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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24. 2023

다양성의 사회

Day 6 in Vancouver

어제 여기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직 시차 적응이 완전하게 끝맺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자꾸 잠을 깨네요. 도착한 다음날은 낮 1시에 일어났습니다. 그제는 새벽 2시 반에 깨서 아침 먹고 다시 잠들었네요. 어제는 새벽 1시부터 3시 반까지 말똥 말똥. 어제도 새벽 2시 18분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일부러 이불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좀 전에 6시 10분에 일어났습니다. 몸이 개운하네요. 새벽에 잠깐 눈이 떠졌을 때 스치듯 번쩍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제 남매들과 숙소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서. 3년 전에 조카네 덕에 가봤던 해변가를 어제는 우리 셋이서. 참 한가로웠습니다. 널찍한 해변에 듬성듬성 있는 이들은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흙장난하는 아이들 옆에서 책도 읽고.


해변가 나란히 있는 둑 아래 도로옆 주차장. 우리네 바닷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노상 주차장. 그런데 주차 요원(?)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 주말에는 공짜인가 했더니 아드님이 아니라네요. 셀프로 미리 주차요금을 계산해서 자기 차 앞유리에 꽂아 놓는 시스템이라고 알려줍니다. 아드님에게 카드를 건네니 아버지, 우리 얼마나 있을 거예요, 묻습니다. 자그마한 액정에서 너 여기 얼마나 머무를 거니, 하고 묻는다면서. 아, 셀프 계산기였습니다. 양심껏 얼마나 머물겠다 하는 거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3시간에 1만 2천 원을 자진 신고했습니다. 그런 후 카드 단말기처럼 나오는 영수증을 차 앞 유리에 꽂아 두고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우리 셋 중 텐션이 가장 좋은 열여덟 따님은 물속에 첨벙첨벙. 사진을 이렇게 찍어라, 저렇게 찍어라 난리 부르스를 치더니 차에서 입 벌리고 레드 썬. 옆에서 동생 가방까지 들고 따라다녀 준 아드님도 덩달아 레드 썬. 그렇게 저녁 8시가 조금 안되어서 아드님이 알려준 쇼핑몰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가끔 가던 스타**, 딱 그렇게 생긴 대형 몰이더군요. 가장 먼저 푸드 코트로 달려가 한참 이런저런 메뉴를 구경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셋의 성향이 확 차이가 납니다. 아드님은 안정파. 먹어 보지 못한 신메뉴를 도전하지 않습니다. 안전하게 안정을 추구합니다. 저는 도전파.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따님은 눈치파. 대세를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정해진 각자의 메뉴를 하나씩 앞에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A&W 버거 두 개, 중국식 돼지강정 볶음밥이 40불이 넘네요. 물가가 선진국입니다. 버거는 맛있는데 패티에 따라오는 향이 마음에 안 든다네요.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매는 한 숟가락씩 먹어보더니, 노땡큐라네요. 어찌 되었던 남은 건 아비가 다 클리어. 그리고 몰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운동삼아 하는 아이쇼핑이 목적이었네요. 그렇게 걸으면서 따님은 쉬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찍어 달라 했다가, 셀카를 찍다가. 아마, 먹고 화장실 잠깐 다녀오는 시간 빼고 계속 찍었지 싶습니다. 반면, 아드님은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싫어하는 딱 먹먹한 그런 스타일입니다. 스물 하나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딱 그때의 나라는 건 남매한테는 비밀입니다만.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런웨이를 하던 따님이 앞서 가다 갑자기 멈추고 쇼윈도를 가리킵니다. 손가락으로 자꾸 물건을, 매장을 가리킨다고 나를 그렇게 타박하던 따님옆 아드님도 멈춰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드님의 손가락을 따라서 눈을 옮겼더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네킹이 나란히 서 있더군요. 수영복을 입은 채. 그것도 왼쪽 마네킹은 원피스, 오른쪽 마네킹은 비키니를 입혀 놓은 것이 더 신선합니다. 보통 원피스는 가리는(?) 용도로 입는다고 하는데 말이지요. 


우리도 한참 모델들의 열악한 연습생 환경에, 거식증에, 안타까운 소식에 한참 사회적 논의가 살짝 있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왼쪽 마네킹이 상식인 듯, 진리인 듯하지 싶습니다. 일반인들을 대변하는 모델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는 건 다행이지 싶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사회이니 당연히 다양성은 단순한 현상이니까요. 이곳에서 보면 자신의 신체 조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쾌하고 쾌활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괜히 쳐다만 봐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생기는 건 남의 것이 무조건 더 좋아 보이는 자기 폐쇄적인 생각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지기 싫어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모습이 아니라 태도와 생각이. 


지면상으로 보면 스물셋 어린 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갑론을박 인 모양새입니다. 학부모도 학생도 교사도 그리고 그 누구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해되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하는 넋두리를 하게 됩니다. 아니, 무엇보다 단순히 나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닐 겁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입만 아니라 생각과 태도에서 실천하는 게 필요한 때라는 요구일겁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서로의 신뢰가 기본이 되는 사회일 테니까요. 시쳇말로 (입장이) 다른 게 (가치관이) 틀린 게 아니라는 말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누구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가 되어가고 있던 게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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