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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9. 2023

새로 남자 청하한 여자의 그냥 월요일

[동네 여행자]7

지금은 화요일 새벽이니까. 어제는 월요일. 여느 때처럼 출근하고, 퇴근했다. 여느 월요일처럼 피곤했다. 언제나의 월요일처럼 빨리 들어가 쉬고 싶다, 는 생각으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아니, 달리다 마다 했다. 요즘 아내에게 가는 길이 멀어졌다. 퇴근을 하면서 아내를 픽업하러 가는 지하철역은 우리 동네밖에서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옆 동네의 경계까지 달려가야 한다. 그래도 삼십 분이면 넉넉했다. 그런데 요즘은 퇴근길에 차가 많아졌다. 가는 길가 택지 지구에 계속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공사를 해왔겠지만 항상 갑자기 일어난 일처럼 다가온다. 세상일이 그렇다.


그 아파트들 덕분에 아내는 지하철역 앞 사거리 인도 위에서 보통 1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삼십 분 가까이 기다린 적도 꽤나 된다. 빵빵하고 아내에게 신호를 보내면 내 차를, 나를 얼른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이 엽서 같다. 매일 써 보내는 엽서. 그 엽서를 어제도 한 통 받으면서 다시 오던 길을 달려 둘이 집으로 향했다. 다시 이십여분을 달린다. 그 시간은 보통 아내가 이런저런 말을 하고 내가 이렇게 저렇게 반응을 하는 식으로 채워진다. 아내는 여자다. 여자는 하루에 보통 이만 칠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단다. 그 정량을 낮에 다 채우지 못하고 퇴근한 거다. 나는 남자다. 나는 하루에 칠천 단어 정도 사용하면 참 말 많아지는 남자다. 그걸 밥 벌어먹느라 낮에 다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말이 없어지는 거였다.


그걸 잘 몰랐던 나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는 말로 이겨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백전구십구패. 딱 한번. 이사를 결정할 때. 내가 더 많은 말을 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스물 두해 동안 유일한 승리다. 그 승리는 아내도 인정하는 거다. 집 값이 조금이라도 올라서 참 다행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주말 아버지 생신 계획을 이야기한다. 엄니가 추천하셨다는 코다리집은 오픈런을 해야 해서 세 가족이 가기가 어렵겠다고 말을 한다. 오늘, 우리가 먼저 가볼까 한다. 아니다. 갑자기 삼겹살 먹고 싶다, 고 한다. 그러면서 차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배에서 흘러나오는 걸쭉하게 굵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장사익이다. 아내의 목소리는 피곤하다. 그런데 기분은 낭랑하다, 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린 한 번도 들른 적 없는 집 앞 솥뚜껑 삼겹살집에 마주 앉았다. 월요일. 퇴근길. 우리 부부 스스로가 신선했다.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매장 오른쪽에 가로로 주르륵 놓여 있는 테이블 세 개중 끝에 앉았다. 주방과 가까웠다. 차를 지하에 세우고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아내가 주문한 삼겹살 세 줄은 이미 촤 소리를 내면서 땀을 흥건히 흘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새로 한 병을 시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청하 한 병을 더 시켰다. 아, 이십 대 때 청하로만 살았는데, 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도, 나도 기분만 그렇다. 술을 못 마신다. 양이 적다. 소주를 못마시는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청하를 하사 받은 게 기원이다. 아내의 청하는. 같이 하고 싶은 친구들 -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 의 배려였다. 월요일. 퇴근길. 참 신선하다. 삼겹살에 새로, 청하.


요즘 우리에겐 퇴근 후 미션이 있다. 아홉 살이 넘어가는 반려견 타닥이 산책. 한 달 여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타닥이 검진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내도 검진을 했다. 말수 적은 내가 그렇게 많은 말을 내뱉은 분야(?)이다. 운동하자고, 운동. 뭐, 거대한 거 말고 자그마한 거. 파워 말고 가볍게 걷기라도. 그걸 지금 한 여름 지나면서 둘 다 열심히 실천 중인 거다. 난 참 좋다. 그런데 타닥이는 사회성 결여견이다. 지나고 나서 알았다. 타닥이 2개월 때부터 다닌 동물 병원. 지금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병원 의사 스타일 덕분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나열하면서 겁을 줬었다.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산책은 주사 다 맞고 6개월 정도 지나서부터 하라고.


