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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2. 2023

살얼음 평화? 표현하라!

[다시 쓰는 월요일]  6_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지금의 내가 다시 쓰는 글]

어제 일요일 아침. 아내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어머님이셨다. 장인어른이 마당에서 딴 거봉 포도를 수확하셨단다. 아내가 열 살 무렵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마당 한켠 담벼락과 광 사이에 있었던 한그루의 포도나무. 매년 이맘때면 눈깔사탕만 한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린다. 마당을 지나 집 처마 밑까지 장인어른이 줄을 연결해 둬 평상 위에서 한 여름 햇빛을 가려준다. 


그 여름을 검은 봉지에 가득 담고 혼자 지하철로 한 시간 반 거리의 우리 집으로 오시려고 이미 집을 나섰다고. 잘 듣지 못하시는 장인어른. 아내가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야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게 했다고.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검은 봉지 선물을 또 한 번 받을 뻔했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 다녀가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일요일 낮. 근무가 잡힌 아내를 태워다 주고 잠깐 북카페에 들렸다. 작은 아이와 함께. 


약속 시간에 큰아이까지 태워 아내 픽업을 갔다. 짧은 드라이브였다. 아내가 가끔 회식을 하러 간다는 근처 고깃집. 네 식구가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다. 아내와의 약속 시간에 맞춰 오기 전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아내가 오전에 안부 전화를 했다고 하시면서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전화기에 넘친다. 점심때 만난 아내도 같은 말을 해준다. 일요일인데 근무하느라 애 많이 썼다고. 비 많이 내리기 전에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셨단다.    


양가 부모님 모두 안전하게 집에서 잘 쉬고 계신다. 큰아이를 다시 공부하는 곳에 태워다 주고 나는 일요엘 오후 낮잠을 잠깐 즐겼다. 태풍 '타파'가 많은 비를 몰고 온다는 예보가 있던 어제저녁. 일요일 8시가 넘었는데 아내가 몸이 무겁다고 산책을 같이 나가자고 했다. 40분을 넘게 걷는 아내옆에서 그랬다. 당신 참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운동을 하는 것도 대단한데 일요일 이 시각에 나가자고 하는 것 자체가. 그랬더니 아내가 기분 좋은 미소로 그런다. 경력이 얼만데.


짙은 어둠이 가득한 골목. 주황빛 가로등에 비친 아내의 표정이 싱그럽다. 한참을 걷다가 아내가 그런다. 며칠 전 람이 엄마가 전화를 했다고. 아내 명의로 대출해 준 남동생의 사업 자금을 트럭이 고장하고, 재취업이 안되고, 힘들어하면서도 매달 60만원의 상환금을 갚으려 노력해 준 동생 내외다. 그 상환이 이번달이 막달이 맞냐는 전화였단다. 형님이 큰 고생 했다고. 아내가 대신 전하는 음색 속에 울먹거리는 고마움이 녹아 있었다. 아내에게 그랬다. 당신이 정말 가장 큰 고생 했다고. 


서른여섯 번의 '매달'. 대여섯 번 월급을 쪼개, 몇만 원짜리 적금을 깨서 대신 갚아주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아내다. 큰아이는 오늘 새벽 1시 40분에 독서실에서 돌아왔다. 잠깐 졸다가 중문에 달린 풍경 소리에 화들짝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찹쌀떡을 하나 챙겨주고 바로 자라고 일러놓고 다시 잠들었다. 월요일인 오늘은 6시 30분쯤 눈을 떴다. 침대에서 조금 더 뒤척이다 펄쩍 뛰어올라 내 종아리에 닿은 타닥이의 따듯한 체온을 느낀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촉감인데, 오늘은 그 따스함에 한없는 평화가 나를 휘감아 준다. 


 아침을 함께 열어 주는 이 따사로움이 너무 좋다. 그냥 행복해진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그 행복이 훨씬 더 진하게, 아리게 다가온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온 세상이 그냥 감사하다. 타닥이 가슴을 쓸어주고 아침 사료를 준다. 정수기로 걸어가 물을 내리는 사이, 커피포트에 물을 담는 사이, 커피포트 버튼을 딸깍하고 누르는 사이를 오드득 오드득하는 타닥이의 건강한 소리가 이어준다. 행복감이 한없이 밀려와 나를 다시 휘감아준다. 


그 행복을 이어주는 소리에 큰아이가 먼저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난다. 서너 시간이라도 푹 잤는지 모르겠다. 푸석한 얼굴이지만 오드득거리는 타닥이 옆에 쪼그려 앉아 새하얀 털을 쓰다듬는 미소는 다섯 살 때 우산을 뒤집어 들고 다리 하나도 들고 쿵후 자세를 만들던 개구진 그 얼굴 그대로다. 다시 그 소리에 아내도 따라 일어난다. 스치면서 스윽하고 서로 손을 내밀어 아내는 큰아이의 허리를, 큰아이는 아내의 어깨를 쓸어 준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눌러 놓은 커피포트로, 큰아이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중1 작은 아이는 일부러 20분 더 재운다. 밤새 태풍 '타파'는 별일 없이 지나갔다. 파란 하늘에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어제저녁. 산책 전에 저녁 대신 먹다 남은 닭똥집에 아내가 부친 노루궁둥이 버섯 전으로 맥주를 한 캔 반이나 마셨다. 아내가 내민 반캔까지. 게다가 평소보다 적은 수면시간인데 월요일 아침, 참 몸이 가볍다. 눈이 뻑뻑하지도 않고, 이유 모를 예민함도 많이 옅어져 있다. 그런 나를 내가 들여다보는 시간. 아주 짧지만 그 시간이 생겼다는 건 그 자체가 그냥 여유롭다는 거다.


