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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30. 2023

물건의 증거들

[세상의 모든 물건]_1





첫 번째로 이야기를 시작할 물건은 사실 물건이 아니다. 그 물건들의 증거. 바로 영수증이다.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각자의 사회적 지력, 재력, 체력 등이 조금씩은 다 다르지만. 그 하루, 일주일의 패턴은 엇비슷하다.


쓰기 위해 벌고, 먹기 위해 벌고, 사기 위해 벌고, 살기 위해 벌고. 그러는 사이 하나둘씩 물건들을 구입해야 한다. 이건 꼭 사야 해라고 벼르면서 밤새 줄을 서기도 한다. 몇 시간 줄을 서지는 않더라도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는 아예 관심이 없지만 꼭 사야 하기도 하고.


오래 전 한참 유행을 탔던 미니멀 라이프. 넓디넓은 거실에 소파도, 책장도, TV도 용서하지 않는 몇몇 인플루언서들의 삶에 나를 둘러싼 온갖 잡동사니들을 괜히 타박한 적도 있다. 잠깐 정리하는 시늉을 하면서 몇 번에 걸쳐 버리기도 했다. 무슨 요일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기를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잠시 뿐.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미니 한 삶은 멀게만 느껴지는 거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니 멀 인가. 마치 반복되는 다이어트 같지 않을까. 물건은 죄가 없다, 그 물건들을 과도하게 사랑하는 욕심덩어리는 내가 문제일 뿐.


지구에서는 24시간, 365일 지지직, 지지직, 지지직 하는 간단명료하게 경쾌(?)한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포스POS가 느껴진다. 그렇게 끊임없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약 올리듯 내뱉는 영수증이 미워서일까, 아니면 그렇게 또 무엇인가를 사들이는 내가 미워서일까, 영수증은 됐어요 하면서 외면하려 한다.


아드님이 사는 동네에 잠깐 있을 때도 매일 끊임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돌아다녔다. 표면적으로는 아드님 이사 준비를 하는 것이었지만. 마치 사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 위해, 사려고, 사야만 해서 움직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도착한 지 첫날, 둘째 날 물건을 다 구입한 후 계산대에서 캐셔가 물었다. 레십? 하고. 영수증receipt이다. 우리처럼 영수증 들일까요. 그런데 못 알아 들었다. 한 며칠 지나면서부터는 오케이를 하면서 받아 챙겼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레시피recipe로 들렸다.


아무도 묻지도 시키지도 않았지만,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찾아봤다. receipt의 어원을. 라틴어 recipere에서 유래했다. 돈이나 물품에 대한 서면 통보를 받아 receive. 이게 영수증의 의미란다. 맞다. 지불해야 할 돈에 대해 분명히 통보했다, 알았지? 하는 게 영수증이었던 거다.


자꾸 물건만 가져가고 영수증을 외면하고 싶어 졌던 이유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원하는 물건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의 그 희열(?)을 다시 그대로 잡아챌 수 있는 반복되는 동작. 그 동작을 멈출 수 있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그 희열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아내는 수밖에. 우리가 지구에 온 방식이 비슷한 듯 조금씩 다 다른 것처럼, 그 대체재 역시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 인생을 둘러싼 나만의 영수증은 얼마나 될까.



나를 감싸 줬던 나의 배넷저고리는 내가 사지는 못했지만 나하만을 위한 영수증은 도대체 몇 장이나 될까. 아니, 지구를 몇십 바퀴가 휘감을 수 있을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할것처럼 오늘도 나는 출근을 한다. 사기 위해, 먹기 위해, 그리고 다시 잊고 사기 위해. 그게 어찌 보면 열심히 잘 살아내는 증거들일지도 모르겠다.



-----(한줄요약)

열심히 수집하는 물건의 증거들이 어쩌면 내 인생의 영수증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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