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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3. 2023

포대기같은 골목

[동네 여행자] 11

야트막한 담벼락을 넘어 입맛 당기는 냄새가 가득 섞인 소리가 보인다. 된장찌개 끓는 소리, 두부 굶는 냄새,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딱 십초 뒤다. 그때 엄마가 나를 부를꺼다. 밥 먹으라고.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아드라, 밥 먹어어어어어어어어. 하지만 나를 부르는 엄마의 그 소리는 언제나 나에게 메아리가 된다.


엄마도 첫번째 부르는 소리에 애틋함을 담지는 않는다는 것을 담박에 알 수 있다. 엄마도 이미 알고 있다. 한번 불러 냉큼 골목을 벗어나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엄마가 세 번쯤 부를 때는 메아리가 사라져 있다. 그 사이에 화가 살짝 섞여 있다. 그때쯤 친구들과 눈을 맞춘다. 그리고는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 놀면서도 다시 놀 궁리를 계속한다.


골목에만 들어서면 지금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내가 보인다. 지금도 어느 동네를 가나 골목길을 찾아 걷는 이유다. 커다란 교차로에서 만난 보행자도, 휑하고 가로질러 냉큼 달아난 오토바이 운전자도, 신호를 기다리며 높은 하늘을 손으로 가리고 쳐다보는 여자도, 휘날리는 거대한 자기 연에 웅장해진 듯한 남자도 다 그 골목에서 출발했을 거다.


골목을 이래서 좋다. 나를, 어린 나를 다시 잠깐 소환해 주는 공간이어서. 골목에는 작지만 참 따듯한 포근함이 있어서 좋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즉각적이지도 않지만 은근히 피어 올라 나를 감싸 안아주는 포근함. 페인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나무 벤치에 잠깐 앉기만 해도 금세 골목이 내가 된다. 골목 입장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골목안에서 아가가 된다.  


골목은 알고 있다, 언제나. 그곳에 있는 나는 항상 그곳을 벗어나 큰길로, 도로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걸어 나간 뒤,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거라는 것을. 그렇게 골목은 항상 나를 기다려준다. 그 기다림을 알기에 나는 큰 도로에서 골목에 들어설 때는 항상 설렘이 가득하다. 그래서 훅하고 들어서지 않고 빼꼼하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골목에는 꿈틀거리는 생명이 넘쳐난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이름 모를 야생화, 무심하게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이에 뿌리를 깊고 박고 있는 이끼, 언제가 그곳에 서 있었던 전봇대, 늘어진 전깃줄에 앉아 졸고 있는 새들. 그리고 엄마, 아버지. 암 수술을 받은 옆집 이모, 소리만 들어도 술인지 밥인지 알 수 있는 고함쟁이 뒷집 아저씨. 경찰차에 가끔 실려가던 그 집 막내아들.


그 생명들은 서로 담쟁이넝쿨처럼 지독하게도 연결된다. 그래서 골목 안에 있으면 골목을 벗어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골목은 신기하게도 다시 찾아 들어가고 싶어 진다. 숨고 싶어서. 쉬고 싶어서. 야생화도 수세미도 이끼도 전봇대에 매달려 고개 숙인 가로등도 새들도 그런 나를 다 기억할 거다, 아마. 그 골목을 지나쳐 간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인 나를.


골목은 사라지고 있지만, 마음속의 그곳은 영원할 꺼다. 엄마처럼.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골목에만 들어서면 마냥 신난다. 어릴 적 추석 연휴 내내 하루 하나씩 두개씩 빼어 먹던, 깨알같은 계획까지 써서 붙여 두었던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것 같다. 해가 갈수록 골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는. 포대기로 나를 감싸 업어 준 엄마 등 같은 골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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