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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04. 2023

선물받은 또 하루

[다시쓰는 월요일]_2




[원래 글] ... 2017년 9월 5일 화요일

피곤하지만 씩씩하게 출근하는 아내를 차로 배웅하고 한의원을 찾았다. 근 몇달만에 다시 간 그곳은  여전히 이러저런 증세로 침을 맞으러 온 사람들이 열댓명이 이미 와 있었다.  4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tv도 가지고 간 책에도 집중하지 못한 건 내가 앉아 기다리는 자리와 마주보고 나란히 앉은 중년 아주머니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한의원에서 조우한 모양이다. 얼굴이 까매졌다며 걱정담긴 인사를 건네받은, 나중에 온 아주머니는 식구들을 알아 보지 못하는 친정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단다. 5인실에 2명의 요양사가 있고 환자 1인당 월 118만원의 간병비를 내고 있단다. 그런데 간경변으로 복수가 차 오늘 응급실에 다시 입원 하셨단다. 곡기를 끊고 매일 7만원짜리 영양제로 연명중이시란다.


그러자 먼저 와 순서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소곤거리며 진지한 조언을 한다. ‘희망이 없는데 돈을 자꾸 쓰고 남은 사람이 쪽박을 차는 짓이니 연명을 중단하는게 어떻겠냐고’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듣고만 있던 아주머니. 긴 병끝에 효자 없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DJ의 나래이션. ‘선물받은 또 하루의 시작’. 동료들과 학생들의 안부문자가 휴대폰에 드나들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의정부와 인천 부모님들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주고 있는 오늘. 글쟁이 마광수는 오늘 자살로 자기생을 평생 쉬기로 선택했다. 오늘, 하루하루는 내 인생의 선물이다. ‘몸은 마음을 따라다닌다’는 말을 실천하지 못해 쉼을 선택한 오늘. 2017년 9윌 5일. 다시 못오는 시간을 올곧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의 시작점으로 하자는 다짐을 한다.




[지금 다시 쓴 글]

피곤하지만 씩씩하게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한 뒤 근 몇달만에 다시 한의원을 찾았다. 소파 여기저기에 열댓명이 이미 앉아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릴때까지 40여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펼쳐 든 책속의 글자보다 앞자리의 내또래 중년 여성들의 대화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에.   


서로 아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한의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양이었다. 먼저 온 이가 나중에 온 이를 보고 얼굴이 까매졌다며 걱정 섞인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받은 이는 식구들을 알아 보지 못하는 친정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셔 놓고 있다고 대답한다. 말에서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5인실에 2명의 요양사가 있고 환자 1인당 월 118만원의 간병비를 낸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간경변으로 복수가 차 오늘 다시 응급실에 입원을 하셨단다. 식사를 전혀 못해 7만원짜리 영양제로 연명중이시란다. 이 말을 듣고 있는 먼저 온 이의 재빠르게 나와 옆 사람들을 흘겨 보듯 돌아봤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진지한 조언을 한다. 짐짓 들릴까 목소리를 낯췄지만 더 짙게 들린다. 


‘희망이 없는데 돈을 자꾸 쓰고 남은 사람이 쪽박을 차는 짓이니 연명을 중단하는게 어떻겠냐고’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듣고만 있던 얼굴이 까만 이. 내 이름이 불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의사 앞으로 가 앉았다. 증상을 물어보는 사이 사이에 그 이가 대답을 했는지, 했다면 뭐라고 했는지 슬쩍 궁금해졌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흘러 나오던  라디오 DJ의 멘트. ‘선물받은 또 하루의 시작’. 그 멘트 앞 뒤로 동료들과 학생들의 사연 섞인 문자가 휴대폰에 들어 온다. 아내와 남매 그리고 양가 부모님 모두 자기 자리를 잘 지켜주고 있는 게 가장 큰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한때 요란했던 글쟁이 마광수는 자살을 했다. 나의 10대와 20대를 이어 준 그의 소설들. 외설과 예술 사이에 이어진 외줄에 나도 한참 올라 타 있게 한 그. 자궁속으로 다시 숨어 들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실천해버렸나. 그 사람이 포기한 오늘. 2017년 9월 5일이 누군가에게는 새 삶을 얻은 또 하나의 선물같은 날일거다. 다시 못올 오늘, 이 시간을 올곧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의 시작점으로 하자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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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주말. 업무용 파일을 정리하다 [읽고 쓰기] 폴더가 지워졌다. 이곳에 글을 쓰기 전 한글 파일 형태로 감정, 생각, 일상에 대한 기록들. 7기가가 넘는 양의 폴더였다. 내 속의 모든 혈관과 신경이 한순간에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곳 저곳을 뒤적이며 백업본을 찾아 헤매였다. 하지만 일이 될려면 항상 그렇 듯. 2021년 9월 이전의 기록은 사라졌다. 그러다 이전에 사용하던 여러 계정중 한 곳에서 발견한 단 하나의 폴더. 그 폴더를 열고 들어가니 수십개의 폴더가 주르륵. 시커먼 지하 광처럼 춥거나 더워 잘 올라가게 되지 않았던 다락방 같이. 항상 나와 함께 였지만 전혀 별다른 공간. 그 공간에서 희뿌연 먼지를 뒤짚어 쓴 어린 나와 만난 것 같다. 지금도 심장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신경줄이 펄떡거린다. 너무 좋아서. 잃었지만 얻어서. 



----------------(한 줄 요약)

선물같은 하루. 어떤 선물이었는지 꼭 쓰자. 써 놓으니까, 이런 커다란 선물로 나를 다시, 언젠가는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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