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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6. 2023

오늘도 중꺽허!

어제는 한 달 만에 병원 진료를 두 군데나 봤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병원을 가니 마음이 으찌나 편한지 모르겠네요. 한 곳은 정기 검진을 위한 종합 병원, 다른 한 곳은 허리 통증과 발바닥 통증 때문에 다니던 정형외과. 예약이 되어 있고 출근 전 일찍 다녀온 탓에 한가했습니다. 아, 물론 거대 종합 병원은 복잡했지만, 익숙한 동선에서는 나름 여유로웠다는. 


그렇게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고 늦은 출근을 하는 동안 도로 위도 이른 출근길보다는 한산했습니다. 여전히 차는 많았지만, 익숙한 동선에서는 나름 여유로웠던 건 병원에서처럼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는 괜스레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천히 달려도 내 것들에 문제없이 다 해결되고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심리적인 여유가 말이지요.


오랜만에 전화드린 엄마가 그럽니다. 이모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그래서 아버지랑 함께 버스를 타고 내려가시려고 터미널을 향하는 길이라고. 여든이 다 되신 이모는 6남매 중 셋째입니다. 그 바로 아래 동생이 엄마고. 큰 이모, 작은 이모, 다섯째 남동생은 오래전 돌아가셨지요. 평생 농사일을 하신 셋째 이모는 어릴 때 기억 속에 그냥 무서웠습니다. 논밭일을 하면서 5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싶어지는 건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나 든 생각이니까요.


그 무서웠던 이모도 지금은 어깨가 앞으로 말리고, 허리가 구부정해서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만 합니다. 그런 이모를 뵌 지도 몇 년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이십여분 남은 도착 시간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아프면 운동을 하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은 마음이 아프면 그 마음을 더 깊게,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안절부절못했었거든요.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대화를 할 때도, 잠자리에서도. 그런데 그 마음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옅어 지기는커녕 더 깊고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완료해도 나중에 다시 해야 할 일이 더 생깁니다. 잠을 자도 피로는 더욱 진해집니다. 그러는 사이 표정이 인상이 되고 인상이 내가 되어 버립니다. 언제나 예민한 내가 되어지는 겁니다. 


2018년 8월 여름. 달리기를 시작한 시점 이후부터는 그랬나 봅니다. 그냥 마음이 아프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게. 그냥 무작정 처음이지만 그렇게 달렸던 이유이지요. 그래서 허리병도 발바닥 통증도 그 사이 내성 발톱도 무럭무럭 자랐지만. 그러는 동안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그렇게나마 조금씩 알아가지 싶어 집니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몸이 아프면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물음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하더군요.


2018년 여름 이전 같았으면 허리가 아프니까 이런저런 거 하지 말아야 한다에 초점을 맞추고 생활을 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이번 여름에 아드님을 만나러 장시간 비행을 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제 귀국 후 한 달여 만에 엄마, 아버지와 식사를 했습니다. 일주일간 시차 적응하느라, 일주일간 이모님 댁에 두 분이 내려가셨다 오시느라. 그렇게 2주란 시간이 호로록 면발 삼키듯 지나갔습니다. 


피곤해서 자꾸 눈이 감기면서도 옆에 앉아 있던 열여덟 따님한테는 어른 넷의 어제 대화의 절반이 병, 병원, 치료, 수치, 건강, 운동 뭐 이렇게 들렸겠다 싶습니다. 부모님 앞이라 더 유난히 허리에 신경을 쓰면서 있는 나를 발견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른 넷의 표정과 마음은 이전보다 한결 가볍고 밝았습니다. 비 온 뒤 뭉개 뭉개 피어오른 구름처럼. 넷이 훨씬 더 어른스러워진 듯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고 지고 살지 말고, 유병장수하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다짐과 격려의 에너지들이. 


그러다 문득 새하얀 연기처럼 피어 오른 생각.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꺽마가 아니었습니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그 마음, 좀 꺾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자기 마음에 좌절하고 꺾이지 않으려 하다 보면 부러지기 일쑤였는데요, 뭘. 술 취한 이가 하나도 안 취했다고 행패 부리는 것 같았을지도.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허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리가 펴지면 어깨가 펴지고 가슴이 펴지고 당당해지고 마음이 펴지는 아름다운 연속 동작이 일어납니다.


허리 통증 덕분에 흠뻑 땀 흘려야 운동이라고 했던 과욕을 버린 겁니다. 대신 잔잔하게 티 나지 않는 코어 스트레칭을 시작했지만 자잘하게 짧은 코어 스트레칭 덕분에 마음 코어에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근육이 더 잘 붙어 있는 것 같아서 드는 생각입니다. 운동복 갈아입고, 이마에 밴드 하고, 워치하고 뭐 그렇게 티 나게 운동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움직심 속에서 마디마디 코어 스트레칭을 몇 분씩 하는 습관. 그게 바로 아름다운 연속 동작을 내 습관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어제,  엄마 아버지 덕에 다시 한번 크게 깨닫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는 절제와 시선이면 충분합니다. 가끔 나누는 말속에서 마음이 그렇게 단단하게 연결되는 걸 느낍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보다 몸이 먼저라는 것을. 마음 좀 꺾이면 어때,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을. 파란 하늘아래 뭉개 구름을 보면서 그렇게 나를 참 용서하기 딱 좋은 날씨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 흔들리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건 꺾이지 않은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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