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ug 06. 2023

스몰 토크, 스몰 커뮤니티

Day 20 in Vancouver

ㅎㅎ 오늘 000에 마사지받으러 갔다 왔어. 그런데 일단 가격이 대박이야. 정말 시원하게 꼼꼼하게 60분이나 해주는데 2만 5천 원.


폰의 붉은 숫자가 그득했다. 그중에서는 단연 아내가 보내 둔 톡에서 아주 행복한 표정이 피어올랐다. 프레이저 강의 볼록한 대교에서 수신호로 뒤 차들을 보내면서 갓길을 물고 힘겹게 올라온 앙트라제를 겨우 집 앞 주차장에 세운 바로 뒤였다. 따님이 엄마한테 오늘의 이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적(?)을 알려야지 했다. 조용히 따님한테 부탁했다.


00야. 오늘의 기적을 우리끼리 가볍게 즐기는 건 어떨까. 엄마한테는 위기로 더 크게 들리지 않을까.


얼마 전에 멈춰 선 앙트라제를 처형이 어제 300불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배터리를 교체했다. 어제 아침 직접 몰고 나에게 와줬다. 그렇게 우리 둘은 토요일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3년간 있었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중에 처형의 눈가가 유난히 자주 촉촉해졌다. 그 속에 그간의 고생과 각오, 믿음이 뒤섞여 빛이 났다.


그 앙트라제가 하룻만에 다시 멈춘거다. 괭이갈매기가 깍꺅거리며 날개짓을 퍼덕거리듯 달려와 멈춰준 또 한번의 럭키한 하루 마무릴 기념으로 Tim Hortons에서 도넛을 하나 사온 따님, 동네 피자집에서 네모 피자를 사 온 아드님과 함께 즈마야가 알바를 하고 있는 Subway에서 토마토가 가득 들어간 30cm짜리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런데 완전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즈마야가 끝끝내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카드를 받지 않았다. 1시간 시급을.  


치료를 받고 온 처형까지 CIRKLE K에 모였다. 각자 음식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스몰 토크가 뭔지 알아? (어? 뭐? 그게 뭐지?) 그건 그냥 깊게 훅 들어오는 대화 말고 안부 정도 물어보는 가벼운 대화야. 여기 사람들은 그걸 정말 많이 해. 그리고 잘해. 그래서 편안하고 좋아.


스몰 토크.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가벼운 대화. 우리 동네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토크다. 그냥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부 정도를 묻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몇 마디만 오고 가다 보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이렇게 선팅이 구분되어 있다. 법적인 이유란다. 앞쪽은 내부가 들여다 보여야 하고, 뒤쪽은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안전과 사생활을 동시에 고려한 조치인 듯하다. 덕분에 운전하는 내내 차 안으로 들이치는 태양이 뜨겁고 눈부셨지만. 다른 운전자들과 눈을 맞추고 수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이 동네에서는 어느 누구도 개인의 상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을 하지 않아 좋단다. 따님이. 그 생활을 먼저 한 처형과 조카, 아드님을 지켜준 힘. 그리고 그 힘을 원천은 바로 스몰 토크로 삶의 의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해준 스몰 커뮤니티였다. 와서 보니, 스몰 커뮤니티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절대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하면서도 끈끈하게 삶의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의 특징에 꼭 필요한 생활 요소 중 하나가 커뮤니티 활동, 즉 적절한 인간관계 유지이다.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하게 운동하는 루틴과 함께.


NO를 잘 못하는 나와 아내는 지금도 여전히 적절한 NO를 연습 중이다. 그 연습의 결과가 이 동네 와서 지내다 보니 처형, 조카, 아드님은 꽤나 실천 중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들 역시 나와 아내처럼 억지로 연습을 하느라 고군분투했었는데.


요즘 아내는 새로운 스몰 커뮤니티에서 즐거워한다. 네 명, 세 명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는 이름까지 있다. 은자매 그리고 은방울. 둘 다 직장에서 출발한 지인들의 커뮤니티. 은자매와 은방울 커뮤니티에서 아내는 삶의 에너지를 마음껏 받아내는 걸 옆에서 느낀다. 보인다. 그래서 더 행복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휴대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