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Sep 20. 2023

멀미납니까?

[세상의 모든 물견]4_선글라스 / 사진:사이언스온

어른이 된 요즘, 나는 참 좋다. 제대로 된 어른임을 증명당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어른이어서 좋은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운전이다. 내가 내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운전을 즐긴다.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그냥 달리는 걸 좋아한다. 허릿병을 재활 중이라 예전처럼 장시간 하지만 못하지만. 그건 잠깐이겠다 싶다.


나는 지금도 장거리를 이동할 때 버스를 타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25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버스 탈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였던 게 다행이었다. 시골에서 타고 다녔던 버스. 그 버스에 내 몸을 싣기만 하면 나른해지고 노곤해졌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두통이 심하게 왔다. 그 큰 버스가 그렇게 답답하고 좁게 느껴졌다.

 

멀미였다. 지나고 나서 보니 멀미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지 않아서 나는 운전을 할 수 없어서 그렇게 계속 멀미를 하면서도 버스를 타야 했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남매를 키우면서 혼자 몰래(?)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멀미다. 멀미도 유전될까 하고.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어디 간다는 날 나는 그렇게 붙이는, 마시는 멀미약을 넉넉하게 챙겨 넣어줬다. 아내의 목록에는 멀미약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남매 어릴 적 만할 때는 귀밑에 붙이는 게 없었다. 진한 갈색 자그마한 병에 담긴 마시는 게 대부분이었다. 무슨 롱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런데 항상 차 타기 얼마 전에 마셔야 한 데서 마시면 그때부터 나는 이미 버스에 오른 증상이 먼저 나타났다. 제약회사에서 나를 임상으로 활용했었으면 더 효과 좋은 약이 더 빠르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는 이런 나를 위해 항상 생밤을 준비해 주었다. 마른오징어는 비쌌고, 물을 자꾸 찾아야 해서 안된다시면서. 그런데 정신이 혼미한데, 생밤을 씹어 먹을 수 있는 여력은 더더욱 많지 않았다. 고개를 오르내리고, 좌로 우로 흔들거리는 버스가, 그 버스 기사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런 나를 대상으로 임상을 마친 후 강력하게 내린 엄마의 처방이 하나 있다. 귀밑에, 귀옆에, 이마에, 이지롱, 토스롱 같은 거대 제약회사의 결과물이 따라오지 못한 강력한 효과를 지닌 엄청난 처방. 멀미는 모션 motion sickness다. 즉 움직임에서 받아들이는 청각 정보와 시각 정보의 불균형이 유발하는 병이다. 귀와 눈으로 서로 다른 정보가 들어와서 뇌가 힘들어하는 증상이다.


우리 엄마는 국졸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가만 보면 제대로 마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나도 여태껏 모른 척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것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건강하니까. 거대 제약회사에서도 막아주지 못한 어린 아들의 멀미를 멈추게 할 정도로 현명하니까.


우리 엄마는 분명 모션, 전정기관, 뇌 역할, 스코플라민.... 뭐 이런 거 분명 모르실 거다. 배운 척하는 나도 슬쩍 찾아봐야 아는 척하는 정도니까. 그런 엄마가 어린 나에게 버스를 태우면서 언제가부터 생밤과 함께 같이 준비해 준 게 바로, 지금 내 차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선글라스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엄마 옆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생밤 한두 알을 먹었, 을 거다. 예전에 없어진 시골 그 터미널 의자에 앉은 내가 상상이 되니 웃기다. 뭐, 독립 영화 감독판 한 장면 같지 싶다. 중학생 이후에 눈이 나빠졌다. 그러면서 안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안경은 되는데 선글라스는 안되는 나이였다. 산골에서 중학생이 선글라스를 평소에 쓰면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웬만한 거리는 미리 나갔다. 걸었다.


그 덕에 내가 지금도 잘 걷지 싶다. 그 이후 나는 언제나 외출을 할 때 멀미약 대신, 생밤 대신 선글라스를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쓰는 선글라스는 도수가 있는 안경형 선글라스다. 지금 차에 있는 이 선글라스가 지금껏 구입한 것 중 제일 고가다. 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다만, 선글라스는 다초점 렌즈가 되지 않는 게 무척 아쉬울 뿐이다.  


이 선글라스. 밴쿠버에서 아드님을 만나러 갈 때도 챙긴 필수품 중 하나다. 그곳 일상에서 우리 동네와 확연히 다른 장면. 레깅스와 선글라스였다. 일상복처럼 입는 레깅스와 누구나 어디서나 쓰고 다니는 선글라스. 레깅스는 못 입고 다녔지만 선글라스 덕에 나도 그 동네 사람이 금방 된 것 같기도.


어른이 되어 참 좋은 요즘 이유 중 하나 더. 이런저런 정보들이 넘쳐나면서 머리가 아플 때 선글라스처럼 딱! 하고 끼기만 하면 해결해 낼 수 있는 균형감이 조금은 더 생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속 선글라스를 닦고 또 닦으면서 세상사 멀미 증상을 조금씩 가라앉히는 어른 같은 또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한 줄 요약)

세상사 멀미 증상이 일어나면 일단은 모션 먼저 멈춰보자.


작가의 이전글 새로 남자 청하한 여자의 그냥 월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