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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8. 2023

선택하는 연습

[다시쓰는 월요일]  4_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부치는 편지5



[다시 쓴 글]

월요일 1교시. 나는 공강이다. 아침 커피 한잔에 강석우의 클래식을 듣는, 느긋한 시작 시간이다. 2교시부터 몰아 칠 다이내믹 월요일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시각.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 끊겼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 폰을 보니 '야자빠들'이다. 야구, 자전거에 빠진, 아니 빠졌던 아드님이었다. 나는 아들을 그렇게 저장해 두었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후 지금껏 한번도 이 시각에 전화를 걸어 온 적이 없다. 거꾸로 열번 전화를 걸면 한 두번 바로 받을까 말까 한 무딘 아이다. 주말에 깜빡했단다. 오늘중으로 2학년 계열을 선택해야 한단다. 속칭 문과갈래 이과갈래다. 그런데 상담에서도 진로검사에서도 집에서도 아들은 문과 계열에 강점을 보여왔다.


아내도 나도 대한민국 문과 출신이니, 자연스레 아들은 문과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학기 가조사에서도 문과로 선택했었고. 아들은 어릴적부터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아주 너무 신중하다. 도전까지는 몰라도 벌써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하는 현실파다.


스스로 문과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이과가 대세란다. 지역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를 일부러 선택한 이유중 하나란다. 10개반중 6개반이 이과란다. 아들 말로는 공부를 좀 하려고 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이과로 간단다. 담임 교사와 통화를 했다. 아이 선택의 원인이 담임과의 상담이라는 걸 그렇게 알았다.


여름방학 내내 방과후 수업으로 수학만 들었단다. 수업끝난 후에 혼자 남아 공부를 하는 아들을 보면서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는 문과보다 이과 계열에 가면 성격상 더 집중해서 공부를 잘 할 스타일이라고. 수학이 담당인 담임교사의 눈에 아들은 그렇게 보였다.


미성년이 있는 곳에 어른이 필요한 이유다. 학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건 교사가 필요한 이유다. 집에서 보여진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야자를 끝내고 온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뱀의 꼬리가 되고 싶지만 보장은 없다. 문과를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전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단다.


아빠, 엄마, 문과 출신 부모같은 말마 한참 하는 동안, 시계는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눈는 더 또렷해졌다. 그 눈망울은 스스로의 선택에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더욱 믿음직했다. 생각해 보고 내일 아침에 등교해서 담임선생님에게 직접 말씀드리겠단다. 무엇을 하건, 어느 쪽을 선택하건 그렇게 하는 건 스스로니까, 라는 나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고 하면서.

  

그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부모세대들에게 익숙한 문과, 이과가 행정적으로는 처음 사라지는 시작점이었다. 아들이 첫 대상. 물론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제대로 본격적으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서서히 진행되고는 있지만. 대한민국을 둘로 나눈 오래된 교육적 관행이 많은 잡음을 일으키면서 깨지려고는 하지만.

 

단순히 아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4년전 그때가 아들 인생 최초이자 최대의 도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물론 그로부터 일년 뒤. 스스로 자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덕에 지금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과를 선택해서 공부를 막 시작한, 컴퓨터 공학도가 되었다. 부모와 다른 계열을 살기 시작한 시작점이다.  

 

지지난 주. 아드님이 성인이 되었다. 그 선택에서 시작된 물줄기를 따라 잘 흘러가고 있는 어린 성인이 되었다. 선택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이제 막 어른 연습을 제대로 시작하는 성인이 되었다. 다행히(?) 오늘, 월요일은 수업이 없어 자체 휴강 요일이란다. 하루 더 쉴 수 있어 내 마음이 더 편하다. 물론 과제때문에 그저 쉴 수 있는 시간일지는 모르겠지만.

 

(한줄 요약)

선택하는 연습은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된다



[원래 쓴 글](2019년 9월 9일 월요일)

월요일 1교시. 공강이다. 아침 커피 한잔에 강석우의 클래식을 듣는, 소확행 시간이다. 갑자기 음악이 끊겼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휴대폰 화면을 보니 ‘야자빠들’이다. 야구와 자전거에 빠진, 아니 빠졌던 큰아이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이 시간에 전화를 직접 걸어 온 적이 없다. 오히려 전화를 아무리 해도, 열 번이면 한번 받을까 말까하는 무딘 아이다. 순간, 본능적으로 다급함이 전해졌다. 주말에 깜빡했었다며 오늘중으로 2학년 계열을 선택해야 한단다. 속칭 문과갈래 이과갈까다. 상담에서도, 진로검사에서도 큰아이는 문과계열에 강점을 보였다. 아내와 나도 문과 출신이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큰아이는 문과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학기에 가조사에서도 문과로 선택했다.

큰아이는 어릴적부터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신중하다. 절대 도전적이지 않다. 벌써부터 변화가 아니라 안정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보통 부정적인 것에 기인하는게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문과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이과가 대세란다. 10개반중 6개반이 이과란다.

큰아이 말로는 공부를 좀 하려고 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이과로 간단다. 오전에 큰아이와 통화후 오후에 담임과 통화를 해보았다. 수학이 담당인 담임이 큰아이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게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시작인 듯 하다. 담임의 이야기는 이랬다. 이번 여름방학내내 수학방과후를 하고 학교에서 오후에 남아 스스로 공부하는 큰아이를 봤다. 문과에 특별한 목표의식이 아직 없는데, 공부하는 모습에서 이과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야자를 마치고 데려와 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큰아이는 자기 학년 분위기가 이과를 선택하는게 우세하다,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은 다 이과를 간다, 문과는 공부하려는 분위기가 안잡힐 수 있다고 담임이 조언했다, 문과를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게 생각하고, 도망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적이고 분명한 진로를 결정하지도 못했다, 라고. 나를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다. 문과도 이과도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지금보다 좀 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휴대폰 사용을 스스로 잘 통제하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문과보다 이과가 같은 성적이라도 선택 – 대학 학과만을 전제로 하면 – 의 폭이 더 넓다. 그건 경험상 분명하다. 하지만 수학을 더 많이 해야하고, 과학과목을 해야 한다. 물론 너희부터는 문과 이과 구분이 없고, 대학 진학에서도 모든 학과를 지원할 수는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계는 자정을 훌쩍 넘어 있었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큰아이의 눈망울이 스스로의 선택에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더욱 믿음직했다. 생각해 보고 내일 아침에 등교해서 담임에게 직접 말씀드리겠단다. 그러라했다. 무엇을 하건, 어느 쪽을 선택하건 하는건 스스로니까, 라는 나의 말에 공감한단다. 이번 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우리 모두가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같이 경험해 봤다는 것. 앞으로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선택이 순간에 늘 함께 하지 못할거다. 큰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올바른 정보를 찾아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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