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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25. 2023

찬물 더운물 가릴 때다

Day 7 in Vancouver

볼 일과 볼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둘 다 잘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볼 일. 내가 여기 3주 일정으로 온 이유이다. 아드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는 데 이사를 돕기 위해. 뭐, 스물 하나라 혼자서도 잘해요 했지만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으니까. 한국에 남아 있는 아내가 내가 가봐야 할 것 같아라고 했을 때 눈 한번 깜빡하고는 오 그래주면 나야 좋지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이니까.


급하게 결정된 일정이라 비정상(?)적인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 3년 전 코로나 시국 때 아드님과 함께 올 때는 둘의 티켓값이 이번에 올 때 한 사람 티켓값보다 저렴했다 - 한 달 급여에 가까운 비용으로 숙소를 렌트하면서 까지 아드님 곁에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 옮기는 보금자리에 이삿짐은 물론 눈으로 보고 가야 보이스톡만 해도 편안한 상상이 될 수 있으니까. 1만 킬로 가까이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심리적인 거리감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여기온 이유는 이 정도면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몸이 시차 적응을 하느라 힘들어한다. 일단, LA 톰 브래들리 공항에서 환승하면서부터 예견이 되었다. 밤 9시 3분. 셋-셋 여섯자리의 자그마한 비행기는 출발 예정보다 15여분 늦게 탑승구를 벗어났다. 어린 형제를 데리고 탄 부부가 늦게 탑승하는 걸 보고는 이내 잠이 들었었나 보다. 그런데 몸이 흔들거리면서 웅 하는 엔진음과 함께 바퀴가 거칠게 퉁퉁 굴러다는 걸 발바닥으로 팔꿈치로 느끼는가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활주로를 향해 뒤로 앞으로 뒤로 앞으로 비행기는 움직이는 가 싶었다. 비몽사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내가 파바박 밝아졌다. 옆자리 청년옆에 숨어 있듯 앉았던 따님 눈이 그 청년 어깨뒤로 빼꼼거리면서 그런다. 아빠, 이 비행기 결항된다는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결항은 아니었지만, 늦게 탄 마지막 가족 중 한 명의 여권에 문제가 생겨 달리다가 다시 탑승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맨 뒤쪽 화장실 옆 승무원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녀 승무원한테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웃음면서 그래줬다. 걱정 말라고, 오늘 중으로 가긴 갈 거라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1시간 40분이나 늦게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자정이었다. 짐을 찾고 나오니 0시 30분이 넘었다. 밴쿠버에서만 로밍을 했었는데 LA에서 급하게 해외로밍을 추가해서 알려 준 덕에 다행히 마중 나오기로 한 조카네는 아드님과 함께 30여분 뒤에 도착한다는 톡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게 조카네 집에 도착한 게 1시 반. 아드님이 환영 만찬으로 준비했다는 피자를 늦은 새벽에 세 판 다 먹어 치우고,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잠이 들었다. 

 

새벽 3시가 넘어 잠든 둘째 날, 수요일은 오후 1시에 일어났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낮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는 데 몸이 참 가벼웠다. 아, 아직은 시차 적응도 열여덟 따님처럼 하루 반나절이면 되는군 했다. 그런데 목요일 밤 10시 반에 누워 5분 만에 잠들었는데. 그런데 02시 11분에 깼다. 그리고는 08시 무렵 아침을 먹을 때까지 한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다 식곤증처럼 잠들어 오후 2시가 조금 안되어서 일어났다. 마치 숙제를 미루듯 자꾸 잠이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금요일. 밤 11시가 조금 안 되는 것보고 누웠다. 그리고 역시 이내 잠들었다. 푹 잤다, 싶었는데 워치를 들여다보니 잉? 01시 10분이었다. 마침 떠오른 글감들이 몇 개 있어 침대에 그대로 엎드린 채 브런치에 정리를 간단하게 했다. 그리고 03시 반이 되는 걸 보고 다시 누워봐야지 했다. 