출근을 하는 내내 햇살이 나를 따라왔다. 사무실을 열고 들어서니 주말 내내 가라앉았던 묵직하게 탁한 공기가 훅 밀려왔다. 그 속에 폭풍 전야도, 비바람도, 가을 월요일 쌀쌀한 공기도 뒤섞어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에티오피아 콩가 원두를 갈았다. 계속 나만 쫓아온 듯 한 가을 햇살이 원두향에 훨훨 날아 책상 위로 벽으로 창문으로 사뿐사뿐 튕겼다. 아침 커피를 한 잔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늘 교복을 입지 않고 지각하던 두 아이가 벌써 와 있었다. 심지어 교복도 깔끔하게 챙겨 입고서. 


나에게 자랑하듯 인사를 건넨다. 한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자기 교복을 가리키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다. 두 아이 어깨 너머로 아까부터 나만 쫓아다니던 그 햇살이 교실 안을 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아비시니아 고원을 맨발로 걸어가듯 부드럽고 향긋했다. 내 마음이.   



----------(한 줄 요약)

묵혔다 말하는 것 보다 그때 그때 나눠서 말하는 습관은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좋은 습관으로 이어진다. 한 장 한 장 쌓지 말자. 높고 두꺼운 마음의 벽이 된다. 


 



    


[5년전 내가 쓴 글](2018년 9월 23일(월)

오늘 아침 기분이 좋은 이유에 대한 생각 

어제 아침 일찍 아내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장모님이셨다. 장인어른이 마당에서 딴 거봉 포도를 들고 지하철을 타 한 시간 반 거리의 우리집으로 오시려고 집을 나섰다가 아내의 극구 만류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단다. 이번 주말에 다녀가겠다 했단다. 낮에는 아내가 근무였다. 태워다 주고, 잠깐 북카페에서 작은 아이와 일을 보다 큰아이도 같이 아내에게로 갔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고기집에서 배부르게 먹었다. 오후에 전화를 드리니 낮에 아내가 아버지한테 안부전화를 드렸다고, 근무 고생했다고, 비 많이 내리기전에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양쪽 부모님이 모두 안전하게 집에서 쉬고 계셨다. 큰아이를 다시 태워다 주고 나는 일요일 오후에 낮잠을 즐겼다. 태풍 ‘타파’가 올라와서, 많은 비가 내린다고 예보만 올라오던 어제 저녁. 폭풍전야처럼 조용하게 바람만 불고 있었다. 아내는 8시가 넘어 몸이 무겁다고 산책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한 40분을 걷다 들어왔다. 아내에게 그랬다. 당신 참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운동을 하는 것도 대단한데 일요일 이 시간에 나가자고 하니. 그랬더니 아내가 대꾸한다. 경력이 얼만데.  

어둠속 가로등에 살짝 반짝이는 아내의 표정이 싱그러웠다. 한참을 걷다가 아내가 그랬다. 며칠전 람이 엄마가 전화를 했다고. 아내 명의로 대출해준 사업자금 2000만원을, 사업이 망하면서도, 취업이 안되 힘들어하면서도 갚으려 애썼던 매달 60만원. 마지막 상환달이 이번달이 맞냐고. 형님이 큰 고생했다고. 아내가 전하는 차분한 목소리속에 울먹이는 고마움이 녹아 있었다. 아내에게 그랬다. 당신이 가장 큰 고생했다고. 3년간 대여섯번을 대신 갚아주면서 마음 고생 많이 한 아내다. 큰아이는 새벽 1시 40분에 독서실에서 돌아왔다. 살짝 잠들었다가 중문위에 달린 종소리에 화들짝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모찌를 하나 챙겨주고, 바로 자라고 일러놓고 다시 잠들었다. 월요일인 오늘은 6시 30분쯤 눈을 떴다. 침대에서 조금 더 뒤척이다 펄쩍 뛰어올라가 발치에서 엎드리는 반려견 코코의 체온을 느꼈다. 

이 따뜻함이 너무 좋다. 코코의 체온은 행복이다. 안정이다. 매일 아침마다 나를 깨우듯 찾아온다. 일어나자 마자 가슴을 쓸어주고, 곧장 아침사료를 준다. 정수기로 걸어가 물을 내리는 사이, 오드득 오드득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 온다. 행복감이 한없이 밀려온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버튼을 내린다. 모두가 잠든 사이 물 끓는 소리가 아침의 적막을 깨운다. 새벽에 들어와 잠든 큰아이부터 깨운다. 그 소리에 아내가 일어난다. 중1인 작은 아이는 일부러 20분 더 재운다. 밤새 태풍은 사라지고 파란 하늘에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어제 저녁 운동전에 저녁대신 먹다 남은 닭똥집에 아내가 부친 노루궁뎅이 버섯전으로 맥주를 한캔 반을 먹었다.

 게다가 평소보다 적은 수면시간인데 몸이 가볍다. 눈이 뻑뻑하지 않다. 출근을 하는 내내 햇살이 나를 따라 왔다. 사무실을 열고 들어왔다. 이틀 내내 막혀 있던 묵직한 공기가 훅 밀려왔다. 앞뒤 문을 활짝 열고 새 공기로 채웠다. 그 사이로 나를 따라온 햇살이 뒤섞였다. 창문을 열어 놓고 에티오피아산 콩가 원두를 내렸다. 사무실 가득 채워진 원두향이 묵은 공기를 밀어냈다. 교실에 들어서니 늘상 교복을 입지 않고 늦던 두 아이가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자랑하듯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두 아이 어깨 넘어로 아까 그 햇살이 교실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편안하다.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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