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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7. 2023

나에게 한번 놀러 오렴

[읽고 쓰는 일요일]3_오해피데이(오쿠다히데오)





이 부부 사연 좀 들어 보자. 삼 십대 후반의 8년 차 부부. 지금 별거 중이다. 딱히 큰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서로가 떨어져 지내면서 생각을 해보자고. 아내는 남편과 함께 살던 공간에서 나가면서 남편과의 합의하에 자기 물건을 모두 챙겨서 나간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전자레인지 정도만 남게 되고 집은 거의 텅 빈 상태.

      

텅 빈 공간에 남은 남편은 8년 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관심거리로 서서히 채우게 된다. 그건 바로 레코드 CD와 홈시어터. 아내가 공간을 비우자마자 장만한 거실용 전등. 여러 곳을 한참 돌아다니며 구입한 빨간 소파는 CD와 홈시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한 편의사항이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자신의 것으로 채워지고 나니, 남편의 친구들이 모여든다. 셋 모두 결혼을 한 기혼 남자들. 그들 역시 남편과 같은 음악과 영화에 푹 빠진다. 심지어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퇴근 후에 주인공 집에 머물다 아내의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저씨>의 후계동 바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날도 한 친구가 늦은 시간까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잘 놀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주인공의 집에 잠깐 방문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전한다. 그리고는 정말 금방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그 옆에는 결혼식 때에 한번 본 그의 아내가 같이 있다.


그 친구의 아내는 퇴근 후 자주 늦는 남편을 의심했고, 남편은 주인공의 공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결백을 확인시켜 준다. 아내는 오히려 미안해한다. 어느 날. 이를 계기로 친구들이 주인공 부부가 왜 별거 중인지 끈질기게 여러 번 질문한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 자신도 갑자기 그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자기 부부가 왜 별거중인지. 그러다 문득. 별거를 시작한 이후에 한 번도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걸지 않은 것을 스스로 발견한다. 몇 번을 망설이다 '진짜' 안부 전화를 건다.


전화 도중에 별거 중인 아내가 자신의 집에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의 것으로 채워진 공간을 보고 아내는 주늑이 들어 나왔다고 고백한다. 그 공간이 너무 아늑하고 좋아 보여서. 그래서 놀러 오겠다고 한다. 같이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자고.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에서 같이 산다. 일정한 넓이를 가진 공간에서. 그리고 그 공간을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가득 채워 둔다. 함께 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 것과 네 것의 뒤섞여 숨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것이 내 것인지 모른다. 이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몰입하는지 나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인지도 잊고 지나간다. 나만의 시간은 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크기는 상관없다. 그 시간과 공간덕에 나는 다시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가 열일곱이 되기 이전. 혼자 울고, 공부하고, 책 읽었던 다락방. 단칸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우주. 그 덕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분명하다. 일정 기간 동안 그 공간의 나만의 공간이었다.


50대인 지금. 이 시각 이 공간은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나만의 것, 나의 관심사'로 작동하고 있다. 열여덟 따님이 들어올 때도, 아내가 나를 찾을 때도 목소리로 노크를 대신하는 이유가 그것이라는 걸 아주 잘 느끼면서 산다. 그러면 나는 나만의 자그마한 절차를 밟게 된다. 나만의 곳에서 함께하는 곳으로 나가는 거다.


그 짧은 나만의 절차 덕에, 그 절차를 인정받는 덕분에,  나의 시간에서 나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가 생긴다.   



----------(한 줄 요약)

각자의 다른 에너지에 대한 존중. 서로가 피스peace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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