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Sep 10. 2023

우린 서로 익숙한 외계인

[읽고 쓰는 일요일]_(2)우리집문제(오쿠다 히데오)

미시간 공대에서 20년 넘게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 심리학자인 아내 최성애 박사와 함께 많은 이들에게 공기 같은 책을 많이 써 준 조벽 교수. 그  분과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을 읽다 궁금하면 가끔 그렇게 저자한테 메일을 보낸다. 그때의 질문은 아마 이랬던 것 같다.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술적으로 잘 가르치는 것 말고 인간적으로 가르치는 게 적합한 사람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뭐, 이런 정도의 질문.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내가 매일을 보낸 건 조벽 교수님이 그 당시 부산의 한 보육센터에서 봉사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였다. 같은 한국땅에 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아마 그 당시 그 유명한 저서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조벽 교수의 인재혁명』등의 서적을 탐독하고 있을 무렵이었을 거다. 한 달 넘은 시간뒤에 도착한 메일은 아주 짧았다. 내가 책을 보냈다면 쪽지를 받은 느낌이었던 같다. 그런데 한두 줄의 문장 속에 나를 읽은 듯한 표현이 들어 있었다. 이미 내가 길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한참을 걸어 들어가 버렸다고. 짧은 메일을 두고두고 읽었다. 선문답 같던 대답.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만날수록 대답이 우문현답이었다는 사실이 짙어졌다. 속에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해답을 끄집어 내어 있는 이를 만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하는 거라는 것을.      





# 남편과 UFO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열심히 잘 다니는 평범한 중1, 초5 두 아이의 40대 남편 다쓰오가 아내 미나코에게 UFO를 이야기한다. 요즘, UFO를 만나고 있고, 대화까지 나누고 있다고. 회사 영업부 부장인 다쓰오는 거의 매일이 야근인데,  비 오는 날을 빼곤, 차로 데리러 나온다는 아내를 만류하고 집 근처 둑방길을 걸어서 퇴근한다. 그러다, 그 길에서 UFO를 만나 교신을 한다고 한다. 미나코는 걱정한다. 신흥 종교에 빠진 거라고. 그러나 다쓰오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없다고 가족을 달랜다. 특히,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자신의 프로젝트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오히려 두 남매들과 UFO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한다. 


미나코는 다쓰오 회사에 전화를 걸려, 안면이 있는 여직원을 통해 다쓰오가 새로운 새로 온 창립자 조카인 부장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능한 관리자 때문에 영업부 간부들이 반기를 들고, 그들끼리 파벌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다쓰오는 어느 편에도 들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고. 그러다 보니 파벌들의 프로젝트가 모두 다쓰오에게 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미나코는 남편을 구하기로 한다. 회사로부터. 그러면서 다쓰오가 퇴근하는 둑에서 변장을 하고 기다리다 카피별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쉬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다쓰오는 이내 아내인걸 알아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에 대해. 그리고 당분간 쉬기로, 내일부터 당장 쉬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미나코의 마음이 맑게 갠다.     





조벽 교수님의 한 저서에 나오는 문장, 아니 상황은 남매들을 키우면서 두고두고 기억에서 맴돌았다. 아무리 명문장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일쑤이다. 그런데 그 문장이 내 이야기이면, 내 상황과 너무나도 오버랩되면 잊히지 않고 장기 기억 창고로 들어간다. 마치 어떤 노래만 들어도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나듯이. 최성애, 조벽 부부가 결혼하고 미국에서 첫째를 키우면서 공부를 했단다. 낮에는 물론 밤에도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아가에 대해 해주는 게 너무 없어 미안해했단다. 그래서 아가한테 조금 덜 미안하기 위해 두 부부가 약속을 하나 했다고. 그 약속을 실천하는 내용이 너무 성스러웠고 위대해서 나의 장기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손을 먼저 씻는다. 그리고 요람 위에 누워 있는 아가옆에 무릎을 꿇는다. 요람을 살살 흔들면서 손가락으로 아가의 손가락, 볼, 귓불, 목, 발가락 등을 터치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아빠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오늘 발표는 정말 멋진 발표였다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오늘 나는 엉망이었다고,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힘들었다고.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기쁘고 힘들고 외로웠는지를 오랜만에 만난 엄마한테 다 일러바치듯이. 그렇게 웃고 때로는 울면서 아가와 같이 사용한 하루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당연히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가지만 눈빛으로 미소로 터치로 대화를 계속했단다. 


나는 몰래 혼자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함때문에. 하지만 눈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는 걸 이미 증명받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정신(?)차린 다음부터 지금껏 계속 남매들한테 이야기를 한다. 나의 하루를. 내 생각을. 의견을. 그러다 보니 알게 되었다. 못 알아듣는 아가한테 이야기를 하면서 부부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하루를 알아갔을 거라고. 그리고 같은 듯 다른 하루를 섬세하게 터치하고 보듬었을 거라고. 안 보고도 아는 이유는 보통 그 사람의 인상이 된 표정을 통해 짐작이 가능하니까.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익숙하지만 외계인 같은 이들과 지내야 한다. 아니 가끔은 잘 안 지내도 되니까, 하고 일부러 라도 거칠게 나를 표현해 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러고 난 뒤 다시 모인 가족. 표현 방식은 다 다르지만 고단함을 이고 지고 있다. 대부분은 맵단짠에, 맥주 한잔 정도에, 흠뻑 땀을 흘리면서 해결해 나간다. 오쿠다 히데오는 바로 이 상황에 주목한 거다. 해결해 나간 듯 하지만 쌓여 있는 이 상황을. UFO와 버금가는 상사 - 요즘에는 상사만큼 뒷세대들도 많다 - 를 만나 힘겨워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려 노력한 다쓰오. 우리 대부분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아빠다. 그런 남편의 상황을 눈치채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힘을 주어 남편을 지켜준 미나코. 우리 대부분의 평범한 엄마, 아내다. 


자주 듣는 라디오 속 광고 멘트 중 하나. 백 가족이면 백 개의 해결책이 존재한다. 오쿠다 히데오 역시 가족은 매뉴얼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쿠다 히데오는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지 싶다. 최성애-조벽 부부가 보여준 방식으로. 그건 바로 가족 간의 지속적인 '관심의 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모든 다쓰오는 계속 외계인을 만나야만 할 거다. 만나지 않기를 빌기는 쉽지 않다. 다만, 다쓰오에게 이어진 관심의 끈이 더 튼튼하고 단단하고 길어진다면 그만이다. 그것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다쓰오들은 끄떡도 없을 거다. 그 다쓰오를 지켜보는 미나코들도 세상 평화로울 것이고. 

작가의 이전글 에이 하지 마, 하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