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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9. 2023

혼자라는 기적

비바 빅토리아, 빅토리 son

아들, 축하한다. 


나는 기차를 탔었다. 중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늘 자주 기적 소리를 듣던 무궁화호 기차, 아니 열차. 자그마한 나의 시골 동네 전체를 내려다보기 위해 거기 있는 것처럼 기차역은 그렇게 언덕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내가 너보다 한참 어렸던 날 새벽에 처음 그 시골에 올 때도, 다시 그 시골을 떠날 때도 나를 데려다줬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골집에서 열차로 2시간 조금 넘게 떨어져 있는 바닷가 도시. 지금은 바다보다 커피로 더 유명해진 도시. 강릉. 우리 여러 번 같이 여행을 갔던 그 도시. 내 나이 열일곱. 만으로 열여섯. 그렇게 나는 나의 엄마, 아버지를 떠났다. 


겉으로는 영광이었고, 기뻤고, 위대한 승리를 위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벗어나는 행복이 훨씬 더 컸었다. 그때는 분명. 35년 전 그날. 어린 나의 마음속에는 생선의 커다란 부레 같은 게 하나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3년은 혼자라는 단어로 시작이 되었다. 


그 시작을 마냥 기뻐한 것은 나였지만 엄마, 아버지의 영광(?)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영광이 두고두고 나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걸 보면. 35년 후 오늘. 나의 10대 3년은 다 채우고 성인이 된 너는 페리를 타는구나. 몇 번을 탔을 페리지만 조금 뒤에 타게 될 페리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나를 태워 고향 갔던 곳에서 벗어나게 해 준 기차는 앞뒤로 서로 붙어 밀고 당겨줘서 열차다. 이모와 함께 지내던 밴쿠버를 떠나 빅토리아로 데려다줄 거대한 페리는 호수 같은 바다 위에서 홀로 그렇게 흘러 들어가겠지. 여권 찾으러 우리 둘이 다시 페리를 또 타던 날의 느낌처럼.  


스무 살.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새하얀 백지인 나이인 것 같다. 네가 있는 곳에서도, 지금 너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보다는 훨씬 더 어른 대접(?)을 하는 문화여서 다행이긴 하지만. 한국의 특수부대를 가겠다면서도 파모벌 - 파리, 모기, 벌 - 에 소스라치며 여전히 줄행랑을 놓는 너. 


어린 너와 지금의 네가 내 몸과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거겠지. 열일곱의 나처럼. 살다 보니 '혼자'가 되는 공간, 순간을 만드는 건 매우 요긴하더라. 여럿이 같이 있어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순간들이 많은 것처럼. 그 혼자라는 순간에서 진짜 자기와 만나게 되니까. 


하지만 백지인 나이라는 건 흔들리기도 쉬운 때라는 걸 의미하기도 하니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픔을 이겨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편하게 말하지만 그게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도 모르니까. 


친구들, 가족, 지인들에 둘러싸여 박수받고 기도받을 때는 몰랐던, 인식하지 못했던 진짜의 자신. 그 자신이 너에게 말을 걸고, 몸을 움직이게 하고, 거대하고 위대하게 별거 아닌 것들에 도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란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너에게 주어질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찬란할 수밖에.


아르만도를 만나려고 급하게 다시 들어가던 페리 안에서 눈 맞추며 한 시간 넘게 나눴던 이야기들. 마지막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나의 손을 꽉 쥐어주면서 다짐하던 너의 눈빛이 이 아버지를 참 따뜻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는 걸 이제 와서 고백한다. 부쩍 자란 아들이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열차와 페리의 공통점이 뭔지 아니? 그건 늘 기적을 달고 다닌다는 거야. 발음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 같네. 페리위에서 갑자기 바~앙 거려 사진찍던 우리가 다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 소리. 그걸 우리는 기적이라고 불러. 


horn이지. 혼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 늘 알려주기 위해 있는 거잖니. 혼이 내지르는 기적은 벌써 알고 있는 거지. 그 기적을 만들어 내는 걸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거야. 혼자만든 기적을. 혼자라는 기적을.


그래서 더더욱 축하한다, 아들. 혼자의 시간이 되는 걸. 우리 동네, 이 새벽에 한번도 타보지 못한 페리에 올라탄 듯 마음이 흔들거려 잠들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언제나 그 시간을 너의 찬란할 인생에 더없이 의미 가득한 구름, 햇살, 바람,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테다. 


좋은 연속 동작이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되어 인생이 될 수 있게. 몸 만들고, 마음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살아 갈 시간속에서 혼자라는 기적을 끝없이 추구하고, 갈망할거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우리는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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