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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2. 2023

누구나 다 때가 있으니까요

 [동네 여행자]5_사진:gaonbit

이 글이 이곳에 쓰는 368번째 글이네요. 스스로가 기특합니다. 며칠 하다 마나했는데. 어제가 만 24개월이었나 봅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착하고 고마운 구독자수 128과 글수 367을 뒤바꿀 수 있는 재주는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렷하게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한가 봅니다.  


왜 쓸까를 가끔 생각합니다. 질문을 받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주 묻습니다. 쓰는 행위가 내 인생의 무엇인지를. 사람은 누구나 세 가지 맛(흥미, 재미, 의미) 집을 찾아 평새을 헤매이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훨씬 이전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 처음 알았습니다.


2017년 가을. 숲 속에서 쉬고 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병가로 인해. 그러다 일 년 뒤 2018년 여름. 또 갑작스럽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지금도 펼쳐 보면 뭐, 글이라고는 표현하지만 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투박하지만 깊은 마음의 소리를 꺼내려고 노력하는 애처로운 모습은 담겨 있네요.


어디서 누구한테 글 쓰는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지만. 사십여 년 전 배 깔고 일기 몰아 쓰던 누구나의 그 정도 습관 덕에 흔들리는, 즐거운 나를 기록으로 남겨 놓으려는 태도가 물들었나 봅니다. 아빠 T야 하면서 자주 물어보는 열여덟 따님이 제일 의아해 하긴 합니다. 우리 집에서 내가 글을 쓴다는 게.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다 잡기 위해, 나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알고 있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 말, 행동을 다 하지 못하고 살지만 글 속에서라도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이렇게 살아내는 나를 나 스스로 모니터링하고 격려하기 위해.


조금씩 이유는 다르지만, 그렇게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내가 글 쓰는 이유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내 삶을 퇴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맹목적이어서 순수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 사이에 나도 잘 모르겠는 욕심이 붙어나게 됩니다.


가끔 쓰다 보면 이게 내가 쓰고 싶은 거 맞나 싶어 져요. 관심 분야, 주제가. 그러면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나에게 강요된 쓰기가 아닌 가 하는. 그렇게 글 쓰는 욕심이 변질되면 그게 진짜 욕심이 넘친 글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속에는 내가 없는 글. 글에서마저도 내가 사라져 버리는.  


뭐, 그렇게 비교할 깜은 못되지만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가 게이머가 된 순간이지 싶어요.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면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세상 같아져요. 글을 쓰다 보면 쓰고 싶은 걸 쓰는 건지 써야 하는 걸 쓰는 건지 나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잘 쓰고 못쓰고의 문제도 문제지만, 글소재를 찾는 나를 들여다보다 보면 그게 더 선명해져요.


며칠 전 꽉 막힌 직진차로. 좌회전 포켓 차로로 기다란 대형 버스가 한대 미끄러지듯 들어왔어요. 그 차로는 차가 하나도 없어 편안하게 지나가는 게 여유롭게 느껴졌어요. 옆 트럭과 트럭 사이 틈으로 버스 끝부분이 지나갈 무렵, '누구나 다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제법 큰 글씨가 자막처럼 흘러갔어요.


진보라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가 더욱 또렷하게. 어릴 적부터 위대해 보였던 어른들한테 수없이 들었던 그 소리였어요. 살다 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싶어지는 순간이 훨씬 더 많아지는 걸 보면 그 어른 중 하나가 되어 가는구나 싶어 저요. 그러면서 나의 그때는 지나갔나, 지금인가, 언제나 올까로 이어졌어요.


그러다 저 멀리 직진 신호가 들어오는 걸 확인하느라 눈동자를 돌리려는 순간, 내 망막의 끝 부분에 자그마한 몇 글자가 더 들어왔어요. 하얀 글씨에 달라붙은 각주처럼 작은 글씨가. - 000 불한증막.  혼자 풋 하고 웃으면서 앞으로 보고 달려 나갔네요.


아내를 만나기 10여분 동안 계속 그 문장이 지워지지 않은 채 생각이 쓰기로 옮겨 붙더군요. 쓰기 전과 분명하게 달라진 건 일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어요. 자세히 보고, 천천히 보고, 많이 읽고, 기록하고, 찍어 두고.  그러면서 그 행위의 목적이 순수한가에 가서 멈추었어요.


쓸 감을 저장해 놓는 창고를 불리는 행위일 뿐 또렷한 목적이 없는 그런 순수함. 다시 그걸 찾아서 잘 챙겨둬야 할 때라는 생각에 가서 멈추었네요. 작가님, 작가님 해주니까 내가 뭐가 된것마냥 쓸 정도의 깜냥도 안된다는 것을. 주는 밥 먹고 글만 쓰는 이들도 어려운 것을 말이지요.


지금 글을 쓰는 이 노트북에 전원만 나가도 글을 못쓰잖아요. 아니, 지금처럼 손가락 끝에 살짝 곪아도 쓰기 불편하잖아요. 아니, 이 공간에서 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이때가 지금밖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써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내느라 내 몸 구석구석에 숨어든 찌든 때. 벗겨내도 또 금방 생기잖아요.


그때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벗겨냈는지, 다시 얼마나 달라붙었는지. 그걸 그냥 써야겠습니다. 지금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그래서 쓰고 난 뒤 혼자 여러 번 읽습니다. 내가 나의 독자가 되어서 읽어 봅니다. 폰처럼 여러 플랫폼의 알림을 죄다 꺼놓으니 내가 나를 읽을 수 있는 때가 많아집니다.  



-----(한 줄 요약)

그냥 씁니다. 지금이 쓸 수 있는 때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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