언제 잠들었나 싶었다. 눈이 번쩍 뜨였는데, 남매와 아침 먹기로 약속한 시간이 가까운 08시 48분. 순두부찌개를 얼큰하게 끓여서 9시가 조금 넘어 셋이 다 먹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낮에 만 오천보가 넘게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이제 제법 피곤해져서 잘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듯한 물에 샤워도 했다. 그리고 차 한잔까지 마셨다. 그렇게 자리에 누운 시각이 밤 10시 40분쯤. 가장 먼저 챙긴 수면테이프를 붙이고 누웠다. 오래간만에 정말 푹잤다, 싶었는데 역시. 일요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눈이 번쩍. 일요일 새벽에는 옆에 누워 자던 따님도 잠을 설치는 듯했다. 그 인기척이 들렸지만 일부러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벌써 5일째인데 이제는 낮밤이 내 몸속에서 제자리로 돌아와야지 싶었다.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한 덕분일까. 밴쿠버에 온 지 5일 만인 어제 일요일 아침. 6시 10분에 일어났다. 한국에서보다는 한두 시간 늦었지만, 새벽 맛이 나는 비슷한 시각에 일어 난 게 무려 5일 만이라 그것만으로도 상쾌했다. 뭐 위도가 49도가 넘는 고위도의 여름이라 그 시각이 한낮처럼 밝았지만. 베이지색 버티컬 덕에 한국에서의 새벽 느낌은 어느 정도 전해졌다. 그런데 그렇게 5일을 시차 적응에 나름 고군분투하는 사이 아드님, 따님과 관련된 볼 일은 하나씩 진행되고, 일정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내고는 있다. 나의 볼일은 그 선순환이 깨져 버렸다. 속 시원하게 진행되지 않는 날이 5일이나 되었던 거다.


5년 전부터 이어지는 아침 루틴이 있다. 나의 장운동을 원활하게 하고 하루 컨디션을 신선하게 시작할 수 있는 초간단 루틴. 건강검진에서 동갑내기 의사께서 지금까지 수없이 한 위내시경 대상자 중에 이 나이에 이렇게 깨끗한 위는 보지 못했다고 까지 말할 정도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던 루틴. 바로, 빈속에 따듯한 물을 몇 잔 마시는 거다. 특히, 작년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읽는 내내 찻잔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다. 그냥 끓인 맹물이다. 한여름 새벽에도 그렇게 마신다. 그러면 콧잔등에 인중에 귀밑으로 뜨거운 열기가 후욱 올라오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난주 화요일 이후 어제까지. 이 루틴을 챙기지 못했다. 여기도 여름이라 한낮은 따갑다. 그 아래에서 이런저런 볼 일을 보러 다니느라 낯선 도로 위로 골목으로 주소를 찾아 옮겨 다니는 와중에 계속 남매덕에 시원한 것들을 찾게 된다. 나눠 마시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내 배속은 냉기가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 5일 동안 단 두 끼만 밖에서 사 먹었다. 아무래도 사 먹게 되는 음식이란 게 뱃속 냉기를 몰아낼 뜨끈함이 있는 음식들은 아니다. 십 대, 이십 대가 좋아하는 위주로 먹게 된다. 한인 식당은 일부러 찾지 않는다. 3주짜리 우리 집에서 계속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그리고 아드님을 위해(?) 음주를 하지 않고 있다. 뭐, 술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즐기기는 한다. 한두 잔씩. 작년 여름, 아드님이 처음 성인이 되고 귀국한 방학. 여기서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지만 첫 술은 나와 꼭 마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개월 동안 맥주를 입에 데지도 않았다는 조카의 공증(!) 덕에 매일 같이 한두 잔씩 아드님이랑 마셨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다. 술이 좋은데, 좋지 않다. 감정을 풀어내는 법을 알지 못한 채 술을 먼저 마시게 되면 술기운을 빌려 표현하는 습이 될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는 거다.


5일 동안 웰컴 드링킹 한잔을 빼고는 앞으로도 귀국할 때까지 마시지 않을 작정이다. 다음 달 말부터 낯선 곳에서 혼자의 생활을 시작하게 될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뭐, 이런다고 꼭 그리되지는 않겠지만. 스무 살 넘은 성인이 스스로 선택해야 할 몫이지만. 적어도 술에 밀려나는 모습은 미리 보여줄 필요는 없지 싶었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해결해야 할 볼 일 사이사이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나의 볼일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다. 


그렇게 캐리어와 머리와 마음 그리고 몸까지 모두 다 가벼워진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엊그제 우리 집 옆으로 아예 이사를 온 40년 지기 친구를 위해 아이스 와인을 사가지고. 그런데 친구야, 우리도 이제부터는 찬물과 더운물을 가릴 때가 되는 것 같다. 찬 술은 조금 더 줄여 마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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