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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28. 2023

Whistler & Joffre

Day 11 in Vancouver

처형과 조카는 4년 전 이곳으로 이민을 왔다. 처형은 한의원 실장. 조카는 간호사를 하다가 건너왔다. 크리스천인 처형은 일찍이 조카를 혼자 키우면서 조카를 위해 이민을 꿈꾸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 부부는 내내 처형과 조카가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멍든 가슴이었다. 두 달 전. 조카가 영주권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드님과 함께 셋이서 조촐한 파티를 하는 영상을 톡으로 아내에게 보내왔었다. 나도 아내도 참 행복한 하는 모녀를 보면서 같이 행복했다. 많이. 그래서 이번에 꼭 조카와 함께 멀리 드라이브를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왔다. 


그렇게 원래의 생각은 저스트 드라이브. 하지만 와서 더 찾아보고 처형,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밴쿠버가 속해 있는 BC주만 남한 크기의 7배가 넘었다. 기본이 서너 시간 운전. 허릿병이 큰 부담이었다. 운전하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행정 업무나 볼 일만 처리하고 가는 건 인생에서 큰 실수 중 하나. 그래서 이곳에 와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드님이 다니고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이유다. 드디어 어제. 아드님한테 온 지 9일째 되는 날 조카의 도요타 소형 승용차에 조카와 우리 셋이 타고 출발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휘슬러 Whistler. 숙소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2010년 동계 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밴쿠버 북쪽 산악 지역에 위치한 곳. 그때의 시설이 지금도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4년 동안 가난한 이민자 생활을 하는 조카네에게는 언감생심인 곳. 어제도 처형은 출근이라 마침 사흘 휴가 첫날이었던 어제 조카 하고만 출발. 다양한 액티비티가 많았다. 물놀이 기구, 점핑 기구 등 흔히 볼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건 산악자전거. 산악 바이크. 그리고 운이 좋으면 야생 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오후 5시까지 종일 활용할 수 있는 곤돌라 자유 이용권. 항상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아드님과 조카덕(?)에 처음에는 다들 조금씩 망설였지만 곤돌라를 안 타고 아이 사이팅만 했다면 후회 또 후회했을 거라고 행복해했다. 원래 평화주의자, 초긍정주의자인 조카는 당연하고 업다운걸 따님과 무뚝뚝한 아드님이 그렇게 마음껏 즐거워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적지 않은 비용 1인당 90 CAD(약 9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잠든 남매를 태우고 주차장을 찾고 티켓팅 부스를 찾느라 같은 곳을 서너 번은 돌았다. 이제 영어를 제법 잘하는 조카가 그때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들어간 부스 바로 앞이 곤돌라의 출발점. 우린 바로 오는 빨간색 통 곤돌라를 탔다. 나중에 보니 파란색 곤돌라는 가운데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닥 중 가운데만 전지 두장 정도 크기여서 따님은 실망하고 아드님은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670미터가 조금 넘는 출발점에서 1845m의 정상 Crytal Hut까지는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15분 가까이 올라간다. 중간에 한번 내릴 수 있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 내리니 한여름인데도 서늘했다. 바로 맞은편에는 만년설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여름이라 조금 녹은 모양새로. 패딩에 가까운 겨울옷을 입은 인도 사람부터 추워하는 따님에게 덧입고 온 긴팔을 벗어주고 반팔로 돌아다니는 아드님까지 복장도 다양했다. 계속 거기에서 안내하는 안전요원들은 얇은 패딩 차림이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는 정말로 신세계였다. 코발투 블루의 호수, 곧게 뻗은 침엽수림, 그 사이사이의 깊고 얕은 골짜기들. 그냥 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 경이롭기까지 했다. 연신 쉬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서 퐁퐁 뛰어다니는 스물아홉 조카와 열여덟 따님. 그 옆에서 스물 하나 아드님과 오십 둘 아빠는 마구마구 신나는 행복감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거기서 다시 PEAK2PEAK 곤돌라를 타고 맞은편 산봉우리로 건너갔다. 휘슬러 곤돌라의 백미는 이 P2P 곤돌라다. 2010년 동계올림픽 용으로 만들어진 이 곤돌라는 Whistler Blackcomb에서 골짜기 건너편 Roundhouse Lodge까지 이어진다. 골짜기 때문에 곤돌라 기둥을 세울 수 없어 와이어로만 연결되어 있다. 움직이면서 내려다, 올려다 보이는 쳐진 와이어가 마치 골짜기에 드리워진 얇디얇은 거미줄 같다.  



PEAK2PEAK 마지막 곤돌라가 4시 반. 그리고 Crytal Hut에서 티켓부스 앞으로 내려오는 마지막 곤돌라가 5시라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휘슬러가 마지막이 아니라 Joffre lake로 가기로 했다. 조프리 레이크는 정상까지 여러 개의 빙하호가 있는 레이크스 파크. 정상에 있는 가장 큰 호수까지는 3시간 트레킹을 해야 하는 코스. 우리는 출발할 때부터, 휘슬러에서 싸가지고 간 김밥을 먹으면서부터 가장 아래 Lower lake까지만 가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 여유 있게 마지막 곤돌라를 탔다. 4시 49분. 마감 10분 전. 


사람들 역시 마지막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려고 많이 몰리고 있었다. 우리가 탄 빨간색 곤돌라에 문이 막 닫힐 즈음 빨간색 등산복을 맞춰 입은 캐네디언 형제들이 탔다. 그런데 그분들이 그런다. 와우, 마지막 곤돌라 1분을 남겨놓고 탔다고. 잉? 5시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십여분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유쾌한 두 형제 중 동생은 67살. 그런데 그 나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젊었다. 휘슬러에서 조프리까지는 50분 정도 걸렸다. 



조프리 레이크 주차장. 도착하자마자 따님이 외친다. 오, 노 서비스. 넷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로우어 레이크로 걸어 숲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호수. 와우, 물가에서 속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다. 그러면서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물은 점점 더 코발트색이다. 관광객용 안내표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why so blue?'. 석회암 성분 때문에 그렇단다. 어찌 되었건,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로우 레이크만 찾는 이들은 몇몇 없었다. 많은 이들이 조프리 레이크 전체를 트레킹 하는, 당일 코스로 오는 곳이라는 건 돌아와서 알았다. 노 서비스의 악몽은 예견하지 못했지만.


우리 넷은 그렇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오직 오, 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감탄사의 날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위대한 자연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감탄사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 중 하나이다. 스스로 내뱉는 감탄사는 나의 영혼을 아주 행복하게 한다. 긍정적인 나로 만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넉넉한 마음이 언어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휘슬러와 조프리는 위로였다. 살아내느라 버둥거리는 인간이 차분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리고 그 차분함 속에서 살아내는 인간의 힘 역시 자연만큼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었다. 땅이, 숲이, 하늘이, 바람이, 햇살이. 그건 오감을 통해 마음의 기억 속에 담기는 짙은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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