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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1. 2023

노루발에서의 추억

[다시쓰는 월요일] 3

[다시쓰는 월요




2023-09-11

나도풍란, 나리난초, 낭아초, 노랑갈퀴, 노랑붓꽃, 구름국화, 기린초, 금낭화, 구절초, 팽이눈꽃, 개막문동, 각시붓꽃, 가솔송, 노루귀, 노루오줌, 노루발. 여기, 두타산 자연휴양림 방 이름들이다. 휴양관은 내외부가 모두 통나무인 2층 A동과 B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전히 비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먼저 잠든 따님옆에 누웠다. 정말 오랜만이다. 따듯한 바닥에 배를 깔고 마음놓고 책을 읽는 게. 잠을 자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1시가 되는 걸 보면서 돌아 누웠는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정도 잤을까. 왼쪽 어깨가 으스스해서 살짝 실눈을 떳다. 


엄지손가락 하나만큼 열려 있는 거실 문틈으로 달려드는 두타산 새벽 공기. 따듯한 바닥덕에 왼쪽 어깨를 제법 매섭게 비벼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슬에 녹아든 풀내음이 코를 뻥뚫고 지나갔다. 다시 이불을 끌어 올려 목덜미까지 덮었다. 나와 대각선으로 자고 있는 따님위로 새벽 달빛이 절반 정도 걸쳐있다. 


다시 얼마간 잠이 들었다 다시 깼을까. 여전히 새벽이다, 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마 충분히 늦잠을 잤으니까 이른 아침 무렵이었을 지도. 그렇게 다시 나를 깨운 건 소리였다. 끄억, 취, 촤아 하는 소리. 옆으로 돌아누워 가만히 들어봤다. 노루발과 옆 방 노루오줌 사이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요한 산 속. 갇혀 있는 물이 강제로 잠든 쇠를 두드린다. 한방향으로 몰려 갔다 몰려 온다. 배관이 흐물거리면서 통통 튀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신나게 들린다. 그 소리가 모든 소리를 다 잡아 먹어 더 평온하게 느껴진다. 노루발에서 이 평온을 느낀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느낄 이들은 어떻게 살다 여기에 올까. 


아주 신나게, 힘차게 들리는 물소리, 쇳소리덕에 완전히 잠을 깼다. 방음이 안될까봐 걱정을 꽤나 하던 따님. 훨씬 더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잠에 빠져있다. 지금 일어나도 나와 따님을 합쳐 21시간이나 잤다. 참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원문] 2017년 9월 11일

나도풍란, 나리난초, 낭아초, 노랑갈퀴, 노랑붓꽃, 구름국화, 기린초, 금낭화, 구절초, 팽이눈꽃, 개막문동, 각시붓꽃, 가솔송, 노루귀, 노루오줌, 노루발. 모두 두타산 자연휴양림 휴양관 숙소 하나하나에 붙어 있는 방이름들이다.  2층으로 된 A동 B동 모두 외관과 내부모두 목재로 지어진 건물이다. 비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먼저 잠든 @@옆에서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놓고 책을 읽으면서 잠을 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가 되는걸 보면서 누웠는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얼마 정도 잤을까 왼쪽 어깨가 으스스해서 살짝 눈을 떳다. 바닥은 따듯한데 이불이 살짝 벗겨진 왼쪽 어깨는 건조할까봐 엄지손가락 하나될만큼 열어 놓은 거실문틈으로 뛰어들어오는 두타산 새벽 산공기에 한기를 느꼈다. 그렇지만 기분좋은, 코가 뻥뚫리고 새벽 이슬머금은 풀내음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 다시 이불을 끌어 올려 목덜미까지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옆에서 나와 대각선으로 자고 있던 @@는 여전히 맛있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나 더 잤을까.  또다시 새벽녘(오늘은 충분히 늦잠을 잤으니까 아마 아침무렵이었을지도)에 잠을 깬 또 하나의 이유는 오래된 목재 가옥에서 들을 수 있는 배관에 물 흐르는 소리때문이었다. 노루오줌(옆방 이름)에서 수돗물을 트는데 노루발과 노루오줌 사이의 벽  수도배관속을 채우고 있던 물이 힘차게 한방향으로 밀려 내려가는 물소리, 쇳소리가 새벽 어스름 평온을 신나게 깨웠다. 아주 신나게. 방음이 안될까봐 걱정을 많이 하던 딸은 다행히 아주 평화롭게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딸과 합쳐 총 21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참 오랜만에 밤에 ‘깊은 잠’을  잤다.




---------(한 줄 요약)

글에 묻어 있는 추억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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