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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1. 2023

대물림되는 중독성

[읽고 쓰는 일요일]6_7년의 밤(정유정)







몇 해 전 수업을 준비하느라 읽었던 책이 있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순전히 책 제목에 히말라야가 등장해서 읽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에 사실적인 묘사, 솔직한 유머가 곁들여져 있었다. 그 사이의 행간에서 거대한 대지형, 히말라야의 등반과 하산 길 상상이 충분히 가능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바로 몇몇 페이지를 발췌독 형식으로 수업 자료에 삽입했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작가가 바로 정유정이다. 담백한 문체에 묘하게 복잡한 문장 구조를 가진 작가라는 생각에 그녀의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닿은 게 바로 <7년의 밤>.  역시 몇 날 며칠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가상의 마을  세령시를 내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정도로 아주 구체적인 묘사라 등장인물의 이동 동선을 침대에서 벤치에서 소파에서 따라 걷고 달렸다. 비를 맞고 안개를 헤치면서.


그런데 참 재미있었던 게 이백페이지가 넘게 읽는 중에 발견(?)했다. 정유정 작가가 직접 그려 넣은 세령시의 지도가 책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두 번 펼치면 책 크기의 세배는 되는 세령시 지도. 그 지도를 발견하고서는 내 상상의 지도에 오버랩해 보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목덜미에 남아 있다. 세령댐, 세령호, 관리직원 사택, 내리막 사거리까지.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된 <7년의 밤>은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스릴러다. 주된 줄거리는 인간들의 갈등과 살인 사건을 다룬다. 전직 야구선수인 거구의 최현수(류승룡 분)는 보안업체 직원이다. 34평형 아파트를 구입하는 게 중산층 진입의 가장 중요한 의미로 여기는 억척같은 아내 강은주. 그녀의 재촉에 세령시로 발령을 신청하고 새로운 보안팀장이 된다. 


용팔이 - 고졸 유망주였던 포수 최현수는 프로 2군에서 계속되는 왼쪽 팔의 신경증적 마비증상 때문에 유명선수가 되지 못한다. 이런 증상을 소설에서는 용팔이로 표현하고 있다 - 는 자책과 삶에 대한 버거움으로 거의 매일 음주다. 음주로 인한 면허정지 상태에서 이사오기 전에 미리 세령댐 관리직원 사택에 살고 있는 팀원을 만나러 오던 안개 짙던 날, 교통사고를 낸다. 그리고 한 아이를 얼결에 죽이게 되고, 세령호에 버리게 된다. 


그런데 그 시각 출입금지인 야간 세령호 물밑에서는 최현수의 팀원인 안승환(송새벽 분) - 아버지의 영향으로 12살 때부터 잠수를 한 UDT 출신이다 - 이 잠수 중이었다. 세령댐이 생기면서 가라앉은 오영제(장동건 분)의 마을을 비밀스럽게 탐사해 보던 중, 세령호 속으로 투하된 시체를 우연히 접하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간다. 대신 서원이와 최현수를 도와준다.    

 

그때 죽임을 당한 아이, 세령이는 지역 유지이자 치과의사인 오영제의 외동딸. 파괴적이고 독단적인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인물로 끝까지 최현수와 함께 간다. 최현수와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 자신의 딸 세령이와 동갑내기 아들인 최서원(고경표 분) - 7년의 밤의 주인공(화자)이다 - 을 죽이는 걸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세령이가 갑자기 최현수의 차에 뛰어든 날도 오영제의 폭력을 피해 도망치다 일어난 사건. 


주변인들은 오영제의 가정폭력을 이미 알고 있으나 쉬쉬하고 있다. 오영제의 아내, 문지원은 이미 폭력을 피해 일찍 멀리 도망가 버렸다. 프랑스로. 마을 안에서 최현수와 오영제의 심리전이 이야기의 맥락을 끌고 간다. 에 계속된다. 그러다 결국 최현수는 아내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다. 이혼에 응하지 않는 아내 강은주를 강제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영제와의 싸움이 계속된다.


결국 최현수는 세령댐 수문을 열어 저지대 마을을 모두 침수시킨다. 많은 사람들을 죽게 된 이유로 최현수는 결국 사형을 받는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오영제. 많은 재산을 가진 치과 의사였지만 마음은 늘 허전하고 쫓기는, 정유정의 소설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인물 사이코패스이다. 오영제는 자신의 딸 세령이나, 최현수의 아들 서원이 나이때부터 ‘특별한 아이’로 길러진다. 


일반인들과 구분되는, 아니 구분되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특권층 아이로. 그 습관을 지키지 못할 때는 아버지로 가혹한 폭행을 당하며 자라왔다. 그렇게 키워내지 못하는 엄마도 그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 지금의 오영제는 바로 그때의 그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으로 주변인들과의 갈등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바로 <7년의 밤>은 바로 오영제라는 인물을 통해 가정 폭력의 대물림, 중독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 한 줄 요약)

어른이란 본 대로 배워 자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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