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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05. 2023

노안과 바다

[동네 여행자]3

나는 20대 때부터 다림질과 머리 깎는 역할을 했다. 군대 내무반에서. 칼주름 깍새라 불렸다. 나름 한 인기 했다. 줄을 섰다. 휴가 나가는 순서대로 후임병들 군복 -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직 아드님이 입대 전이라. 예전에는 1인당 군복은 두 벌. 한 벌은 부대 안에서 막 입는 전투용, 한벌은 휴가나 외박 등때 입는 안 전투용 - 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다림질해 줬다. 그리고 휴가 나가기 전 주 주말 정도에 머리도 하얗게 깎아 주었다.


내가 내무반장이었을 때가 칼주름 깍새의 전성기(?)였다. 순번을 정해 휴가 나갈 아이들 군복을 일요일 오전 내내 서너 벌을 다리면서 후임병들 청소 역할도 지시하고, 선임병 질문에 알랑방구도 뿡뿡 제대로 끼고, tv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이어가고. 갑자기 들어온 윤중사님에게 농담도 던지고. 이 모든 것들을 거의 동시에. 만능 멀티 플레이어였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서도 다림질은 내가 다 했다. 남매들 교복, 아내 블라우스까지. 나도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를 넘어오면서 한참 정장을 입었다. 복장 규정이 엄격하다거나 입어야 하는 의무는 없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입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글에서도 한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https://brunch.co.kr/@jidam/149).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그 당시에는 나에게 기적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래서 일요일 저녁. 나만의 숭고한 의식이다. 일주일치, 여섯 장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것이.


그렇게 칼주름을 잡고 옷장에 걸어 놓기만 해도 내 인생의 주름이 펴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가득했다. 살아가는 게 뿌듯했다. 빨리 아내가 사준 셔츠를 입고 얼른 출근하고 싶은 월요일도 꽤나 여러 날 있었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슈가 된 이야기에 의견을 덧붙이면서 동시에 모니터로 작업까지. 중간중간에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는 건 기본으로.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자연스레 떠올리면서. 나를 다른 이유로 찾아오는 학생한테 다른 학생에게 전해야 할 말을 메모 없이 따박따박 잘 전달하면서.


그런데 멀티 플레이를 십여 년 넘게 하다 보니 메모 없이는 자꾸 까먹는다. 금방 생각하고 나서 돌아서면 왜 돌아섰는지 모르는 일이 가끔 생긴다. 그래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 그 무렵이다. 글 - 아니 넋두리 같은 기록들 -을 쓰기 시작한 게. 하지만 메모를 챙겨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그럭저럭 일머리 좋은 사람으로 다시 또 십여 년을 먹고살만했다.


운동을 할 때 휴대폰은 필수다. 다양한 기능으로 내가 운동을 잘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잘도 모아두니까. 그 휴대폰은 항상 허리를 둘러싼 러닝 밴드 속에 있다. 몇 년 전에 구입한 건데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아이템이다. 그러다 가끔 전화가 와서 꺼낸다. 걸으면서 통화를 한다. 알았다고 대답한다. 다시 운동을 하다 그냥 집으로 들어간다. 아 맞다. 한다. 다들 그런다고 한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뭘 근거로 안 그럴 줄 알았는지. 그게 더 문제이지 싶다.   


통화를 하면서 그런다. 톡하나 남겨줘 하고. 이제는 그게 습관이 되었다. 서로 평화(?)를 유지하는 좋은 습관. 업무 때도 반드시 그렇게 부탁을 한다. 통화는 그래도 낫다. 문자나 톡이 온다. 대부분은 달리기가 끝나고 본다. 내 폰은 알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런데 우연히 보다가 유독 중요한 문자일 때가 있다. 그러면 대부분 걸으면서 읽었다. 걸으면서 답장을 했다. 그런데 그 동작이 몇 해 전부터는 빠른 속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글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과를 서너 번 가보니 노안이 시작된 거란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란다.


의학적으로는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다. 걷기는 더더욱. 다시 달리고, 또 걷다가 문자를 본다. 조금은 흔들리지만 읽을 수는 있다. 멀찍이 휴대폰을 얼굴에서 한참 밀어내면. 밀어냈지만 읽으면서 걸을 수 있었었었었다. 그런데 몇해전부터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렇게 밀어내도 보이던 글자가 이제는 더 뭉개져 버렸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멈춰야 한다. 하기야 먹고 사느라, 지금도 하루를 따지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모니터에 눈을 혹사했을까. 내 눈에도 미안하게 많다.


그러고 보니 산책을 하다, 운동을 하다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멈춰 선 이들을 꽤나 많이 보인다. 이 대목이 바로 삼십 대와 사십 대, 사십 대 초반과 중후반, 사십대와 오십대를 의학적으로 갈라 치기 하는 기준이지 싶다. 거의 중년들이지만 요즘에는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이들도 꽤나 보인다. 그냥 가다 멈춘다. 갑자기 멈춘다. 내가 라이딩을 할 때 위험한 상황을 여러번 맞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십이 넘어서면서 부터는 운동할 때 휴대폰은 딱 하나, 음악 듣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헬스장이 아니라면 휴대폰을 절대 들여다 보지 않는다.  


안과에서는 그런다. 고개 숙여 휴대폰, 모니터 오래 보지 말라고. 대신 멀리 보라고 초록하고 파란 것들을 많이 보라고. 그러는 안과 의사도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거다. 나는 산골에서 자랐다. 늘 초록색 천지였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옆에 바다가 생겼다. 창문너머 바로 보이는 낭만은 없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달리면 만날 수 있던 바다는 언제나 파랬다. 눈이 시릴 정도로.


허릿병 때문에 그런지는 몇 해 되었지만, 갑자기 바다를 가끔 간다. 맨발로 파도와 싸우느라 정신없는 따님이 가끔 물었다. 아빠는 바다에 와서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그냥 웃는다. 그러면서 먼바다를 한없이 서서 본다. 바다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내 눈은 그렇게 열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사무실에  갇혀서도 내 눈이 언제나 바다를 기억할 수 있도록. 계속 눈에다 바다를 넣어 두는 거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눈만 감고 있으면 그 바다가 일어난다. 내 눈안에서. 내 머리속으로.   



-----------(한 줄 요약)

운동할 때 휴대폰을 멀리 하면 더 젊은 나를 자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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