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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03. 2023

적합한 용기인지 확인하기 바....

[일요일같은 인생]_(1)우리집문제(오쿠다 히데오)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설득의 3요소다. 이중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건 분명 에토스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거.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사람의 인품, 인격을 믿기 때문에. 전작(?)이 있기 때문에. 

  

하루끼가 며칠 전 6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냥 믿음이 가고, 읽고 싶어지는 이유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하루끼보다 더 끌리는 소설가가 있다. 바로 오쿠다 히데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딱 이런 느낌이다. 나에게는. 그래서 기분이 가라앉으면 히데오의 소설책을 펼친다. 몇 페이지만 읽어도 멜라토닌 효과가 충분히 난다.  


내 삶이 투명하게 얇은 셀로판지처럼 반짝여 보인다. 몇 페이지 안되는 그 내용속에서 나, 나의 어제와 오늘, 나의 삶과 비슷하게 밋밋한 삶 속에서 옥빛 영롱하게 행복해지는 요소를 찾아내 준다. 그리고 그 속에 감사와 사랑이 들어찬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행복하라고, 긍정적으로 살아내라고, 넌 괜찮다고. 물론 분명 개인적인 취향이다.


지난 주말. 한 달여 전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40년 지기 고향 친구. 새 집에 들어가면서 쓰던 가전제품들을 죄다 우리 집에 투척했다. 아내가 다 우리 집에 가져다 버리라고. 그렇게 우리 부부가 결혼하면서 같이 온 에어컨을, 반려견 타닥이 보다 더 나이 먹은 전자레인지를 신형(!) 투룸 에어컨과 오븐 겸용 전자레인지로 교체했다. 


그리고도 하나 더. 인덕션이 남았다. 그래서 그 인덕션은 얼마 전 폐암 수술을 하시고 통원치료 중이신 어머님댁에 가져다 드렸다. 평생 담배 한 모금 피우지 않으셨지만, 오랜 식당일에 가사에 쓰였던 가스가 한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진단받으면서나 하게 된 거다.   


그렇게 사용법을 알려드리는 데, 자꾸 인덕션이 소리치다. 적합한 용기인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껐다 켜면서 이렇게, 여기를, 하나 둘 셋 하는데 또 소리친다. 적합한 용기인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이렇다. 인덕션만 들고 가고 적합한 용기는 못 챙겨간 거다. 그러면서 불쑥 히데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가 떠 올랐다. 인덕션에 필요한 용기야 돈을 주고 사면 되지만, 깜박한 용기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챙겨야 할 용기가 어디 그 용기뿐인가 하고.  




고 3인 에리는 어느 날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 외할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에리를 자신의 딸인지 알고 남편과 이야기해 봤느냐 에리의 남동생 슈헤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3년만 참아라 그다음은 너희 부부가 마음대로 해도 반대 안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근거로 에리가 부모가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단정 짓는다. 주변친구들 선생님으로부터 이혼준비 징후들 대처법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느라 마음고생을 한다. 그러나  정작 남동생과 부모님에게는 확인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러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이미 자신보다 먼저 부모의 이혼에 대한 낌새를 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는 건, 자기가 졸업할 때까지의 3년이 인생낭비라며 자기는 어떻게 되든 이겨낼 수 있다는 고1  남동생의 이야기에 용기를 낸다. 엄마에게 이혼할 거냐고 물어볼 용기를. 그리고 학교에서 지금껏 조언을 구하고 수다를 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용기를 갖고 엄마한테 물어서  확인해 보겠다고. 그러자 도서관에 있던 친구들이 금방 달려온단다. 안아주러. 에리의 친구들은 용기를 낼 필요가 있으면 서로 허그해 준다. ~~  10대는 어른들, 특히 부모들의 생각보다 훨씬 신중하다. 그리고 친구가 전부이다.




가끔은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에리를 만나게 된다. 어린 나였으면 그 정도는 고사하고 학교 자체를 다니지 못할 텐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텐데 하는 기특한 에리를. 그런데 그 에리를 들여다보다 보면 문득 내가 보일 때가 있다. 섬뜩해진다. 그러면서 속으로 옹알거린다. 그냥 그때, 한 번만 정확하게 물어볼 걸, 확인해 볼 걸 하면서 멈칫했던 내가 거기에 수도 없이 많았다는 사실이. 


지지난 주 발견(?)한 동네 골목 안 전기 통닭구이집. 어제저녁에 텍사스 바베큐 세트 하나를 테이크 아웃해서 따님과 함께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걸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나를 옆에서 따님이 사진을 찍는다. 뭐, 항상 그러니 그려려니 했다. 건너오는데 뜬금없이 고백한다. 아빠 나는 폰 안에 있는 내 사진이 마구 지워. 그런데 엄마, 아빠 사진은 하나도 안 지워. 왜. 혹시 못 보게 될 때 사진이라도 많이 남아 있으면 해서. 


어릴 적부터 한 교육(!)의 힘이다. 아내한테 혼이 나면서도 가끔 그랬다. 우리가 가끔 그러는 것처럼. 지금이 우리가 함께 나눌 마지막 시간이다, 생각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더 갖고 살자고. 그래서 집을 나가고 들어오고 할 때 꼭 문 앞에 나와서 눈 맞추면서 인사하자고. 우리 남매는 지금도 그 약속은 참 잘 지켜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 약속은 내가, 아내가 지키니까 가능한 거였다.


내가 따님만할 때만 해도 갑자기, 사고, 죽음 뭐 이런 이야기는 금지어였다. 아니. 누가 금지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쓰면 안 되는 그런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해야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해진 거다. 물론 따님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분명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더 손을 꼭 잡으면서 다짐하는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된다. 그 손으로 오늘 친구랑 둘이 야구장에서도 마음껏 하늘을 향해 소리쳐라. 네 인생이다.



----------(한 줄 요약)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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