그 덕분이다. 아홉살인 지금도 또래(!)는 물론 대형견을 만나도 덤빈다. 마구 덤빈다. 그럴 때는 본능적인 야성이 나오는 듯 타닥이는 거의 미친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아내 혼자는 버거워한다. 내 말은 조금 들으니까. 내가 자주 혼자 산책을 시켰으니까. 그걸 이제라도 둘이 같이 한다. 둘 다 운동을 하면서. 그렇게 다시 동네를 크게 한 바퀴나 작게 두 바퀴를 돌면 삼사십 분이 흘러간다. 요즘 산책하기 참 좋다. 너무 좋다. 피곤하다고 안 나오면 그냥 하루를 손해 보는 그런 저녁들이다. 그런데 나만, 우리만 좋은 게 아니니까 익숙한 듯 낯선 이들과 견들과 자주 만난다. 느므 자주 만난다. 하지만 우리는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참 좋은 그 저녁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첨병 역할을 한다. 다 타닥이 덕분이다. 앞뒤 좌우로 다른 견들이 있는지 살피고 알려준다. 쩌어기 횡단 보도, 자기야 뒤에 뒤에, 바로 앞. 그런데 그게 예민하지 않다. 여유로워져서 좋다. 그려려니 해서 더 좋다. 아내가 일러준 방향 반대쪽으로 나는 타닥이 목줄일 살짝 당긴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뛴다. 그러면 타닥이는 날렵한 한 마리 새처럼 새하얀 털을 뒤로 날리면서 전력 질주 한다. 물기를 살짝 묻혀서 누군가가 빗질을 해 준 모양새다. 그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몇 번씩이나 한다. 그게 나도 좋다. 산책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 거니까. 그 몇 미터는 정말 전력질주, 하는 것처럼 뛰니까. 허리에 힘 잔뜩 주고. 한참 뛰어 다시 만난 아내가 전해준다. 자기야, 아까 저쪽 그 큰 개 주인. 젊은 대학생 같던데, 자기랑 타닥이 뛰는 걸 보고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이유 없는 완벽한 승리, 를 했데 ㅎㅎㅎ.


그런데 신기하다. 타닥이는 달릴 때 만나는 견들한테는 짖지를 않는다. 달리기 본능인가 보다. 한번 크으 하면서 돌아볼 뿐. 그럴 때 아내는 가끔 기분 좋게 내뱉는다. 사잔 줄, 하고. 그 말투가 그렇게 듣기 좋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 반 지켜보고 있다면 타닥이보다 내가 더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진짜 미친 건 아니니까. 소리 내지 않고 그냥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뿐이니까. 그러면서 나도 타닥이도 운동 중이니까. 나도 타닥이도 사회성을 높이는 중이니까. 가로 아닌 새로덕에 참 새로운 월요일. 신선하다. 바람도 기분도. 아내가 타닥이와 먼저 집에 올라가는 걸 보고 나는 다시 집 앞 경전철 역으로 걸었다. 서울에서 달려오고 있는 열여덟 따님을 기다리러.


내년, 2024년. 10년 만에 다시 우리 동네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아내다. 그래서 이렇게 역에서 만나 짧은 드라이브를 들릴 일이 이제 가을, 겨울이 전부이지 싶다. 하지만 뭐, 그땐 또 그때도 새로운 나와 청아한 아내는 여전할 테니까. 다 괜찮다. 그냥 다 오늘만 같아라.




--------(한 줄 요약)

짧은 드라이브에 이어진 동네 산책. 우리 둘이 매일 떠나는 엽서같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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