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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6. 2023

자동이체 더 합시다

[동네 여행자]6

살다 보면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가 참 많다. 먹고 할까, 하고 먹을까부터 어떤 걸 살까, 말까. 만날까 헤어질까까지. 어렵다. 그러면서도 나름 합리적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선택을 한다. 많은 경우. 합리적이라는 판단은 셀프다. 여러 가지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합당한 예산 속에서도.


그렇게 오늘도 나는 맥주가 아닌 막걸리를 선택한다. 11시가 아닌 2시로 결정한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선다. 그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통하기로 한다. 지금이 아니라 며칠 뒤에 진행하기로 한다. 내가 아니라 네가 하기로 결정한다.


동시에 한번 결정을 하고 나면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어제 앉았던 그 자리. 어제 세웠던 그 위치. 매일 아침 걸어가는 그 길. 익숙한 것이 가장 안전하고 안정된다는 심리적 안도감이다. 매일 아침 눈인사를 나누는 타인들과의 심리적 안전거리감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아내로 선택했다.


살다보면 아내도 나도 단골 맛집을, 단골 헤어샾을, 단골 병원을, 집을, 직장을 바꿀 수 있는 정신적 지자자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아, 그래? 하면서 처음 결정할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때로는 아주 단박에. 그리고 그건 팔랑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돈이었다. 돈. 매달 자동이체 되어 온 그 돈.


우리 집은 모든 경제권을 아내가 쥐고 있다. 쥐어라 한 적도, 쥐자 한 적도 없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네 싶다. 그런데 사실 경제적 권력이라고 할 것까지는 또 없다. 매달 들어왔다 사라지는 텅장의 짧은 여정을 세밀하게 쪼개는 교통정리 정도이니까.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지만 그 교통정리의 핵심 포인트는 고정 수입과 고정 지출 간의 줄다리가가 아니다. 추가 수입과 일시적 지출 항목의 시기와 양을 결정하는 거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 - 돈은 결국 남지 않지만 - 은 고정 지출로 인한 삶의 질적 상승이다, 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무 해 넘게 여전히 짠내 나는 아내를 보면서.


우리 집 고정 지출 항목 중에 최근 5-6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것들이 있다. 2만 원, 3만 원, 10만 원, 10만 원, 3만 원, 2만 원. 월급날 자동 이체가 되게 되어 있는 금액들 중 일부이다. 순서대로 아내의 모임 1, 모임 2, 친구네 모임1, 가족 모임 1, 나의 모임 1, 나의 모임 2이다.


지난 주말. 난생처음 1만 4천 원짜리 커피를 마셔 봤다. 황금(색) 커피잔에. 몇 해 전 아내와 둘이 강릉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마셔본 에티오피아 오마 게이샤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메뉴가 보이자마자 아내에게 눈으로 읍소했다. 그러자 재수 씨를 한번 쳐다본 아내가 선뜻. 마셔보자, 한번 한다. 그렇게 넷이서 (다른 커피 두 잔 포함) 두 잔을 나눴다.



아내가 가끔 이렇게 통(!) 큰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에게는 또 2만 원씩 지출하는 두 개의 모임이 더 있다. 모임 이름까지 있다. 은방울, 은자매. 뭐야~ 하고 딱 한번 그래봤다. 그런데 그 의미가 자못 멋졌다. 우리 끝까지 가는 거다, 는 내용이 진하게 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이름의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에 같은 음절이 들어가서.


좋은, 아니다. 그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 저 멀리서 보면 먼저 달려가고 싶은 사람. 그 사람들 덕에 텅장이어도 살맛 나는 거라는 걸 아내에게서 배운다. 나 다니는 병원 옮겨야 할 것 같아, 미용실 바꿨어, 자기야 우리 같이 다음에는 여기와 보자.


아내의 결정에 나는 열 일 제쳐 두고 간다. 아내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기 때문에. 아부가 아니다. 나도 몇 번 덤벼(!) 보았다. 그런데 결국은 옳았다. 옳은 일지를 써 놓지 않아서 그렇지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그런데 그 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돈이었다. 매달 얼마씩 자동이체 되는 돈.  


게이샤를 마신 날. 친구와 난 다시 둘이 더 남았다. 동네로 이사 온 뒤 두 달. 나보다 맛집을 더 많이 알아 낸 친구덕에 자주 앞을 지나치던 자그마한 가게에 들어섰다. 제주 흑돼지 곰탕이라는데 국물이 탁하지 않고 맑았다. 돼지 고기라는 얇게 썰어 돌린 수육은 횟감 같았다. 한라산을 한잔씩 나누면서 돈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진로 이야기.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했다.


안오는 택시를 기다리는 우리 둘을 뒤에서 쳐다보는 가족이 있었다. 돼지 가족이었다. 아빠 돼지가 아기 돼지 삼형제를 업고 있는. 어딘선가 본 듯 했지만, 자주 보지는 못했던 그 인형들.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폰을 꺼내 찍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고, 네 모습이어서. 그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나의 생각을 흔드는 사람. 나를 위해 생각해 주는 사람. 내가 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사람. 나를 인정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다. 쌀로 밥짓는 이야기다. 나이에 관계없다. 미성년도 성년도 결국은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언제나 어부바해주는 친구가 전부니까.



----------(한 줄 요약)

자동이체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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