추지 않고 휴대폰에 고개를 파묻어도 또 기다려줍니다. 내가 원하는 걸 단박에 말하는 대신, 그 대신 오늘의 안부를, 지금의 안전을 물어보고 대답하는 게 더 소중하다고 지금, 나부터 실천합니다. 자꾸 나는 하지 않고 요구만 하는 거, 그게 결승테이프 앞에서 단박에 멈추는 습관을 자꾸 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결승선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우리가 만들어 준,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 테이프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믿고 있고,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연습. 그게 동네 러너가 혹여나 국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연습의 시작일 겁니다. 진심으로 지지하는 연습이 지금, 필요한 겁니다.      


야구, 배구, 축구, 사이클, 헬스, 스쿼시, 수영, 배드민턴, 테니스. 10대 이후 지금까지 해 본 운동입니다. 2018년 여름. 걷기보다 달릴 때가 더 즐겁다, 는 생각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들었습니다. 그때 나만의 결승선을 통과해 한참을 더 터덜거리면서 걷듯 달렸습니다. 그렇게 처음 달리기를 만난 동네 러너가 사흘 만에, 1시간 만에 10km를 가득 채워 달렸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입이 아닌 코로만 숨을 쉬면서. 숨넘어갈 듯 인상을 쓰면서 억지로가 아니라. 내가 이런 재능이 있었나 싶은 착각에 들 정도로. 허벅지에 길게 새겨진 흉터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던 어린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그날에. 그때의 '지금'에. 나에게 일어났던, 나만 체험했던 기적입니다.  


처음 달리기를 만났을 때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쏜살같이 달려왔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습니다. 지금 따님의 나이 절반 정도가 살짝 넘었을 무렵에서. 골수염. 다리 절단 위기. 재수술. 3개월간의 입원. 단박에 모든 게 멈출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는 젊은 시절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그 트라우마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린 달리기로 서서히 옅어졌던 겁니다. 


동네에서 스스로 정해 놓은 길을 몇 바퀴만 달리는 정도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상처덕에 달리는 것 자체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결론 내리고 살아온 오랜 시간 때문에. 그래서 내가 나에게 해 주는 가장 큰 지지가 달리기입니다. 


비 맞은 듯 흘러내리는 땀에 숨어든 눈물이 얼얼한 뺨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때의 그 뜨거움은 올여름 더위보다 앞으로 더 더워질 여름보다 분명 더 크고 강한 열감이었습니다. 그런 기분입니다. 돈 준다고 밥 준다고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는 그런 기분. 써야만 해서 쓰는 나가 아니라 막 떠오르는 데라 쓰는 자유. 처음에 글을 쓸 때의 이유를 잃지 않은 기쁨. 




-----(한줄요약)

나는 달리면서 읽고, 서서 쓰고, 앉아서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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